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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이었는데, 그게 스펙이 되었네요

입력
2020.07.29 16:17
수정
2020.07.29 17: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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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화
서석화작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넘고 싶지만 벽은 너무 견고했다. 그 아래에서 매일 새롭게 도움닫기를 반복하며 마음에 근육을 키워보지만, 아직도 나는 새벽이면 심장에서 속도를 한껏 올린 다듬이 소리를 듣는다. 미명의 한기가 나한테만 몰려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햇볕 쨍쨍한 대낮에는 내가 내 그림자에게 말을 건다. 사방 트인 십차선 대로에 나만 서 있는 것 같아서다. 어디 그뿐인가. 일몰엔 온 세상을 끌어다 저무는 하루를 보는 동지로 줄 세우고, 밤이면 달팽이처럼 말린 등으로 어둠을 버틴다. 외롭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무섭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묻는다. 등단 때부터 천 번도 더 들어온 말이다. 모든 시인, 작가들이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그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외로움이 무서워서’ 씁니다. 다른 이들의 대답이 수정처럼 반짝인다. 문학이 주는 의미와 그것의 영향력에 대한 고급스러운 대답의 향유가 벌어진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답들이다.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눈동자가 사람 수만큼 커졌다 작아졌다 변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소수다. 대부분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힘차게 머리를 젖는다. 그들은 외로움은 자기 단어가 아니라는 걸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더욱이 외로움이 깊어지면 무서움이 된다는 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사람과 세상을 탐구하는데 왜 폄훼되고 감추어야 하는 감정이 따로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참 받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외로움과 무서움이라는 두 단어만 걸러 들었다. 절대로 소환되어서는 안 될 금단의 무언가와 마주친 것처럼 불편해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외로움과 무서움을 소극적이고 나약한 심성과 동일시해, 성숙하지 못한 지극히 여린 감성으로 몰아세웠다. 그들은 웅변하듯이 말했다. 허약한 이들의 감상일 뿐인 그런 감정들은 걷어내야 하며, 진취적이고 열정적이며 자기 극복의 주제야말로 문학이 주는 긍정의 힘이라고! 틀린 말도 아니어서 나는 또 침묵했다. 그러나 극복이란 결과이고 과정의 끝이다. 때문에 진행과 과정의 치열성과 정직함이 담보되지 못하면 함부로 불러내어서도, 마음대로 써서도 안 된다. 아직 나는 그 과정에 있고, 이 과정을 정직하게 겪어볼 것이라는 숨은 말이 내 몸 전체에 울린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약함과 소극성으로 치부되었던 외로움이 내 글의 최고 스펙, 최고 장점이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정직하고 치열하게 외로움과 싸우고 그것을 탐구해가는 내 글에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일까? 외로움이 주는 무서움! 그것이 내가 개인으로서도, 작가로서도, 치열하게 끌고 갈 인생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외롭지 않았다면, 그래서 외로움이 주는 무서움을 몰랐다면, 아니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 쓰는 것도 어쩌면 다른 많은 문우들처럼 폐업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형제 없는 무남독녀 처지인 내게 ‘외로움’은 난공불락의 감정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것은 무서움이 되었다. 내 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까지 외로움이 주는 무서움에 대해 수긍과 저항을 반복하며 글을 쓰고 있다.

내 살을 깎아 어둠을 넓힌다/ 환한 낯빛 아니면 어떠랴/ 숨은 마음 이리도 터질 듯 환한데/ 별들이 제자리에서/ 제 몸만 한 빛으로 어둠을 걷을 때/ 나는 어째서 살을 깎아야/ 하늘은 내 자리를 허락하는가/ 버리는 연습으로 한 달을 산다/ 살 내리는 소리가 밤을 키운다/ 보이지 않는 꿈이 부푼다/ 부푼 꿈속으로/ 만월의 내가 떠오른다 - 서석화 詩 <하현달> 전문

숨기고 싶은 게 있는가. 자꾸 덧나 아픈 게 있는가. 그렇다면 오감을 활짝 열어 그것들을 영접해보라. 더 파헤쳐 만져보고 숨은 숨소리까지 들어보라. 당신이 살고 있는 이유, 살아야 할 이유, 지금의 당신이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환한 낯빛 아니면 어떠랴. 하현달은 밝다.

마지막 칼럼입니다. 짧았지만 강렬하게 사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서석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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