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 공격ㆍ저격수 초선들, 이후 활동 봤더니
초선일 때 절대 공격수 노릇을 함부로 맡지 마시라. 비례 의원에게 저격수 역할을 흔히 맡기는데, 거기에 넘어가지 말라.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메가톤급 의혹 제기부터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막말공격까지 서슴지않으며 '전쟁 국회'의 선봉에 선 국회의원들. 흔히 공격수 혹은 저격수라 부르죠. 대중 정치인으로서 지명도는 올라가겠지만, 아무래도 손에 피를 묻혀야하는 궂은 일이다보니 중진들보다는 이제 갓 국회에 들어온 초선 의원들이 그 역할을 맡기 마련인데요.
이 때문일까요. 최근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경선에 나선 김부겸 전 의원은 미래통합당의 배현진ㆍ조수진 의원을 향해 "섣불리 공격수ㆍ저격수 노릇하다 멍드는 건 자신이고, 부끄러움은 지역구민의 몫"이라고 뼈있는 충고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각 당의 저격수들에게 정치 원로들이 일침을 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지금은 민주당 대표인 이해찬 의원은 통합신당에 몸담았던 2003년 '참여정부 저격수'로 떠오른 민주당의 초선 함승희 의원에게 "초선 의원인데 길을 잘못 들어섰다. 처음부터 사건 위주로 (의정 활동을) 하면 발전 못한다"고 훈계하기도 했죠.
이들의 훈계는 사실일까요. 아니면 꼰대들의 '라떼는(나 때는)'식 잔소리인걸까요. 정치권을 들썩이게 했던 초선 공격수들, 그 이후의 의정 활동은 어땠는지 들여다봤습니다.
'거친 입' 부메랑? 컷오프, 낙선에 송사 휘말려
바로 직전 문을 닫은 20대 국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공격수는 주로 야당에서 활약하기 마련이겠죠. 지난 국회서 정부ㆍ여당을 적극적으로 공격했던 통합당 초선 의원들 중에선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다시 얼굴 보기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데요.
올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려 욕설이 담긴 게시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등 '거친 입' 논란을 빚었던 민경욱 전 의원은 지역구에서 낙선했어요. 5ㆍ18 망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김순례 전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 이후 '비례대표'를 노리며 우리공화당(당시 자유공화당) 이적을 시도하기도 했죠. 지난해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공개,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던 강효상 전 의원은 외교 기밀누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그 역시 공천 경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생애 첫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했던 2016년 5월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여당의원을 하다 2017년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이어 예상 보다 빨리 치러진 2017년 5월 대선 때문에 1년 남짓 만에 야당 의원이 된 뒤 3년 가까이 공격수 노릇을 하다 '안타까운' 성적표를 받았죠.
이전 국회에서도 저격수로 활약하다 정계를 떠난 의원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기자 출신으로 2004년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 이후 '입심'을 발휘하며 박근혜의 입과 복심으로 통하던 전여옥 전 의원이 대표적이죠. 그는 19대 총선에서 공천에서 탈락하자 신당에서 비례대표 1번을 달았으나, 정당 득표율(0.7%)이 비례 당선 기준인 3%에 크게 못미치면서 여의도 입성에 실패했어요.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명박 저격수'로 불렸던 정봉주 전 의원은 해당 사실이 허위 사실이란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첫 특사에서 복권, 여러차례 선거 출마를 시도했으나 아직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이젠 '여의도 터줏대감'된 저격수들도 있어
물론 어엿한 중진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공격수 출신'들도 있습니다. 5선의 야권 잠룡,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1996년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공적자금, 벤처, IMF, 무기도입 등 김대중 정권의 4대 비리를 제기하면서 DJ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어요. 홍 의원은 당시 김문수, 이재오 의원과 함께 저격수 3인방으로 꼽히기도 했죠.
민주당에서 3선 의원을 지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과거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맞수'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김 장관은 비례대표 의원이던 17대 국회서 대변인을 맡아 '박근혜 견제'의 선봉에 섰어요.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장이던 박 전 대통령이 자기 생각 없이 수첩에 적힌 것만 읽는다며 '수첩공주'라 이름을 붙인 이도 김 장관이었죠. 같은당의 4선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역시 김 장관과 함께 초선 의원의 남다른 '전투력'을 뽐낸 바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초선 시절 물불 가리지 않고 열혈 공격수를 하던 이들이 하나같이 두번째 국회의원 배지를 단 뒤에는 이미지 관리에 들어간다는 사실인데요. 홍준표 의원은 당시 한 언론에 "저격수는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도 손사래를 치기도 했어요.
초선들 "공격수 안 하겠다" 선언도 했었다는데
2000년 7월, 여야 대치가 한창이던 국회에서 여야 초선의원 7명이 당의 '공격수' 역할 거부를 선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은 각 당 지도부에 자신들을 상대 당 공격수로 동원하지 말 것과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죠. 그러면서 초선의원 자신들도 그동안 지도부의 지시에 따른 것을 반성하며 더 이상 지도부의 '홍위병' 역할을 거부키로 하고 국회에서의 욕설과 고함, 삿대질 등도 중단하기로 했어요.
물론 정부ㆍ여당의 실책을 향한 공격과 비리에 대한 저격을 전부 나쁜 일이라고 몰아갈 순 없을 겁니다. 정계의 '원조 저격수' 박계동 전 의원은 초선이었던 14대 의원 시절 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폭로해 결국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서게 만들기도 했어요. 이처럼 제대로 된 저격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겠죠.
그러나 오늘의 국회에선 '아니면 말고'식 폭로와 막말로 극단적 편가르기를 부추기는 공격수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20년 전 그 초선들의 "우리는 대화와 타협이 있는 올바른 의회 문화 건설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던 선언은 어디로 가버린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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