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제시·장소제한·복제본 압수 원칙 지켜야"
사소한 실수인지, 중대과실인지... 대법 판단에
사소한 실수인가, 중대한 과실인가. 지난 10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유독 이상훈(65)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만 1심과는 달리 무죄를 선고한 배경에는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한 이처럼 엇갈린 인식이 있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에 대해 2심 재판부가 엄격하게 판단한 것인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유지될지 주목된다.
이 사건은 원래 이명박(79)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지목된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검찰은 ‘삼성전자의 다스 미국 소송 비용 대납’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2018년 2월 8일 삼성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그때 인사팀 직원 심모씨의 증거인멸 정황을 포착, 그가 회의실과 자신의 차량에 숨겨둔 전자정보 저장매체 7개를 원본 그대로 압수했던 것이다.
영장 제시 안한 위법은 1·2심 모두 인정했지만...
총 390쪽 분량인 이 사건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20여쪽에 걸쳐 압수물의 증거 능력과 ‘위수증’ 문제가 상세히 기술돼 있다. 이 전 의장 측은 1심 때부터 “검찰이 수집한 증거는 위수증”이라고 항변했다. 압수수색 당시 수사팀이 △심씨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고 △인사팀 사무실과 심씨 차량은 영장에 적힌 압수수색 장소가 아니며 △저장매체 원본을 반출하는 위법을 저질렀다는 주장이었다.
1심 재판부는 그러나 “압수 대상자의 방어권이 보장됐다면 영장제시 원칙의 취지는 달성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장 제시를 하지 않은 건 형식적으로 위법이긴 하나, 그 이후 심씨에게 압수 목록을 제공했고 조사 참여권도 보장했다는 점에서 “적법절차의 실질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중하지 않은 위법을 문제 삼는 건 형사 사법 정의 실현의 이념에 어긋난다”고도 설명했다.
반면 2심은 영장 제시의 원칙을 ‘칼 같이’ 지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야만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는 불법 수사를 방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압수 대상자가 여러 명일 경우,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도 강조했다. 당시 검찰이 법무실에 있던 임원들과 소속 변호사에게만 영장을 보여준 건 명백한 위법이라는 뜻이다. 2심 재판부는 “절차 위반의 내용과 정도가 중해 증거능력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압색 장소 확대 해석 경계한 항소심
2심은 또, “영장에 따라 압수 물건과 장소를 한정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사건 압수수색 영장에 ‘압수할 물건이 옮겨진 장소’와 ‘인사팀 자료로 보이는 물건들’이 부기돼 있긴 했으나, “장소 등의 추가는 제한적으로만 이뤄져야 한다”고도 밝혔다. 수사기관이 자의적 판단으로 압수수색을 확대하거나, 장소 제한이 없는 영장을 발부받는 건 막아야 한다는 이유다. ‘영장에 부기된 내용을 토대로 한 적법한 압수 행위’로 본 1심과는 180도 판단을 달리 한 셈이다.
디지털 증거 반출 및 조사방법 판단도 갈려
저장매체를 복사하지 않고 원본 그대로 검찰이 가져간 사실에 대한 해석도 정반대였다. 1심 재판부는 “하드디스크 이미징에 열흘이나 걸린 점에 비춰 ‘복제본 획득이 현저히 곤란할 때’라고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2심은 “복제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 ‘곤란한 사유’로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별도 혐의가 발견됐다면 즉시 탐색을 중단하고 새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야 했다고도 지적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최근 법조계에서 종종 논란이 되고 있는 위법수집증거 문제는 또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법적 허용이 가능한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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