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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 그들 축복한게 죄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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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 그들 축복한게 죄가 되나"

입력
2020.08.06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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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퀴어축제 참가했다가 교회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4일 한국일보와 만난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 감리회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을 든 그는 "시대착오적인 교회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4일 한국일보와 만난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 감리회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을 든 그는 "시대착오적인 교회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퀴어축제 이틀 전에 주최 측으로부터 참가자들을 축복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목회자는 사랑을 전하는 사람인데, 그 사랑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목사가 거부할 수 있나요."

4일 서울 서대문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환(40) 목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목사는 지금 시험에 들었다. 그저 성경적인 비유가 아니다. 이 목사는 지난해 8월 인천 퀴어문화축제에 참석, 하얀 목사복을 입고 성소수자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며 축복기도를 올렸다.

감리회 교회법 '교리와 장정'은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감리회는 이 목사의 축복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 지난 6월 이 목사를 재판에 회부했다.

교단의 재판 회부 결정으로 7년째 목회 활동을 해왔던 경기 수원의 영광제일교회 담임목사 자격도 정지됐다. 목사로 교회에 나가 설교나 예배를 할 수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교회 재판에서 문제가 있다는 판결이 나올 경우 정직, 면직, 출교 등의 처벌도 받아야 한다. 이 목사 개인의 인생, 신앙생활 전체를 걸어야 할 판이다. 조만간 첫 재판이 열린다.

동시에 이 사건은 이 목사 개인 차원을 넘어섰다. 국회에 법안이 제출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란과도 맞물려 있다. 그렇기에 교회 내 재판임에도 이 목사를 지원하기 위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9명를 비롯, 감리회 목사 등으로 구성된 43명의 공동 변호인단이 구성됐다. 성소수자인권단체 및 시민 600여명도 이 목사 구명을 위한 탄원서를 냈다.

이 목사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재판에서 법리를 다투기보다는 목사가 누군가를 축복한 것이 어떻게 죄가 되는 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물론 인천 퀴어축제 당시 동성애를 금지하는 교회법 조항이 잠깐 떠오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축복과 동성애를 찬성, 동조하는 것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개인적 경험도 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감리교신학대를 나와 목사가 된 그 역시도 처음에는 동성애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던 중 자기 교회에서 동성애자가 나타났다. 이 목사는 "5년 전 한 신도가 상담 도중 커밍아웃을 해왔는데 내가 어찌 할 바를 몰라 크게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오직 이 목사 한 사람만 믿고 자기 인생의 가장 내밀한 비밀을 털어놓은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동성애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성경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심리학, 의학 책 가릴 것없이 관련 서적은 죄다 구해다 읽었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며, 찬성이나 반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 이 목사는 물론, 다른 신자들까지 성소수자 신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지난해 8월 인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이동환 목사가 성소수자들에게 꽃잎을 뿌리며 축복기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인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이동환 목사가 성소수자들에게 꽃잎을 뿌리며 축복기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목사는 자신을 재판에 회부한 것 못지 않게, 성소수자를 위한 기도를 'n번방'에 비유한 교단 성명에 또 충격을 받았다. 최근 교단은 이 목사 비판 성명을 내면서 성소수자를 위한 이 목사의 기도를 'n번방' 범죄에 빗댔다. 이 목사는 "성소수자들은 물론, n번방 사건 피해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이라면 "교회가 무너진다면 동성애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말들 때문에 무너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목사는 한국 감리교의 정신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래 감리교는 18세기 영국에서 보수적 국교회에 대한 반발 때문에 탄생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 빈민처럼 가진 것도 기댈 곳도 없는 이들을 위해 활동한, 아주 진보적인 교단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만 유독 교회 세습 논란에 이어 n번방 운운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일단 재판을 이겨야 한다. 이 목사가 속한 감리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가 1심, 총회 재판위원회가 최종심을 맡는다. 그 뒤엔 장기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법을 고치는 운동에 나설 생각이다.

"개신교는 지금까지 성경을 근거로 마녀사냥이나 노예제도 인정했고,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했죠. 지금은 누구나 다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하죠. 동성애도 그렇습니다. 50년, 100년이 지난 뒤 되돌아봤을 때 교회는 어떤 평가를 들을까요. 혐오나 배제가 아닌 관용이어야 합니다. 경계의 한계가 사랑의 한계입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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