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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아버지 보고싶던 일곱살 때의 내가 원망스러워

입력
2020.08.03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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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어렸을 적부터 제게 아버지의 이미지는 술꾼입니다. 아버지는 잦은 음주와 화풀이로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네 살 때 부부싸움으로 집에 경찰이 온 적도 있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했던 때지만 아버지가 경찰에 저항하며 큰 소리를 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3년간 별거를 했고, 저는 외갓집에서 자랐습니다. 당시에 저는 아버지가 해외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유치원에서 운동회를 할 때면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다고 같이 살자고 졸랐던 기억도 납니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가 흔들려 결국 아버지와 재회했다고 생각합니다.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와 다시 살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고, 다른 사람이 되어 화내고, 소리지르고, 어머니와 싸우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무능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집에 와서 짜증을 내고 가족들에게 막말을 퍼붓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가족에게 부정적으로 표출합니다. 이를테면 ‘니 애비가 다 무식해서 그렇다’라든지 ‘니 애비가 못나서 좁은 집에 살고 있는 거다’라고 말합니다. 어렸을 때는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니 괜찮았지만 점점 커 가면서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되었고, 사소한 말 하나하나가 견디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툭하면 ‘너 같은 돌대가리랑은 못 살겠다’, ‘너는 복에 겨웠다’는 식으로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집니다. 한번은 “자살하고 싶다”고 절규하듯 외쳤는데도 아버지는 오히려 “그래, 니 맘대로 해라”고 말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에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말은 “니가 그렇게 억울하면 나한테서 나오지 말지 그랬냐”는 말이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아버지가 저에게 ‘야’라고 불러 저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야?’라고 예의 없게 반문했더니 아버지는 “이게 아주 잘한다 잘한다 하니깐 기어오른다”며 숟가락을 던지며 저에게 또 막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니가 상처를 받았다면 얼마나 받았다고 나도 너 때문에 상처 많이 받았어”라며 제 탓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막말을 할 때면 제가 살아온 시간들이 모두 부정 당하는 것 같아서 잠이 오지 않고, 스트레스도 극심합니다. 어린이집 교사인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거나, 아버지에게 뭐라고 하시긴 하지만 정작 저를 위로해주거나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으세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진정은 되지만 마음 속의 상처가 너무 깊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다 보니 저도 자꾸 아버지의 말투를 닮는 것 같아 더 견디기가 힘듭니다. 저도 아버지를 보면 좋은 말이 나오지 않고, 욕도 서슴없이 합니다. 그런 제 말투도 끔찍합니다. 아버지를 보고 싶어했던 일곱 살 때와 달리 지금은 아버지가 너무 밉고 싫습니다.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싶고,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이르지만 결혼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그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아서 또 괴롭습니다.

박영주(가명ㆍ21ㆍ대학생)


영주씨, 아버지의 인성이나 태도, 능력을 떠나서 당신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말로부터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요. 말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갖고 있는 고귀한 기능이에요. 말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에게 사랑을 전하고, 위로하지만 반대로 상처도 줄 수 있어요. 그래서 말을 할 때는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가깝다고 함부로 말해선 절대 안됩니다.

특히 부모자식 관계에서 말은 참 중요해요. 가까운 사이지만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약자인 어린 자녀에게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부모도 사람이다 보니 어쩌다가 실수로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대개 말로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들은 그 시작점이 자식이 아주 어릴 때부터예요. 그 때 그 어린 아이가 받았을 상처는 무심히 지나치고 ‘너, 잘 되라고 그랬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지요.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고 사랑해서 했던 말일지라도 표현에 따라 자식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인생에 부정적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자식에게 존대를 하고,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니라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해야 합니다.

영주씨의 아버지가 “나한테서 나오지 말지 그랬냐”라고 한 것은 부모가 자식한테 해선 안될 말이에요. 영주씨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빈정거리는 겁니다. 설사 자식이 걱정돼서라도, 잘못한 것을 고쳐주고 싶었더라도, 저 깊은 마음에서는 사랑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을 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당신은 얼마나 절망스럽고, 분노했을까요. 당신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당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입니까. 당신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닌 아주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 당신을 얼마나 좌절하게 했을까요. 그런 말을 내뱉은 아버지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이 느끼는 상처는 컸을 거예요.

영주씨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미성숙하기 때문이에요.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만 다 성숙하진 않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자신이 딸에게 줬던 상처를 정당화하려고만 했어요. 자기가 줬던 상처는 먼저 떠올리지 않고, 본인이 받은 상처만 먼저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해서 내가 그렇다”는 식으로 본인이 내뱉은 잘못된 말을 정당화시킵니다. 마치 미성숙한 부모들이 자식을 욱해서 때려놓고 “네가 잘못해서 내가 너의 버릇을 고쳐주려고 때린 거야. 네가 잘 했다면 내가 왜 때렸겠니”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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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씨의 상처가 더 깊어진 것은 아버지의 막말뿐 아니라 아버지가 그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나 미안함의 표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영주씨와 아버지의 갈등은 당신이 어렸을 때부터였어요. 시작이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였어요. 어른으로서, 아버지로서 상처 주는 말을 했더라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면 당신의 상처가 그렇게 깊고, 괴롭지 않았을 거예요. 부모지만 미성숙했고, 타당하지 않았던 본인의 말과 행동을 인정했더라면 당신이 그토록 괴롭진 않았을 겁니다.

영주씨, 당신은 지금 이 상황이 어렸을 때 당신이 아버지와 함께 살자고 졸랐기 때문이라고 후회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행복해 보이지 않고, 아버지는 변하지 않은 채 가족들에게 막말을 하는 걸 보고 드는 자괴감이 당신 탓인 것처럼 느껴지겠지요.‘어렸을 때 내가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조르지만 않았어도 다시 합치지 않았을 테고 어머니가 덜 불행했을 거고, 이런 막말을 듣고 상처를 받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하지만 그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일곱 살이었던 당신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어린 당신의 투정이 어머니의 결정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거예요. 어린 당신은 당연한 걸 말한 거고, 그것이 설사 어머니 결정에 영향을 줬더라도 결정은 성인인 어머니가 했습니다. 당신의 그 말로 어머니의 인생을 망쳤거나, 그때 그 표현 때문에 이렇게까지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영주씨, 아버지의 막말을 당신이 받아들이기가, 견디기가 힘들 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굉장히 억울하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달라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아버지는 치료가 필요한 알코올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알코올 문제로 고통받으면서 성장하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아버지의 말에 큰 상처를 받은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어쩌면 아버지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과 똑같은 조언을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성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억울해도 아버지가 하는 막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이며, 그 말에 의해서 정서적인 영향을 어디까지 받을 것이며, 그것을 대처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당신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당부하고 싶은 얘기는 당신이 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을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먼저 시작했고,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당신은 너무나 억울하겠지만 아버지와 똑같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고, 당신이 져 드리라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당신이 아버지와 다르게 말하고, 더 성숙한 방법으로 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내면으로 승리하는 것이고, 당신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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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더 나아가 당신의 말이 타당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도 당신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제가 아무리 화가 나도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라고 해보세요. 그건 당신이 성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당신과 당신 앞에 펼쳐질 미래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에요.

영주씨, 어릴 때는 부모가 주는 영향을 전적으로 받지만, 성인이 되면 받았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어도 본인만의 삶을 결정할 수 있어요.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아버지와 마주하면 두 분의 관계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립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어려운 상황이라면 당분간은 가급적 서로 부딪히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의 말에 감정이 건드려지고, 건드려지면 막말로 상처를 주고 받는 특성이 있어, 결국 아무리 좋게 시작해도 대화가 꼬이면 공격과 비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당장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학업을 성실히 마치고 독립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은 것 역시 본능입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 사람을 선택하면 도피지만,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알코올문제와 막말이나 폭력을 경험하면서 성장한 사람은 자신이 같은 문제를 갖지 않도록 살아가는 내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비슷한 문제를 가진 연인이나 배우자를 만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영주씨가 충분히 준비를 하고, 아버지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노력해 앞으로의 시간은 오로지 당신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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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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