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가족과 동료 선수 설득하며?
최숙현 선수 사건 세상에 알린
국가대표 감독 출신 이용 통합당 의원
“고(故) 최숙현 선수가 하늘로 떠난 지 40일 만에 청문회와 업무 보고를 통해 그들의 죄를 밝히고, 본회의에서 (최숙현법을) 통과시켜준 여야 국회의원과 언론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일 국회 본회의장, 이용(비례ㆍ초선) 미래통합당 의원이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정부ㆍ여당 법안만 상정된 이날 본회의에서 그는 제안 설명에 나선 유일한 통합당 의원이었다. 상대를 향해 야유와 고성만 지른 여야도 스포츠계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법안 처리에는 이견이 크지 않았다. 전날 법안의 체계자구심사 절차를 놓고 법사위가 파행을 겪었지만 표결 결과는 재석 275명 의원 중 270명이 찬성해 가결이 선포됐다.
손에 땀을 쥔 채 전광판을 바라보던 이 의원은 '찬성'을 나타내는 표시의 초록색 불이 각 의원들의 이름에 가득찬 화면을 보고 난 후에야 긴장감에서 해방된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를 향해 동료 의원들은 "축하한다"는 덕담을 건넸다. 본회의장을 나서던 김도읍(3선 ㆍ부산 북강서을) 통합당 의원이 다가와 악수를 건네며 격려했다. "니 온 지 두 달 됐는데 얼마나 걱정이 많았노. 고생했다."
'최숙현법' 통과되기까지 40일의 기록
최 선수가 사망한 지 40일 되는 날인 4일, 국회는 최숙현법을 탄생시켰다. 법안 통과까지 이 의원과 국회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타임라인으로 구성했다.
2020년 6월 26일 고 최숙현 선수 사망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 감독과 선배들로부터 폭행 등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22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최 선수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 등의 유언을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남겼다.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체육계 인맥이 두터운 이 의원은 우연한 계기로 그의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의정활동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섣불리 나서기 조심스러웠다. 발인 날짜인 6월 28일까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마음 먹었지만, 관련 보도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고 직감한 그는 발인 다음날인 6월 29일 보좌진을 최 선수의 가족이 있는 경북 칠곡에 보냈고, 전후 상황을 청취한 뒤 '무조건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7월 1일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첫 기자회견
이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숙현 선수가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공개하며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처벌을 촉구했다. 그는 "(최 선수 유언의) '그 사람들'은 선수와 같은 직장운동부에 속한 경주시청 감독과 팀닥터, 일부 선수들이었다"고 주장했다.
7월 6일 최 선수 사건 관련 추가 피해자 기자회견ㆍ 문화체육관광위 긴급 현안 질의
이 의원은 최 선수 소속팀의 추가 피해자들을 만나 폭로를 간곡히 설득했다. 그 중 두 명의 동료 선수들이 용기를 냈다. 추가 피해자들은 이 의원과 국회에 서서 김규봉 감독과 '팀닥터(운동처방사)' 안주현씨, 그리고 주장 장윤정 선수의 폭행, 폭언 사례를 증언했다. 그러나 이어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긴급 현안 질의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들은 관련 혐의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7월 10일 최 선수 아버지와 함께 '최숙현법' 발의 기자회견
최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씨는 딸의 사망 이후 찾아온 정치인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4일 경북 칠곡까지 찾아와 6,000원짜리 국밥과 소주 한 병을 사이에 두고 "숙현이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절대 이용하지 않겠다"는 이 의원 설득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10일 이 의원은 고인의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서서 "'고(故) 최숙현법'을 고인의 아버지 최영희 씨와 함께 발의하겠다"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7월 22일 국회 문체위, 철인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청문회 개최
이 의원은 최 선수가 생전에 쓴 일기의 일부를 공개하며, 경주시청팀에서 김 감독과 장 선수의 영향력 아래에서 여러 선수가 지속해서 최 선수를 가해한 정황을 알렸다. 문체위는 김 감독과 안 운동처방사, 장윤정 선수에 회의장 출석을 요구하는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결국 불참했다.
8월 4일 '최숙현법' 본회의 통과
최숙현법은 이달 운영 예정인 스포츠윤리센터의 기능 및 권한을 강화하고, 체육계 인권침해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내용이 골자다. 사건 이후 11건의 관련 법안이 여야를 막론하고 발의됐고, 문체위원장 대안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의원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법안 통과 소감을 묻자 "올림픽에서 금ㆍ은메달을 땄을 때처럼 벅차오르는 심경"이라고 했다. 다만 그때의 감정이 '환호'였다면 지금은 슬픔과 책임감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이라 부연했다. 이날 최영희씨도 그에게 '앞으로도 또 다른 숙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열심히 의정활동 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법안이 마련되고 통과되는 사이 최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한 가해자들은 속속 구속되거나 영장이 청구됐다. 안 처방사와 김 감독은 각각 지난달 13일, 21일 구속됐고, 장 선수는 5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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