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그럴 분이 아닌 분은 없다

입력
2020.08.19 04:30
26면
0 0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눈물로 말했다. ''박원순이 그럴 리 없다'를 버려야 한다. 박원순조차 그러는 사회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박원순을 빼고 봐야 보인다.' 정 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28년 여성운동 동지다. 지인 박원순과 권력자 박원순의 얼굴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지난주 '시사인' 인터뷰에서 정 의원이 아프게 내린 결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럴 리가 있다. '내가 아는 한' 그럴 리가 없을 뿐이다. 자애로운 내 부모님은 며느리에겐 막말 폭격기일 수 있다. 순둥이로 키운 내 자식이 집 밖에선 인간 흉기일 수 있다. 바바리맨 검사장, 기부 천사 절도범, 육식파 스님도 있는 게 인간계다. 우리는 타인을 모른다. 하다 못해, 겁 많은 우리 개가 무는 개일 수도 있다.

권력자들은 '그럴 리가 없는 분들의 성'에 산다. 피 끓는 지지자가 많을 수록 성벽이 겹겹이다. 성안의 안온한 세계를 지키려는 욕망은 성주를 완벽한 존재로 떠받든다. 오류가 '오류 아님'으로 거듭 치부되는 동안, 성주는 자기 확신에 빠져 성찰을 등진다. 박 전 시장이 치명적 오류를 일으킨 과정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가장 높아서 가장 어두운 성을 쌓은 권력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그는 맹종하는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통치했다. 그의 짧은 말은 카리스마로, 불가해한 행동은 심오한 무언가로 둔갑했다. 실책마저 때로 책략으로 읽혔다. 성이 허물어지자 드러난 건 최순실 패밀리가 진짜 성주일지도 모른다는 누추한 실상이었다.

'누구라도 그럴 리가 있는 세상'에 권력자들이 발 딛고 살았다면,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고 쉼 없이 스스로를 회의했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사(史)는 비극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 문재인을 만든 건 인간다운 그가 그 이치를 알 거라는 믿음이었다. 완전무흠한 메시아를 기대하고 촛불 민심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게 아니다. 듣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 성탑의 지도자들이 지긋지긋해서였다.

요즘 청와대의 성벽이 조금씩 두꺼워지는 건 불길하다. 인사도, 정책도, 메시지도 잘못됐을 리가 절대로 없다는 말이 성벽 너머에서 자꾸 들려온다. 정면 돌파하겠다는 공언이 잦아지는 건 아슬한 징조다. 대통령은 언제나처럼 바쁘게 일하는데, 대통령 지지율은 뒷심을 놓치는 중이다. 직언과 진언의 책임을 청와대 참모들이 다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당장 할 일은 바위를 실어날라 성벽을 높이는 게 아니다. 시장의 앓는 소리와 광장의 수군거림을 대통령이 더 많이 듣도록 하는 것, 그래서 정확하게 통치하도록 돕는 것이다. 대통령 비판자들을 욕보여 비판을 틀어막을 수록 대통령이 보다 널리 지지받을 기회를 잃는다는 역설을 되새기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유난히 열정적인 지지자를 '대깨문'이라 부른다던가. 머리뼈를 가리키는 '대가리'가 '깨져도' 대통령을 지지하겠다는 오기는 위험하다. 이성을 이르는 '대가리'가 '깨어 있겠다'는 열린 용기가 대통령을 끝내 지킬 것이다. 성공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문재인이라는 이름을 역사에 새기고 싶다면, '대깨문'의 정의를 다시 써야만 한다. 문 대통령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 아니 이성으로 나는 이 글을 썼다.


최문선 정치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