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협동조합의 이귀보 이사장
편집자주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 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할 게 없다고, 내세울 게 없다고? 아니, 우리 모두는 각자 대단한 인생을 살아왔다. 시간 내어 마음 내어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서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58년 개띠' 장한교씨는 2018년 환갑을 맞아 스스로 '륙십파티'를 열었다. 직접 초대장을 써서 돌리고, 아이디어를 내어 프로그램을 짰다. 자신이 살아낸 시대에 대한 OX 퀴즈를 풀며 세월을 되돌아보는 자리도 마련했다. "파티 준비 과정은 내가 행복해 하는 것을 찾아가는 탐험의 시간"이었다는 게 그의 소감. 그 순간 만큼은 "내 삶의 문화기획자"였다.
환갑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마주하는 첫 기념일이다. 수명이 짧았던 과거에야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돈 것만으로도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었지만 백세 시대엔 빛이 바랜 얘기다. 환갑은 이제 '두 번째 서른'이자 새 인생의 출발선이다. 환갑은 이제 단순히 축하받는 자리를 넘어 자신이 주도하는 파티가 돼야 한다. 그게 '륙십파티'의 정신이다.
륙십파티를 기획한 두두협동조합의 이귀보(61) 이사장을 23일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만났다. "어느 나이 때는 뭘 해야 한다, 문화적으로 강요되는 게 많잖아요.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스스로 만들어 다함께 즐기자는 겁니다." 2018년 출범한 두두협동조합의 모토가 바로 '내 삶의 문화기획자가 되자'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퇴직 후 새로 도전해야할 영역과 아이템을 찾는 분들이 두두협동조합을 발판으로 이용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은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이제 옛날 어른 대접 받듯 대접 받을 상황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기존 자본주의 경쟁 사회가 우릴 반겨줄까요? 어디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에서 출발했지요." 시작은 중부캠퍼스 '인생학교' 수업이었다. 함께 수업을 듣다 뜻을 모은 7명이 두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두레'와 '두리번'에서 한 글자씩 따다 '두두'라 지었다. 은퇴했다고 가만 있을 게 아니라 계속 두리번 거리면서 뭔가 괜찮은, 의미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바람을 담았다.
륙십파티에 이어 이번엔 '정리파티'다. 이 아이디어도 '연륜에 어울리는' 아이디어다. "우리 나이쯤 되면 부모님이나 친지 친구분 유품을 정리하는데 힘겨웠던 경험들이 다들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스스로 주변 물건들을 정리하자는 생각들을 하거든요. 이걸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자 한 거지요."
대표적인 게 취미용품이다. 건강을 생각해서 시작했다가 작심삼일 탓에 창고에 내버려진 취미용품들. 이걸 서로 주고 받으며 정리도 하고, 새로운 취미도 가져보자는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겹쳐지면서, 취미가 주는 위로가 상당합니다. 나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면서 연대를 한다는 의미도 있죠." 재봉틀, 자전거, 바이올린, 스킨스쿠버 수트, 그림책 등 리스트는 끝이 없다. 두두협동조합은 다음달 14일 서울시50플러스 재단 유튜브에서 이들 물품 온라인 경매를 진행한다. 수익금은 모두 기부할 계획이다.
명절 혁파에도 먼저 팔 걷고 나섰다. 노동과 관계에 치이는, 그래서 불만의 대상인 현재의 명절 문화에 '노NO)라'고 말하고 '노라(놀아)'보자는 취지에서 '노라의 명절' 운동도 벌이고 있다. "명절 때문에 다음 세대가 버거워하니까, '위로부터 혁명'을 통해 같이 풀어보자는 겁니다. 가족 간 유대가 망가지기 전에 새로운 가족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장례식, 상견례 등 어려운 자리를 좀 더 편안하게 풀어내는 문화 제안도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
요즘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현장 탐방이다. 현장에서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찾아가서 보는 것이다. 사회공헌활동에 나선 기업이나 도시재생, 주민자치 등이 벌어지는 현장 45곳에 벌써 600명이 다녀갔다. 자기 주변부터 정확하게 둘러봐야 한다는 취지다. "그간 사회활동만 쭉 해오다보니 정작 은퇴 뒤엔 자기 삶터 주변에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지역사회와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인생 이모작이 더 쉬워지고 활발해질 겁니다."
이 이시장은 협동조합과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원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프로그래머였다. 1984년 결혼하면서 회사는 관뒀다. 그 때는 그게 너무나 당연한 시절이었다. 그러다 마흔 넘어 한 시민단체의 영어 수업을 들은 뒤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그 시민단체는 손으로 일일이 적는 방식으로 후원자 관리를 했는데, 프로그래머 경험을 살려 이를 CMS시스템으로 전환한 것. 두두협동조합이라는 이 이사장의 인생 2막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은퇴 시점에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가졌을 때 은퇴 이후 삶이 편안해지고, 젊은 세대에게도 무언가 나눠줄 수 있어요. 두두협동조합을 한번 두드려보세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