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아무래도 여름이다. 끈적하게 들러붙는 더위를 단숨에 날려 보낼 서늘한 스릴러와 호러, 기나긴 장마의 지루함으로부터 탈출시켜 줄 기발한 상상력의 SF, 열대야의 밤을 초단시간으로 단축시켜줄 흥미진진한 추리까지. 각 장르 분야의 대표 출판사들이 올여름 놓쳐서는 안 될 '우리 출판사 강력 추천 장르소설' 7편을 소개한다.
스티븐 킹 '인스티튜트'
‘인스티튜트’는 스티븐 킹이 가진 장점이 가장 잘 살아있는 소설이다. 정부의 비밀 시설이 아이들을 납치한다,라는 설정이 새롭진 않지만 뻔한 소재를 늘 새로운 걸로 보이게 만드는 스티븐 킹의 마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책을 처음 펼쳐 든 순간, 충격적이거나 놀라운 도입부가 아님에도 책장을 덮고 올려 본 벽시계의 시침이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던 충격은, 집에서 보내는 휴가에 무료함을 느낄 만한 이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경험이다.
추천인: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
미스터 펫 ‘범죄의 붉은 실’
여름밤 읽을 추리소설의 요건에는 어떤 게 있을까? 너무 머리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되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얼른 책장을 넘기고 싶어질 만큼의 긴장감이 있으면 좋겠고, 내 예상을 기분 좋게 배신할 결말까지 기다리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허구로서의 자극성은 있지만 현실성을 해칠 만큼 과장되어 있지 않은 범죄, 그리고 그 범죄의 붉은 실을 좇아 진상을 밝히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한 여름밤의 더위를 잊기 충분하고도 남는다. 게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마지막 단편은 강추!
추천인: 임지호 엘릭시르 주간
세계문학 단편선 '시어도어 스터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멀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싶은 2020년 여름, 인류를 향해 ‘서로 사랑하라’고 노래했던 SF 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의 단편 선집을 권한다. 스터전은 어설라 르 귄, 테드 창 등 숱한 장르 작가들이 거쳐 간 ‘시어도어스터전 기념상’과 순문학에 대한 장르문학의 통쾌한 한 방인 ‘스터전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양차 대전과 냉전을 겪으면서도 그는 인류가 회복과 공존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이러한 메시지를 작품에 담았다.:SF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감’이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에 대한 ‘공감’일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단편집.
추천인: 김현지 현대문학 팀장
이두온 ‘타오르는 마음’
정유정과 미야베 미유키의 극찬을 받은 K-스릴러의 뉴 제너레이션, 이두온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어느 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 '비말'의 평원에서 여섯 구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흥행하자 마을 축제는 점점 연쇄살인을 전시하는 형식으로 변모되고 쇠락한 마을엔 넘실대는 파도처럼 관광객이 밀려든다. 그리고 9년 뒤, 새로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한 사람들과 비밀을 파헤치려는 소녀. 스산한 마을의 복판에서 펄떡이며 살아 숨 쉬는 인물들과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들에 대한 묘사가 강렬하다. 무덥고 습한 여름밤, 이두온이 정교하게 쌓아 올린 그로테스크한 세계에 모두 흠뻑 젖어들 것이다.
추천인: 김서해 은행나무 편집자
요 네스뵈 ‘목마름’
곧 출간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의 제11권이다. 오랜 연인 라켈과 결혼한 해리. 처음으로 가정을 꾸린 그는 자신 앞의 행복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한편, 희생자의 피를 마시는 연쇄살인마가 나타나 오슬로를 충격에 빠뜨린다. 마침내 오슬로 경찰청은 형사 생활을 접고 경찰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해리를 설득해 수사에 투입시킨다. ‘목마름’은 제목이 말해주듯 갈망에 대한 소설이다. 갈망의 강렬함에 비해 손 안의 행복은 때때로 너무나 연약하다. 그 부서지기 쉬운 행복이 깨어지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안도하는 것이 아닐까. 피를 향한 범인의 목마름만큼이나 간절한, 범죄에 이끌리는 해리의 목마름. 그 목마름이 해리의 행복을 자꾸만 위태롭게 만든다.
추천인: 이승희 비채 편집장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
정세랑의 다정함과 문목하의 흡인력을 두루 갖춘 역대급 괴물 신인 작가 천선란의 첫 소설집. 치매 어머니가 기억하는 유일한 단어인 ‘작가’, 그 기억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몇 년간 매일 4시간씩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며 쓴 몽환적이면서도 우아한 소설들이다. 장편 ‘천 개의 파랑’으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으며, 벌써부터 ‘포스트 김초엽’으로 장르계와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천선란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추천인: 최재천 아작 편집장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허블에서는 올여름 ‘SF 작은 책 시리즈’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를 선보인다. 우주를 건너는 로봇 새 ‘조에’의 이야기를 경이로운 감각으로 그린 김혜진 소설집 ‘깃털’, 할머니들의 우정과 연대를 그린 이루카 소설집 ‘독립의 오단계’, 십대 소녀들의 선망과 질투를 VR 소재로 담아낸 박지안의 ‘하얀 까마귀’까지. SF 신인 여성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소설을 소개한다. 14일부터 MBC에서 방영되는 시네마틱 드라마 ‘SF8’의 원작소설도 각각 수록되어 있다. 김혜진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는 민규동 감독의 ‘간호중’으로, 이루카의 ‘독립의 오단계’는 문소리 주연의 ‘인간증명’으로, ‘하얀 까마귀’는 장철수 감독의 동명의 드라마로 안방극장을 찾아갈 예정이다.
추천인: 조유나 허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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