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낸 신학자 김진호
전직 대통령이 장로였던 강남의 한 대형교회 대학부는 신앙심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한다. 본인이 이른바 '스카이'라 불리는 명문대에 다녀야 하고, 부모의 스펙과 경제적 여유까지 따라줘야 한다. 교회인데도, 정작 믿음은 그 다음 문제다.
“강남의 대형교회 대학부는 일요일마다 ‘헌신노동’이란 걸 해요. 3주간의 단기 해외 선교도 있지요. 학비나 용돈 벌기 위해 시간이 자유롭지 않은 청년들은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거죠. 신앙생활의 진입장벽을 높여서 자연스레 ‘필터링’ 되도록 하는 겁니다.”
민중신학자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이 전한 한국 대형교회의 풍경이다. '재력과 권력을 거머쥔 ‘끗발 있는’ 사회지도층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더 공고하게 다지는 인맥공장', 그게 대형교회의 실체라는 진단이다. 무슨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가 한국사회에서 '계급'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라면, 여기에다 어느 교회를 다니는지까지 확인하면 '진짜 상류층'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줄기차게 한국 교회의 폐단을 비판해온 그는 최근 내놓은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오월의봄)를 통해 강남, 강동, 분당 등에서 성장해온 대형교회들을 파헤친다.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신자유주의 시대까지, 대형교회 변천사는 한국 현대사의 궤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교회가 원래부터 부자 중심은 아니었다. 1세대 선발 대형교회들은 반공 이념(영락교회)과 성장주의(여의도순복음)를 내세웠다. 모두가 헐벗고 배곯던 시절 “영혼의 구원, 몸의 구원, 궁핍으로부터의 구원”(조용기 여의도순복음 교회 원로목사)을 내세워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약자들에게 교회는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민주화 이후 교회는 지각변동에 휩싸인다. 이제 목사를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돈줄을 쥔 신자들이 목사를 선택했다. 김 위원장이 ‘주권신자’라 부르는 엘리트 계층의 등장이다. 강남의 소망교회나 사랑의교회 같은 대형교회는 돈, 권력, 지식을 갖춘 엘리트 주권신자들이 담임목사와 '함께' 교회를 키워나갔다.
이들 후발 대형교회의 새로운 정체성은 ‘웰빙보수주의’였다. 약육강식의 시대를 건너온 엘리트 주권신자들은 교회를 자신들의 후방으로 활용했다. “아버지 학교란 프로그램으로 가족의 가치를 되살리고, 청부론을 설파하며 도덕과 윤리를 소비하고, 부모 자식 세대에 걸쳐 인맥을 쌓으며 만들어 놓은 고급 네트워크까지. 이 모든 게 후발 대형교회가 만든 웰빙보수주의라 할 수 있죠.”
후발 대형교회들이 폭발적으로 세를 불려 나가자 다른 교회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웰빙보수주의는 그렇게 한국 개신교의 주류가 됐고, 돈 없고 빽 없는 약자들은 교회에서 밀려났다. “한국 교회에서 가난은 이제 타자화됐어요.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난은 실재하는 고통이 아니라, 내 삶을 환기시키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가 됐어요. 현실의 비루함은 발라낸 채 말이죠.”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이단으로 집중 조명받은 '신천지'에 대해서도 “한국 교회가 품지 못한 탈락자들”이란 해석을 내놨다. 신천지가 급성장한 2000년대 이후는 너나할 것 없이 웰빙보수주의 담론을 따라하기 시작했을 때다. 경제력도, 상징자본도 없는 사람들은 기존 교회를 떠나 신천지를 새 안식처로 삼았다.
“사람들은 흔히 전광훈 목사와 같은 극우 세력이 개신교를 망친다고들 하죠? 하지만 그런 분들은 과잉대표됐을 뿐 메이저가 결코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한국 교회가 가난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다는 거죠. 잘 나가는 대형교회의 시선이 더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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