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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정경두와 ‘대장’ 에이브럼스의 잘못된 만남?

입력
2020.08.03 09:00
수정
2020.08.15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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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팔색조 변신 주한미군사령관 ‘4개의 모자’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9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 서울안보대화' 개회식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9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 서울안보대화' 개회식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주목할 만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비밀리에 회동한 것을 두고 8월 중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시행 문제를 논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입니다.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이번 훈련이 정상적으로 실시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이번 연합연습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2022년 목표)에 대비한 완전운용능력(FOC)을 검증해야 해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취재 열기가 뜨거워지자 국방부는 “두 분이 그간 종종 만나 현안을 논의해왔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습니다.

급 안 맞는 에이브럼스, ‘무슨 자격’으로 정 장관 만나나

그런데 문득 “종종 있어왔다”는 이 만남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 국방부 장관의 카운터 파트는 미국 국방부 장관(마크 에스퍼)이기 때문입니다. 별이 4개인 ‘대장’ 직급의 에이브럼스 사령관과 우리나라 국방 분야 총책임자인 정 장관의 회동은 ‘급이 안 맞는 만남’인 것이지요. "서욱 육군참모총장(대장)이 정 장관을 1대 1로 만나 ‘맞짱’을 뜨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있습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에스퍼 장관(국방 총책임자)과 마크 밀리 합동참모본부 의장(미군 현역 서열 1위),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한반도 관할)으로 이어지는 지휘를 받는 4성급 사령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의전과 서열을 중시하는 군 세계에서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어떻게 당당히 장관 집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답은 이날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쓰고 온 ‘모자(지위)’에 있습니다.

사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이날 주한미군사령관이 아닌 ‘주한미군 선임장교’의 지위로 국방부를 방문했습니다. 미군은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이 물리적 여건으로 한국군 수뇌부를 만나지 못할 때 주한미군에서 가장 높은 계급을 가진 사령관에게 ‘선임장교’로서 대리 자격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선임장교 지위로 미군 수뇌부의 권한을 위임 받으면 우리나라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연합ㆍ유엔군사령관도 겸임… 팔색조 변신 에이브럼스

실제로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 주한미군 선임장교 외에도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 지위도 갖습니다. 총 4개의 직책을 부여 받은 셈입니다. 군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4개의 모자를 쓴다”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지대(DMZ) 경계초소 운영 등 정전체제 관리(남북 군사 긴장 완화)를 할 때는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한미연합연습을 비롯해 한미 연합방위태세 관련 임무를 수행할 때는 한미연합사령관 모자를 쓰는 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주한미군을 지휘할 때는 ‘주한미군사령관’ 모자를 써야겠지요. 다만 '주한미군 선임장교' 직책에 해당하는 별도의 모자나 휘장은 없어 미군 수뇌부를 대리해 한국군 수뇌부를 만날 때는 보통 미군 정복을 입는다는 게 미군 측의 설명입니다.

한 사람이 동시에 4가지 직책을 겸하다 보니 그를 상대하는 우리 군 역시 가끔 혼란스러울 것도 같습니다. 한 사람 입에서 ‘네 가지 말’이 나오는 구조이기 때문이지요. 지난달 7일 국방부 청사에서 ‘주한 미군 선임장교’로 에이브럼스 사령관을 만났던 정 장관은 지난달 24일에는 유엔군사령부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유엔군사령관’ 에이브럼스에게 축하 서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제6회 한미동맹포럼'에서 정경두 국방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 팔꿈치를 맞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제6회 한미동맹포럼'에서 정경두 국방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 팔꿈치를 맞대고 있다. 연합뉴스


전작권 전환되면 애매해지는 모자… 성공적 전환 위해 ‘교통정리’ 필요

그런데 전작권이 전환되면 ‘애매모호해지는’ 모자가 하나 생깁니다. 바로 한미연합사령관 지위입니다. 전작권이 우리 군으로 넘어오면 한미연합사를 대체할 미래연합사령부가 생기는데요, 미래연합군사령관은 한국군 대장이, 그 아래 부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맡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전시가 되면 한반도의 전작권을 행사하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미군과 유엔 전력을 모두 지휘하는 구조입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도 동시에 겸하기 때문에 미군과 유엔 전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반대로 미군이 한국군 4성 장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미래연합사령부 부사령관으로 강등된 한미연합사령관이 사실상 미래연합사령관의 지휘를 받겠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여전하죠.

이 같은 하극상을 막기 위해 유엔군사령관을 한미연합사령관과 별도로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유엔군사령관과 미래연합사령관의 지휘 관계가 모호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더 큰 게 사실입니다.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을 통제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고요. 미군은 지난해 후반기 연합연습에서 전작권 전환 이후에 유엔사의 권한 확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엔사는 현재 영국, 벨기에를 비롯한 16개 유엔 전력국을 유사시에 한반도에 투입시킬 수 있습니다.

박한기 (왼쪽) 합동참모본부의장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달 1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박한기 (왼쪽) 합동참모본부의장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달 1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유엔사는 1950년 6ㆍ25전쟁 발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유엔의 보조기관’ 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유엔총회와 안보리는 유엔군 운용을 미국에 전적으로 위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미 양국은 1954년 11월 “유엔사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책임지는 한 그 군대를 유엔사의 작전 통제권 하에 둔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진영에서 유엔사의 법적 지위 등을 계속 문제 삼았습니다. 이에 한미는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만들어 전작권을 유엔사에서 한미연합사로 넘기게 됩니다. 오늘날 전작권 전환 논의 과정에서 유엔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과 더불어 미래연합사령관의 지휘 체계가 꼬이게 된 역사적 배경입니다.

때문에 전작권 전환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전작권 전환 이후에 유엔사 해체 여부 등도 검토했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2022년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각종 운용능력 검증에 들어간 현재 한미는 정작 유엔사를 둘러싼 복잡한 파워게임에 대한 교통정리는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작권의 성공적 전환을 위해서는 미래연합사령관에 한국군 장군을 앉히는 것만큼 한미연합사령관의 ‘모자 정리’도 중요해 보입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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