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덜위치칼리지 유죄 판결에도
외국인 이사 3명은 해외서 원격 운영
교육청 수수방관에 감시 사각 '위험 수위'
내국인 비율 증가세?"관리감독 강화해야"
편집자주
외국인학교와 국제학교는 태생부터 ‘귀족학교’ 논란을 불렀다. 하지만 10여년전 정부는 입학과 설립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이들 학교가 선진교육의 모범을 보이며 천편일률적 국내 교육현장에서 메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리 온상 내지는 외국 명문대 입시를 위한 발판이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태를 확인하러 학교담장 너머를 들여다봤다.
초고가 아파트가 늘어선 서울 서초구 반포동 요지에 자리 잡은 영국계 외국인학교 ‘덜위치칼리지 서울’(덜위치 서울). 금속과 유리, 붉은 벽돌을 과감하게 조합해 꾸민 세련된 건물 외관과 벽에 달린 유럽풍 방패 모양 문장(紋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운동장을 둘러 세운 6m 높이의 철조망 울타리에 덩굴 식물까지 빽빽하게 심어 놓아, 밖에서는 학교 내부를 전혀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근처 다른 학교의 야트막한 담장과 대조돼 마치 고립된 섬처럼 보였다. 이런 폐쇄성이 문제였던 걸까. 덜위치 서울은 각종 비리 의혹으로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2010년 개교한 덜위치 서울은 유치원과 초중고 과정을 운영하며 현재 외국인 529명, 내국인 138명 등 학생 670여명이 다닌다. 설립 초기부터 일해온 전ㆍ현직 한국인 직원 2명은 최근 한국일보와 만나 교비 빼돌리기가 의심되는 학교운영 실태를 폭로했다. 이들은 “해외 도피 중에도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하며 한국 교육과 사법당국을 우롱하는 외국인 이사들의 행태를 더는 참을 수 없었다”며 내부 고발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외국인 이사들이 교비 빼돌려
덜위치 서울의 법인 이사들은 등록금으로 조성된 교비회계에서 72억원을 끌어다 건물 공사비로 사용하고, 별다른 근거도 없이 프랜차이즈 비용 명목으로 36억원이 넘는 교비를 해외 법인으로 빼돌리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8년 12월 일부 유죄(2심 기준)가 선고됐다. 그런데 형사처벌은 별다른 권한도 없이 들러리 역할만 해온 한국인 이사들만 받았다. 범행을 주도한 외국인 이사들은 해외에 머물고 있어 기소중지 되거나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외국에서 버젓이 학교를 원격 운영한다. 이런 외국인 이사들이 학생들의 등록금과 입학금으로 조성된 교비를 교육 이외 목적으로 사용하는 걸 금지한 현행법을 우회하기 위해 학생들을 위한 지출처럼 가장한 뒤 교비를 빼간다는 것이 직원들의 주장이다.
학교 직원 A씨는 “'덜위치칼리지 인터내셔널'이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학교와 용역이나 물품거래를 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고 주장했다. '덜위치칼리지 인터내셔널'은 서울 외에도 중국 베이징ㆍ상하이, 싱가포르, 미얀마 등에서 ‘덜위치칼리지’라는 이름을 단 외국인 학교를 여러 곳 운영하는 지주회사 격이다. 그런데 덜위치칼리지 인터내셔널의 주축 멤버가 바로 해외로 머물고 있는 덜위치 서울의 외국인 이사 3명이다. 이들의 국적은 각각 영국과 스위스, 싱가포르이다.
한국일보가 페이퍼컴퍼니 중 한 곳으로 지목된 ‘덜위치칼리지 매니지먼트 서울’이란 회사를 추적한 결과, 이 회사는 덜위치 서울에 컨설팅을 해주고 학교에서 연간 22만 달러(2억6,000만원)가 넘는 돈(2018년 기준)을 받아갔다. 2009~2013년 덜위치 서울에 여섯 번에 걸쳐 22억6,600만원을 빌려줬는데, 이자율이 1금융권 대출금리를 크게 웃도는 연 8.0~9.5%에 달했다. 문제는 학교 돈을 받아간 이 회사의 이사들이 덜위치 서울의 외국인 이사 3명과 동일인이라는 점이다. 한국일보가 14일 '덜위치칼리지 매니지먼트 서울'의 등기부등본상 주소지인 서울 논현동 사무실을 찾아가 봤더니, 공유오피스 형태의 7.3㎡(2.2평) 공간엔 간판이나 직원이 없었다. 등록된 번호로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였다. A씨는 "문제의 외국인들이 컨설팅 비용과 이자 명목으로 교비를 빼내 이득을 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의심스런 관계사는 또 있다. 홍콩에 주소지를 둔 '유니온 에듀케이션 매니지먼트'라는 업체는 개교 이래 지금까지 덜위치 서울의 교과서와 문구류 등의 구매 대행을 독점했다. 거래비용만 연간 14만5,000달러(1억7,200만원ㆍ2018년 기준)에 이른다. 홍콩 당국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이 업체 역시 학교의 외국인 이사 3명이 고스란히 이사로 등록됐다. 이 업체의 구매내역을 분석한 결과 물품 가격이 ‘아마존’ 등 온라인 장터에서 판매하는 물품 가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쌌다. 구매 대행업체를 통하면 개인 소비자보다 싼 가격에 일괄구매를 할 수 있지만, 학교는 그런 장점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다른 업체에 구매를 맡기자는 건의가 있었지만 묵살됐다. 덜위치 서울 이사진의 2심 재판에 2018년 9월 10일 증인으로 나온 학교 직원은 “유니온 에듀케이션 매니지먼트를 통해 공급받는 단가가 시중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알고 있으며, 구매 담당 직원이 교장에게 ‘국내업체가 더 싸고 교실까지 무료 배달서비스도 제공한다’며 구입처를 변경하자고 제안했으나 거절 당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덜위치 서울의 외국인 이사 3명은 싱가포르에 주소지를 둔 '덜위치칼리지 매니지먼트 아시아퍼시픽'이란 회사도 운영한다. 이 회사는 2010년 덜위치 서울에서 프랜차이즈 비용 36억여원을 받아 가려고 했지만, 이런 행위가 배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 때문에 돈을 가져가지 못했다. 하지만 학교 회계장부에는 여전히 학교가 해당 회사에 이 돈을 줘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학교 직원 B씨는 “학교 측은 매년 막대한 교비를 들여 불필요한 시설공사를 거듭하고 있는데, 결국 교비로 건물가치를 높인 뒤 비싼 값에 팔고 한국을 떠나려는 것 아니겠냐”며 “사법당국이 권한 없는 한국 이사진만 처벌하고 자신들에겐 전혀 손을 대지 못하자, 한국이란 나라를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수선한 학교 분위기와 맞물려 연간 학비가 3,500여만원에 달하는 덜위치 서울이 교육엔 뒷전이라는 내부 목소리도 나온다. 작년까지 3년간 덜위치 서울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고국에 돌아간 외국인 C씨는 한국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교사 충원에 소홀하다 보니 고교과정 진학을 위한 수업에서 심화반과 기초반 학생 수업을 묶어서 하는 등 운영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며 “보조교사(TA) 등이 직접 수업하는 사례가 늘면서 학부모 불만이 커지고 있고, 이에 실망해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외국에 있는 문제의 외국인 이사 3명에게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 직원들의 내부 고발내용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지만 이들은 답하지 않았다. 학교 측은 "여름 방학이어서 당장 답변하는 게 불가능하다. 적절한 때에 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교는 서울시로부터 반포동 땅 1만548㎡를 매년 공시지가의 1%만 임대료(올해 임대료 7억1,700만원)로 내고 50년간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 받고 있기 때문에 공적 책무가 전혀 없는 외딴 섬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법적인 감사 권한이 있는 교육당국은 여러 문제 제기에도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지원과 관계자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와야지 시정조치 등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치외법권서 방치되는 외국인학교
외국인학교의 교비 유용은 드문 일이 아니다. 2006년 미국인 P씨가 설립한 경기수원외국인학교는 최근 학교 운영자 교체를 두고 홍역을 치렀다. 대전외국인학교를 운영하던 P씨는 경기도와 수원시가 선정한 경기수원외국인학교 운영자로 낙점돼, 정부와 지자체에서 학교 건축비 등 사업비 150억여원은 물론 학교 부지까지 무상 지원 받았다. 그러나 2011년 P씨는 수원학교 교비 136억원을 빼돌려 대전학교 공사대금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경기도와 수원시는 P씨에게서 운영권을 돌려 받고자 했지만 P씨는 불복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법원의 조정 결정이 내려졌는데 △P씨가 교비 30억여원을 학교에 변제하고 △미국에 주소지를 둔 비영리법인 ‘효산국제교육재단’에 운영권을 넘기는 내용이었다.
시민단체들은 그러나 “비리로 학교 운영권을 박탈 당한 사람의 친구에게 나랏돈으로 세운 학교를 넘기는 게 말이 되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효산재단의 이사진이 P씨와 함께 대전학교를 운영하던 사람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기도교육청은 설립자를 P씨에서 효산재단으로 바꾸는 변경인가를 이달 초 받아들였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법원 결정이 나온데다 효산재단에 결격 사유가 없어 인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인가를 하지 않으면 학교 폐쇄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학생들 교육권이 침해되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비 유용 같은 중대비리가 적발됐는데도 솜방망이 제재로 끝나는 이유는 한번 인가를 내준 외국인학교에 대해선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김미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설립자가 교육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가리기 위해 설립기준을 좀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초중등 교육과정은 의무교육인 만큼 이미 설립된 학교에 대해서도 교육청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한국외국인학교(KIS)의 민선식 YBM홀딩스 회장은 2012~2016년 KIS 서울캠퍼스와 판교캠퍼스의 교비 70억원을 가져다가, 자신의 모교인 미국 하버드대학에 발전기금을 내고, 자녀가 다녔던 외국 고교에도 후원금을 냈다가 2심까지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강성종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학교법인 신흥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법인 소속의 의정부 외국인학교 등에서 교비 수십억원을 빼돌려 정치자금과 생활비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외국인학교에 국민 세금 적잖이 투입
외국인학교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면에는 교육청의 수수방관도 한몫하고 있다. 감사권한이 있는데도 외국인학교를 치외법권처럼 취급해 비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학교지원과 관계자는 “외국인학교에 대한 규제는 자칫 외교문제로 번질 수 있어 상당히 민감한데다, 학교 측에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교육청의 개입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관내 외국인학교가 19개로 가장 많은 서울시교육청은 매년 외국인학교 5, 6개씩을 선정해 실태 점검에 나서지만, 숨겨진 비리를 적발할 만큼 깊이 있는 감사는 하기 쉽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내국인의 부정입학 여부에 대해선 자세히 들여다 보는 편”이라고 말하는 정도다.
외국인학교가 교육청이 나눠주는 교부금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밀착 감시에 나설 명분이 부족하다는 점도 부실 감사 이유로 거론된다.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여러 외국인학교에 고가의 토지와 건물을 지원하는 점을 감안하면 공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지자체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서울 용산국제학교는 한남동 땅 2만3,222㎡를 시에서 50년간 무상 임대 받았고 학교 건축비 349억원 중 130억원은 국비로 지원 받았다. 서울 상암동 드와이트스쿨의 경우도 부지는 공시지가의 1%로 임대 받았고, 건물도 서울시가 319억원을 들여 지어준 뒤 빌려줬다. 박찬대 의원은 “교육과정 편성에 대해선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지만, 공적자금이 일정 규모 이상 투입되는 학교는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 고시에 따라 국제학교에 적용되는 엄격한 회계 공시 기준과 외부감사인에 의한 회계감사가 외국인학교에는 반영되지 않는 것도 개선과제로 꼽힌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회계자료 작성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자국 언어로 아무렇게나 회계 자료를 올리는 학교가 많은데도 막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외국인학교를 설립하면 투자유치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양질의 외국인학교를 유치하고 안정적 운영을 도울 수 있도록 영리행위를 인정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안미리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영리 모델을 선택한 외국인학교에 대해선 당국이 강도 높은 회계감사를 하는 싱가포르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외국인학교의 영리화를 허용하면 ‘모든 학교는 비영리 목적으로만 운영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한국 학생 절반 넘는 외국인학교도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내 거주 외국인을 위한 학교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외국 명문대를 지망하는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곳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는 외국인학교는 총 40곳이며 학생 수는 1만1,735명이다. 이중 교육과정별로 내국인(이중국적자 포함) 비율은 △유치원 29.2% △초등학교 35.3% △중학교 45.4% △고등학교 55.1%이다. 고등학교는 절반 이상이 한국 학생인 셈이다. 이는 2010년보다 교육과정별로 4%~11%포인트 오른 비율이다.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정원이 30%(교육감 재량으로 최대 50%까지 가능)로 제한돼 있는데도, 훌쩍 뛰어넘는 이유는 내국인 비율 규제가 '현원'이 아닌 '정원'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인천의 청라달튼 외국인학교는 내국인 학생 수가 255명으로 전체 학생 378명의 67.5%에 이른다. 그래도 서류상 정원(1,560명) 기준으론 내국인 비율은 16.3%에 그쳐 규정 위반이 아니다. 대전외국인학교도 내국인 학생이 210명으로 전체 학생 348명의 60.3%에 이르지만, 정원이 1,500명이나 돼 정원 대비 내국인 비율은 14%에 그친다.
안미리 교수는 “내국인 학생이 너무 많으면 순수 외국인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학교 운영자들도 잘 알고 있다”며 “외국인학교의 설립 취지에 맞게 내국인 학생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론보도] 「국비 지원 챙기며 교비 빼돌리는 ‘요지경 외국인학교’」 관련
지난 8월 18일자 「국비 지원 챙기며 교비 빼돌리는 ’요지경 외국인학교’」 등의 기사와 관련해 덜위치칼리지 서울 측은 “외국인 이사들이 학교 설립시 관련 부처 및 은행, 건설업체 등과 협상을 주도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횡령이나 사립학교법 위반 등의 혐의와 관련해 확정판결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덜위치칼리지 매니지먼트 서울과 유니온 에듀케이션 매니지먼트는 학교를 지원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법인으로서 교비를 이용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또한 덜위치칼리지 서울의 건물은 서울시에 기부채납하여 타인에게 처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입장을 전해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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