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 " 국민동의청원…본회의 문턱 넘을까 관심
민심 역행에 '뭇매'…"예산낭비" "갈등유발" 실효성 지적
'평등을 일상으로'
여성가족부의 슬로건입니다. 정부조직법에 여가부는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여성의 권익 증진 등 지위향상, 청소년 및 가족 관련 사무를 관장하는 부처로 규정돼있는데요. '누구도' 차별과 폭력에 아파하지 않는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세운 바 있죠. 실제로 여성 사회 참여 확대 외에도 성별을 따지지 않고 성폭력·가정폭력 등을 예방,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고 다문화까지 포용하는 가족 정책을 관장하고 있는데요.
"여가부 폐지해" 지난해 국민청원만 300여건…이번엔 국회로 간다
이런 여가부가 존폐 기로에 섰습니다. 국민동의청원에서 21일 '여가부 폐지에 관한 청원'이 나흘만에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것인데요. 정부조직법의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행정안전위에 안건이 올랐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은 참여 인원이 10만명이 넘으면 국회가 의무적으로 심사를 해야 하는데요. 상임위 소위에서 우선 기각할지 부의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본회의까지 오를 수 있을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여가부를 향한 국민 여론이 싸늘한 것 만큼은 확실한 듯 합니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가부 폐지 관련 청원글만 300건이 넘었는데요. 급기야 이번 국민동의청원 글쓴이는 "하는 일은 없고 세금만 낭비하며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여가부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폐지 청원 이유로는 "성평등 및 가족·청소년 보호 등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하라는 성평등 정책은 하지 않고 남성혐오적이고 역차별적인 제도만 만들었다"며 "여성인권조차도 최근 정의기억연대 및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등에서 수준 이하 대처와 일처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제대로 보호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어요.
이와 관련해 최성지 여가부 대변인은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 자리에서 "폐지 관련 의견은 여가부의 역할에 대한 큰 기대감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더 많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또한 "여가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사할 권한이 없는데, 다른 기관과의 협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죠.
정치권서도 수차례 폐지 시도…文대통령 대선서 "여가부 역할 커져야"
정치권에서도 여가부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여성부 신설을 공약으로 삼았던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요. 1998년 구성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2001년 여성부로 승격되면서 공식 정부 부처가 됐죠. 보건복지부의 가족 및 영유아 보육업무가 통합되면서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가족부가 됐고요. 이명박 정부는 여가부를 당시 보건복지가족부에 통폐합하려고 했지만 반발에 부딪혔는데요. 이에 2008년 여성부로 축소됐다 2010년 다시 여성가족부로 이름이 바뀌면서 지금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19대 대선에서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 의원도 '여가부 폐지'를 주장했다가 곤욕을 치렀는데요. 그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칭하며 "예산과 인력이 없어 실제 여성을 위해 한 일이 많지 않은 여가부 대신, 각 부처별로 관련 실을 만들어 제대로 된 정책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여가부의 역할은 더 커져야 하고 폐지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역행하는 것"이라고 대립했고요.
셧다운제부터 "'김치남'은 혐오 발언 아냐" 지침까지…지난한 논란의 역사
좋은 취지를 갖고 있는 여가부인데 왜 계속해서 폐지 주장이 나오는 걸까요? 여가부 예산은 지난해 겨우 1조원을 넘겼죠. 이는 한해 정부 예산 중 0.2%에 불과합니다. 공무원 역시 300여명, 전체 국가직 공무원 중 0.2%로 이른바 '미니 부처'라 불리는데요. 그럼에도 업무 범위는 넓어 만성 예산·인력 부족에 시달린다는 한계가 있죠. 다만 지금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예산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여가부가 국민 여론과 역행하는 일을 벌여왔다는 지적인데요.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을 차단하도록 한 셧다운제가 대표적입니다. 여가부가 청소년 보호를 위해 강행했지만, 학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빌려 심야에 게임을 하는가하면 청소년 프로게이머가 국제대회 중 셧다운으로 망신을 당하는 등 실효성 논란이 일었죠. 게임업계 말고도 일부 학부모들이 "양육권과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나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는데요. 합헌 판단이 나왔지만 국민감정은 여전합니다.
지난해에는 여가부가 방송국 등에 배포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 "대부분 출연자들이 아이돌 그룹으로 음악적 다양성뿐 아니라 마른 몸매에 하얀 피부 등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 하다"고 지적했다 뭇매를 맞았고요. '초중고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안 사례집'에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 599명 중 여성 수상자가 18명인 이유는 수상자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 "'김치녀'는 혐오발언이지만 '김치남'은 혐오발언이 아니다" 등을 담았다가 갈등만 불러 일으킨다는 비판을 받았죠.
또한 지난해 '고(故)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거짓증언 의혹을 받았던 윤지오씨에게 법적 근거 없이 숙박 및 차량 비용을 지원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여가부가 제공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결국 여가부 소속 고위공무원인 김희경 차관이 익명 후원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또 한번 적절성 논란이 일기도 했고요. 당시 김 차관은 "윤씨가 숙소 지원을 요청해왔는데 검토 결과 여가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해 사적 기부를 한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올해는 위안부 할머니가 제기한 정의기억연대의 국가보조금 부실 회계처리 의혹과 관련해 여가부에서 국회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면서 도마에 올랐습니다. 최근엔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미적거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죠. 여가부는 박 전 시장 의혹과 관련해선 사건이 알려지고 8일이 지난 17일에야 '긴급' 회의를 하고, 그로부터 5일 후인 23일 "조만간 서울시 현장점검을 나갈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여가부를 전격 폐지해야 한다", "양성평등가족부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통합해야 한다" 등의 주장이 나오는 이유일 겁니다.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지난한 논란의 역사를 보면 자초한 측면도 없다고 하긴 어려울 듯 한데요. 기로에 선 여가부, 성난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