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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의 '당당한' 퀴어문학 ... 사생활 침해는 예견된 논란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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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의 '당당한' 퀴어문학 ... 사생활 침해는 예견된 논란이었나

입력
2020.07.19 14:47
수정
2020.07.19 18:0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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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대화 무단 인용에 강제 아우팅 논란까지
출판사들은 수정본 교환, 추가 판매 금지 조치


지인과의 대화 인용으로 사생활 논란에 휩싸인 김봉곤 작가의 소설집 '시절과 기분'(창비)과 '여름, 스피드'(문학동네)

지인과의 대화 인용으로 사생활 논란에 휩싸인 김봉곤 작가의 소설집 '시절과 기분'(창비)과 '여름, 스피드'(문학동네)


“오토픽션을 쓸 때의 부끄러움은 사생활이라 여겨지는 나의 내밀한 삶과 생각을 밝히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진실된 문장과 이야기인지, 어떠한 감정을 추출하고 획득해내기 위한(나와 독자에게 모두) 작위가 없었는지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되는 감정으로, 꾸밈을 유혹을 받는 데서 오는, 혹은 필연적인 착오를 무릅써야 한다는 한계에서 생기는 부끄러움이다.”

김봉곤 작가의 데뷔작이자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중편소설 '오토(Auto)’의 한 대목이다. 자기 자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어원 '오토’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n(픽션)’을 결합한 ‘오토픽션’은 말 그대로 자전적 소설을 뜻한다. 게이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내밀한 삶을 그대로 드러낸 데뷔작과 이후 발표한 비슷한 소설을 통해 김 작가는 지금껏 비교적 변방에 있던 한국 퀴어문학을 본격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들었다. 데뷔와 함께 자연스레 이뤄진 김 작가의 커밍아웃은 소설에 핍진함을 더했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겠다던 이 핍진함이 작가를 정조준하는 칼이 되어 돌아왔다. 지난 10일 단편 ‘그런 생활’이 지인과의 나눈 은밀한 내용의 카카오톡 대화를 무단으로 인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김 작가의 소설로 인해 '아웃팅을 당했다'는 폭로까지 등장했다.

자신이 김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여름, 스피드’의 표제작에 등장하는 ‘영우’라고 밝힌 한 남성은 지난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저는 실존 인물입니다”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게시했다. 그는 여기서 “실명은 영우가 아니지만,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요소들이 소설 속에 사실로 적시돼 아웃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개인적 특성, 사생활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는 얘기다.

이어 “김 작가에게 수년 만에 연락하기 위해 전달한 페이스북 메시지" 조차 그대로 소설에 들어갔다 했다. 실제 소설 속 ‘영우’는 주인공이 오래 전 사귀었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런 사실을 책 출간 전에는 전혀 몰랐고, 나중에 알게 된 뒤 김 작가에게 연락했으나 소설은 고쳐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 남편이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면 연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던 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과 친구로부터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은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전 남편이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면 연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던 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과 친구로부터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은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실생활과 문학작품 간의 관계는 사실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1990년대 후일담 문학 이후 역사적 서사보다 개인적 경험을 강조하는 사(私)소설 풍의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한국 문학에도 알게 모르게 문학적 형상화와 창작 윤리를 둘러싼 논란이 있어 왔다.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옹호론도 있었다. 반대편에선 자료조사, 공부, 취재 등 별도의 노력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세련된 문장만 구사한다는 비판도 넘쳐났다. '한국 문학이 망한 건 문장 공부만 시킨 문창과 때문'이라던, 논란을 불러왔던 황석영 작가의 일갈은 그 맥락 위에 서 있다.

이는 실제 법적 분쟁으로도 이어진다. 우리나라보다 ‘사소설’ 장르가 더욱 발달해 있는 일본의 경우 1999년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가 자신의 친구를 소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에 그대로 등장시켰다가 출판금지는 물론, 1,300만원을 물어주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공지영 작가가 한 일간지에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연재하려 하자 공 작가의 전 남편이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연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적이 있다.

퀴어 문학 논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성 정체성'이라는, 은밀하면서도 민감한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훨씬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애초 김봉곤 작가가 '오토픽션'이란 말을 너무나 당당하게 표방했을 때부터 예견된 위험이라는 평은 그래서 나온다. 한 문학평론가는 “김 작가 자체가 자전적 스타일로 주목 받고 또 높이 평가받아왔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이번 사태는 충격적"이라며 “현실에서의 일들을 문학적 작업으로 가져올 때의 윤리에 대해, 보다 근본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충격파는 이미 번져나가고 있다. 문학동네는 이미 '그런 생활'이 수록된 2020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판매본 7만부를 수정본으로 교환해주기로 결정한 데 이어, 해당 작품집과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아예 판매중단키로 했다. 창비 또한 '그런 생활'이 수록된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기존 판매된 5쇄본까지 교환조치하고 더 이상 책을 팔지 않기로 했다. 일부 독자들은 2020젊은 작가상까지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퀴어 문학까지 꺾여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출판 관계자는 “창작 윤리의 문제가 있지만 김 작가로 인해 한국에서 퀴어 문학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측면도 있다"며 "이번 사태 때문에 퀴어 문학에 대한 관심, 고민들이 후퇴하지는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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