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ㆍ끝> 오스카까지 손에 쥔 봉준호 감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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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지난해 탄생 100년을 맞았습니다. 영화만큼 재미있는 한국영화 100년의 이야기를 영화전문가가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서 들려드립니다. 한국일보>
‘괴물’(2006)의 발상은 잠실고 3학년 때 찾아왔다. 그 무렵 봉준호 감독은 서울 잠실동 장미아파트 13층에서 살았는데 방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던 그는 뭔가 모를 괴물체가 교각을 기어오르다가 강물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언젠가 한강변을 무대로 한 괴물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2002년 3월, 봉 감독은 63빌딩이 보이는 한강 풍경에 네시(네스호의 괴물)를 합성한 사진을 들고 영화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를 찾아가 영화의 기본 컨셉트를 설명했다. ‘살인의 추억’(2003)의 촬영이 종료된 2003년 1월부터 사전 제작 단계에 들어갔지만 제작비 조달에 많은 난항을 겪었다. 한국 영화의 기술 수준으로 괴물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던 탓이었다.
투자 유치 쉽지 않았던 ‘괴물’
특수효과는 ‘괴물’의 제작에 있어 가장 큰 장벽이자 도전이었다. 괴물의 초기 모형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웨타 워크숍에서 작업했고, CG작업은 ‘헬 보이’(2004), ‘슈퍼맨 리턴즈’(2006) 같은 영화에 참여한 바 있던 오퍼너지가 맡았다. 대부분의 시각효과가 괴물의 3D 그래픽에 집중되어 별도의 배경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180개에 달하던 합성 분량을 120개 장면으로 줄이면서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1년 동안 봉 감독은 자전거로 한강을 샅샅이 뒤지며 괴물의 아지트 격인 원효대교 북단의 하수구부터 서강대교 남단 한강공원과 한강철교 북단, 옥수 빗물펌프장과 중랑천 철문 우수구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될 공간들을 찾았고, 그에 맞춰 시나리오와 콘티를 완성해나갔다.
제5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괴물’은 7월 27일 630개의 스크린을 잡고 국내 개봉했다. 딸을 찾는 여정에 나선 소시민 가족의 사투를 그린 이 영화는 평소 들여다 볼 일 없는 한강의 하수구 공간처럼 평온한 일상의 표면 아래 감춰져 있는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들추어냈고, ‘왕의 남자’(2005)를 상회하는 1,301만 관객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저수지의 개들’(1992), ‘펄프 픽션’(1994) 등의 명장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작품을 두고 “정말 훌륭한 한국 괴수 영화”라 격찬하며 봉준호를 1970년대 스티븐 스필버그에 비견했다. 한국적인 풍경 속에서 약자를 도와주지 않는 사회 시스템의 폭력,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봉준호 영화의 작가적 구도는 ‘마더’(2009)에서 약자들끼리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더욱 염세적인 비전으로 극단화된다.
첫 국제 프로젝트에 나서다
“지난 세 편의 장편에서 저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내용을 연이어 담았죠.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한국사회에 대한 발언이 거의 없는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최소한 그건 이룬 것 같아요. ‘괴물’ 때 워낙 많이 해서 저 스스로도 낯간지러워져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봉준호 발언,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연이은 성공은 봉 감독에게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할 활로를 뚫어주었다. 프랑스 감독 미셀 공드리, 레오 까락스와 손잡고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의 3부인 ’흔들리는 도쿄‘를 찍었다. 이 영화 말고도 해외 영화 연출 제안을 여러 번 받았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할리우드에서 나오미 와츠 주연으로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새‘(1963)를 리메이크해달라는 경우도 있었고, 일본에서는 만화 ’20세기 소년‘의 극장판이나 유괴사건과 계급의 문제를 다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범죄물 ’천국과 지옥‘(1963)의 리메이크 요구도 있었다.
그러나 봉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해외 진출이 아닌, 작품에 대한 통제권을 100% 보장받을 수 있는가 여부였다. 작품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면서도 국제적인 규모의 영화를 만들고자 한 봉 감독의 의욕은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인 437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마지막 필름 영화 ’설국열차‘(2013)로 현실화된다.
‘설국열차’는 ‘괴물’을 준비 중이던 2004년경부터 구상했다. 만화광이기도 했던 봉 감독은 홍익대 근처 단골 서점에서 동명 원작 프랑스 만화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선 채로 다 읽어버렸다고 한다. 종착점 없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칸마다 계급이 나뉘어 살아가는 미래의 사회상은 서로 다른 계급간의 갈등, 혁명의 사회적 모티브를 다루기에 적합한 무대로 보였던 것이다.
봉 감독의 권유로 원작을 읽은 박찬욱 감독이 제작자로 선뜻 나서면서 판권을 구입하고 청신호가 켜진 ‘설국열차’는 체코에 촬영장을 설치하고 틸다 스윈튼, 존 허트, 에드 해리스, 크리스 에번스 등이 배역진에 합류하는 등 유례없는 국제적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처음엔 산삼 이야기였던 ‘옥자’
영어와 한국어 두 언어가 병존하는 제작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듯, 봉 감독의 작가주의와 상상력 또한 한국의 지역성을 넘어서 전 지구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의식으로 옮겨갔다. 산삼을 팔고자 도시로 가는 시골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던 ‘둔자’ 시나리오는 2010년 경 운전 중 이수교차로에서 돼지처럼 생긴 생물체가 고가도로를 가득 메우는 상상과 포개지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2013년 7월 ‘설국열차’의 서울 언론시사 행사를 끝낸 봉 감독은 인천공항으로 가는 중에 틸다 스윈튼과 최두호 프로듀서에게 연필로 직접 그린 옥자와 미자가 숲에 있는 한 장면의 스케치를 내밀었고 이것이 ‘옥자’(2017)의 초기 컨셉트가 되었다. 어린 소녀가 반려동물을 되찾고자 한국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모험을 그린 이 영화는 생명까지 거래의 대상으로 물화(物化)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을 겨냥한 서늘한 우화였다.
‘설국열차’를 작업하던 도중, 20대 시절 가정교사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돌이킨 봉 감독은 부유한 상류 계급과 가난한 하층민 가족이 엮이는 이야기의 대강을 뇌리에 떠올렸다고 한다. 2015년 4월 봉 감독은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에게 ‘데칼코마니’라는 가제의 A4 용지 15장 분량의 트리트먼트(상세히 서술한 이야기 개요)를 건넸고, 이것이 바로 ‘기생충’(2019)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녀’(1960)와 ‘충녀’(1972), ‘육식동물’(1984)에서 계단이 있는 공간의 수직을 통해 계급 차이를 그렸던 김기영(1919~1998) 감독의 구도를 현대에 되살려 낸 ‘기생충’은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취약계층의 문제가 만국 공통의 이슈가 된 시대의 폐부를 찔렀다. 2019년 5월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첫 공식 상영회에서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았던 ‘기생충’은 칸영화제 사상 22번째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한국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봉 감독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영화가 차지할 영광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세계 영화계의 이목을 끈 ‘기생충’은 여러 영화제를 휩쓸었고, 종국엔 올해 2월 9일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샘 멘데스의 ‘1917’(2019)이 우세할 거란 예상을 뒤엎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역전극을 선보였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상징적인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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