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소문난 명작 레퍼토리
코로나19로 한 달 연기 끝에 재개
중고사이트에서 티켓 거래까지
“가슴이 벌렁거려서 진정이 되지 않네요. 코로나19 때문에 이 공연 못 볼 줄 알았거든요.”
20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보고 나온 직장인 이해라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감탄사를 쏟아냈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간간이 눈물도 훔쳤다. 이씨뿐만이 아니었다.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은 하나같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영국 교민 전혜주씨는 “연극의 뿌리가 탄탄한 영국에서도 못 본 명작”이라며 “요즘 같은 때에 공연을 볼 수 있으니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감정이 북받친 건 관객만이 아니다. 무대를 준비한 배우와 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 정영 역을 맡은 배우 하성광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공연 재개 첫날이었던 19일에는 공연 뒤 커튼콜 때 배우도 울고 스태프도 울고 관객도 울고, 정말 다 같이 울었다”며 “무대의, 작품의 완성은 바로 관객이란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국립극단의 대표작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원래 지난달 25일 개막할 예정이었다. 소문난 작품이었던 만큼 표는 순식간에 동났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공립 문화예술 공연장들이 모두 폐쇄 조치됐다.
환불 조치 뒤 이제나 저제나 공연 재개 소식을 기다렸지만 보름이 지나면서 체념해 갈 무렵, 19일부터 공연을 허락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랴부랴 18일 예매창을 열었는데 26일까지 예정된 공연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접속자가 몰리면서 국립극단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티켓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관객들도 공연에 목이 말랐던 것이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작품이다. 춘추전국시대 간신의 모략으로 조씨 가문 300여명이 멸족되는 참화 속에서도 마지막 핏줄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킨 시골의원 정영의 비극, 그리고 대물림된 복수를 다룬다. 원나라 작가 기군상의 고전 희곡을 연출가 고선웅이 각색, 연출했다. 이 작품은 “최근 10년 사이 나온 연극 중 최고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지난해 관객 4,000여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이런 작품이니 배우, 관객 할 것 없이 공연 취소를 모두 아쉬워했다. 국립극단 측에 따르면 티켓 환불 때 관객들이 오히려 “환불 안 받고 공연을 기다리겠다”거나 “공연을 못해서 배우 분들이 힘들겠다”며 응원과 위로를 쏟아냈다고 한다.
배우 하성광은 “이번에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께 정말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꼭 전해 달라”며 “극장에 직접 못 오시는 마음까지 다 받아 안아서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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