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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대낙' 프레임에 맥 풀려버린 민주 전대, 흥행 실패 먹구름

입력
2020.08.12 20: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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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8ㆍ29? 전당대회

편집자주

‘김영화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정부와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치열하게 다투다가도 타협을 이끌어내는 게 정치입니다. 그 이면의 합의와 조정 과정을 따라가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박주민, 김부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왼쪽부터)가 2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광역시당 정기대의원대회 및 당대표,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구=뉴스1

박주민, 김부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왼쪽부터)가 2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광역시당 정기대의원대회 및 당대표,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구=뉴스1


전당대회는 정당이 개최하는 전국 규모의 대의원 대회다. 주로 대표ㆍ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자 선출, 당헌ㆍ당규 개정 등을 위해 열린다. 코엑스, 킨텍스 같은 대형 전시장, 실내경기장 등 대규모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곳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축제처럼 치르는 게 일반적이다. 시민의 정치 조직인 정당에서 전대는 당내 다양한 이익의 표출과 집약, 조정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당내 세력들이 선명한 비전과 가치를 들고 나와 건설적 논쟁을 하고 종국적으로 다수결에 의해 하나로 의견을 모아가는 것이다. 전대에서 승리한 대선 후보나 해당 정당의 지지율이 이전에 비해 크게 상승하는 이른바 컨벤션 효과가 발생하는 건 이처럼 민주적 의사 결정을 통해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 지지도지난달 29~30일 전국 만18세 이상 1150명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윈지코리아컨설팅

흥행 참패한 역대급 무관심 전대

더불어민주당 계열에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박빙의 전대 승부는 2012년 6월 9일 치러진 민주통합당 2차 전대가 꼽힌다. 당시 대의원 순회투표 내내 김한길 후보가 선두를 달렸으나 막판에 모바일투표 결과가 공개되면서 이해찬 후보가 불과 0.5%포인트 차이로 대표로 선출됐다. 친노(이해찬)와 비주류(김한길) 진영이 맞붙었고, ‘이해찬 당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약속이 오갔다는 이른바 ‘이박 담합’ 논란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친노 진영이 당권을 잡으면 대선을 준비 중인 문재인 고문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손학규, 김두관 진영이 비주류 진영을 도우면서 전대 판을 더 달궜다.

그때와 비교하면 민주당 8ㆍ29 전대는 흥행 참패에 가깝다. 당 대표 경선일이 2주 남짓 앞으로 다가왔지만 좀처럼 선거 분위기가 뜨지 않아 당 지도부도, 당권 주자도 전전긍긍이다. 전대에 대한 관심은 부동산 폭등, 거대 여당 독주, 청와대 개편 같은 현안에 묻힌 지 이미 오래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국적인 폭우로 수해가 속출하면서 전대 선거운동이 전면 중단됐다. 민주당은 지난 8~9일 호남지역 순회합동연설회를 연기한 데 이어 충남ㆍ세종ㆍ대전(14일), 충북(16일) 연설회도 온라인 행사로 대체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출마 입장을 밝힌 이낙연 의원이 지난달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출마 입장을 밝힌 이낙연 의원이 지난달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어대낙’ 프레임과 친문 표심 구애 경쟁

8ㆍ29 전대 흥행 부진 원인을 되짚어볼 때 수해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여권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후보의 전대 출마 감행이라고 민주당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국무총리까지 지낸 대선 주자급 거물의 등판은 전대 판도를 단숨에 바꿔버렸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 분위기가 당 저변에 흐르면서 선거 판의 맥이 확 풀렸다. 하지만 어대낙 정서는 이 후보의 당권 경쟁력을 확실히 인정한다는 차원보다는 “우리 대선 후보인 이낙연을 어떻게 안 찍을 수 있겠냐”는 심리에 가깝다. 이 후보가 지면 유력한 대선 후보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송영길, 홍영표, 우원식 의원 등 차기 당권을 노렸던 중진들이 줄줄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송영길 의원은 “전대에 출마하면 정권 재창출의 주역이 되겠다고 말해야 하는데, 유력 대선 후보를 흠집 내놓고 정권을 재창출한다는 것은 형용 모순 아니냐”고 반문했다.

47세 재선 의원 박주민 후보가 가세해 3파전 구도로 바뀌면서 그나마 조명을 받게 됐지만, 당권 주자 사이의 차별성이 없다는 것도 흥행 저조의 원인으로 꼽힌다. 당초 양자 대결이 점쳐졌던 이낙연, 김부겸 후보는 정통 친문 주자가 아니다. 박 후보도 친문의 대표 선수로 출마한 것은 아니다. 당내 최대 계파가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 보니, 이번 전대에선 집권 4년차인데도 현재 권력에 대한 비판이나 미래 권력의 비전 제시가 화두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남는 것은 그저 문재인에 대한 충성 경쟁, 문팬들을 향한 구애 경쟁뿐”이라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진단대로 당권 주자들은 친문 유권자의 심기를 거스를까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의 위기를 극복할 과감한 제안이나 미래 비전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지 않으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만 주는 건 당연하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3일 여의도 캠프에서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3일 여의도 캠프에서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흥행 부진 전대, 남은 3대 관전 포인트는

여론조사 전문업체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지난달 29~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39.9%, 김 후보와 박 후보는 각각 21.8%, 15.7%를 기록했다. 이변이 없는 한 ‘1강 2중’ 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남은 전대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 정도로 좁혀진다.

먼저 이 후보가 표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다. 이 후보 최대의 아킬레스 건은 ‘7개월짜리 당 대표’라는 점이다. 대선에 출마하려면 내년 3월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서울ㆍ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당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만든다는 건 부담이다. 하지만 ‘7개월 당대표 비토론’에도 불과하고 이 후보가 과반 득표를 한다면 대세론에 힘이 실릴 수 있다. “향후 넉 달이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가늠하는 마지막 기회”라는 출마 명분대로 적절한 당청 관계 조율로 하반기 국정을 원만히 이끌어간다면 대권 가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두 번째 관심은 김 후보의 성적표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김 후보는 ‘대선 불출마’ 배수의 진을 치고 당 대표 선거에 도전했다. 그가 이 후보를 이기는 이변을 낳는다면 확실한 대선 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 경우 받을 타격도 만만치 않다. “큰 전쟁이 다가오는데 남은 총알은 하나뿐”이라던 출마 전 하소연대로 이번에도 패배한다면 대선 주자로서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 후보의 출마를 만류했다는 수도권 한 중진 의원은 “김 후보가 이번에도 지면 정치 인생에선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다만 김 후보가 지더라도 박빙의 승부를 만든다면 퇴로는 열려 있다. 실제로 김 후보는 영남이라는 확실한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어 득표력이 만만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잠재적 대권 주자가 치명적 상처를 받지 않도록 호남 당원들이 전략적 투표를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세 번째 관심은 박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느냐다. 그는 2년 전 초선 의원임에도 전대에서 수석 최고위원 자리를 거머쥐었던 475세대 대표주자다. 그가 15%까지 지지를 받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1등보다 2등이 관심인 전대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까지 세대교체 바람은 미미하다. 수도권 출신이라 확실한 지역적 기반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 86세대 한 중진 의원은 “박 후보의 등판으로 영호남 대결 구도가 약해진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까진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고 평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박주민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박주민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조용한 전대의 수혜자는 누구

당내에선 차라리 조용한 전대가 낫다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계파 싸움으로 점철된 전대가 결국 탈당, 분당으로 이어졌던 기억 때문이다. 2015년 2월 8일 친문 패권주의가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불과 3.5%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 났던 새정치민주연합 1차 전대가 대표적이다. 당시 문재인ㆍ박지원 후보 양강 구도였던 전대의 후유증은 1년 뒤 국민의당 분당으로 귀결됐다.

그렇다면 조용한 전대는 앞서 나가는 이 후보에게도 이득일까. 일단 대세론이 굳어질수록 후발주자들이 따라잡을 기회가 없으니 단기적으론 이익일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최근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는 보여준다. 한때 40%대까지 올라갔던 이 후보의 지지율은 리얼미터가 지난달 27~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5.6%까지 떨어졌다. 최근 대법원 무죄 판결을 계기로 지지율이 19.6%까지 올라선 이재명 경기지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당내에선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가 더 좁혀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이 지사가 특기인 ‘사이다’ 발언을 계속하고 강력한 행정력으로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반면, 이 후보는 대표가 되더라도 수습하고 책임질 일만 생길 공산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대는 당내 세력 간 가치와 비전이 맞부딪히는 공간이다. 때로는 상대 약점을 가차없이 물어뜯기도 한다. 차별화를 시도해야 자기 정체성이 형성되고, 싸워야 맷집이 늘고 면역력도 생긴다. ‘부자 몸조심’ 태도로 컨벤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수도권 한 중진 의원은 “이 후보가 확실한 대선 주자로 올라서려면 현재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층에 얹혀 있어선 안 된다”며 “자신만의 철학과 깃발로 지지자들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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