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배우를 영화 한편만으로는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영화와 저 영화를 연결지어 영화에 대한 여러분의 지식의 폭을 넓히고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자 합니다.
영화 ‘만추’(1966) 등으로 유명한 이만희(1931~1975) 감독은 1965년 2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연출작 ‘7인의 여포로’(1965) 때문이었다. 인민군이 국군 여군 포로를 겁탈하려는 중공군을 사살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악마로 묘사돼야 할 인민군을 민족애를 지닌 ‘인간’으로 그려서다. 인민군 장교가 여군 포로를 호송하다 남한에 귀순한다는 반공영화였음에도 감독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1980년대까지 남북 관련 영화 내용은 단순했다. 북한은 그저 악이었다. ‘남부군’(1990)이 인간의 얼굴을 지닌 공산주의자를 다루면서 남북 영화는 전환점을 맞는다. 남북한 첩보원간 사랑을 그린 ‘쉬리’(1999)는 진일보한 영화였다. 남북한 군인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교유한다는 내용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파격이었다.
‘쉬리’ 속 남남북녀의 사랑은 박무영(최민식) 소좌의 테러 공격으로 소멸하고, ‘공동경비구역’ 속 남북한군 사이 우정은 북한 장교 최 상위(김명수)의 총격으로 산산조각 난다. 이후 나온 남북 영화는 남북한인이 서로 인간적으로 만나는데, 강성주의자 때문에 화해 또는 교류가 파국을 맞거나 위협 받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의형제’(2010)와 ‘공조’(2017), ‘공작’(2018) 등이 대표적이다.
‘강철비’(2017)는 이전보다 두 발짝 정도 전진한다. 북한 엄철우(정우성)와 남한 곽철우(곽도원)의 만남을 통해 남북 화해를 모색하면서도 한반도 주변 강대국 관계자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다. 민족애나 인간애라는 감성을 유지하면서 지정학이라는 이성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상영 중인 ‘강철비2: 정상회담’은 ‘강철비’의 후속편이면서 확장판이고,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다. 두 영화의 내용 전개는 닮은 꼴이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한반도는 격랑에 휘말리고, 주변 강대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기민하게 움직인다. 배우 쓰임새는 정반대다. ‘강철비’에서 북한 장교를 연기한 정우성은 ‘강철비2’에서 남한 대통령이다. 청와대 참모였던 곽도원은 북에서 쿠데타를 주도하는 호위총국장으로 변신한다.
강대국 인물들은 동일하다. ‘강철비’에서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부장을 연기한 크리스틴 댈튼은 ‘강철비2’에서 미국 부통령으로 승진한다. ‘강철비’의 일본 극우인사 다카시(김중기)는 여전히 다카시다. 한국 내 중국 정보총책 리홍장(김명곤)은 ‘강철비2’에선 주한중국대사로 자리를 옮긴다. 구한말 한반도 정세에 깊게 간여했던 청나라 유력 정치인 리홍장을 빗댔다. 강대국의 입장은 그대로고, 한반도 상황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양우석 감독의 인식이 투영됐다. 양 감독은 말한다. “남북이 바꿔본다 해도 한반도 문제는 우리 의지만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강철비’ 시리즈를 제외하면 최근 남북 영화는 대체로 지리멸렬이다. 바뀔 듯 안 바뀌는 남북한 관계의 반영이리라. 시야를 넓혀 현실을 보자며 냉철한 이성에 호소하는 ‘강철비2’의 접근은 도전적이다. 그래서 상업적인 실패는 어느 정도 예정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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