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중동ㆍ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 영향으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몰아낸 리비아는 아직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당시 1차 내전이 발발해 카다피는 제거됐지만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4년 5월부터 돌입한 2차 내전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리비아 사회 내의 크고 작은 단층선이 복잡하게 형성된데다 이 나라에 이해관계를 가진 국제사회가 내전에 개입하면서 ‘전쟁의 국제화’ 현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거의 같은 시기 내전이 시작된 시리아와 달리 리비아 내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양대 세력 뒤로 난립하는 분파들
현재 리비아 내전에선 크게 두 세력이 맞붙고 있다. 유엔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 받은 서부 이슬람주의 세력 중심의 국민통합정부(GNAㆍ트리폴리 정부)와 동부 세속 군벌 세력인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 중심의 리비아국민군(LNAㆍ투브루크 정부)이다. 하지만 양대 세력 안에도 여러 분파가 있고, 안사르 알-샤리아가 통제하는 벵가지혁명 이슬람주의자 슈라위원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리비아지부, 무자히딘 슈라위원회 등 호심탐탐 권력을 노리는 무장 단체들도 적지 않다.
내전 장기화의 발단은 GNA 정권을 인정하지 못한 하프타르가 일으킨 반(反)이슬람주의 쿠데타이다. 리비아 사회에 잠재돼 있던 부족간 혹은 지역간 분쟁들이 쌓이고 쌓여 표출된 사건이다. 하프타르의 LNA는 동부로 이주한 뒤 세속주의 지향 세력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리비아 하원까지 하프타르 편으로 돌아서면서 긴 싸움이 시작됐다. 분단된 국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1국가 2정부’ ‘1국가 2체제’가 아니라 통합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1국가 2정부 2체제’로 갈라져 싸우는 중이다. 현 상황은 어느 한 쪽이 완승해 1국가 1정부를 구성하든지, 아니면 아예 2국가로 나뉘든지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 들어 ‘내전의 국제화’는 더욱 심화했다. 계기는 터키와 이집트의 파병 결정이었다. 터키는 GNA, 이집트는 LNA를 지원하기 위해 리비아 땅에 발을 들였다. 여기에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석유 통제지역과 석유 비통제지역,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동ㆍ서부간 지역주의 등 다양한 대립 구도가 형성돼 있다.
여론도 분열돼 통합 더 어려워
리비아 분쟁 사태를 대하는 국제사회 여론도 첨예하고 맞서고 있다. LNA를 지원하는 대표 국가로는 프랑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탈리아, 이집트 등이 있다. 과거 리비아를 식민통치했던 이탈리아는 세속주의 지향이란 점에서 LNA를 지지한다. 리비아와 1,135km의 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집트 의회도 리비아 부족 지도자들 및 리비아 동부의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달 20일 LNA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을만큼 적극 개입 의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LNA는 미국과 러시아, 두 강대국의 후원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리비아 문제는 유럽 이슈”라며 그간 리비아 내전에 무관심했으나, 결국 LNA를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LNA 수장 하프타르와의 인연이 가장 큰 이유다. 카다피 정권의 핵심 인물에서 반(反)카다피로 돌아선 하프타르는 1990년 미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넘어간 후 20년 가까이 카다피 암살 공작 등 반정부 활동을 했던 이력이 있다. 그는 또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정책과 반이슬람주의 정책에 동조해 트럼프 정부와도 결이 비슷하다.
끊임없이 남하정책을 취하는 러시아로서는 터키를 경계하고 러시아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친(親)LNA 국가로서 리비아에서 작전 중인 러시아 용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투기들을 리비아에 파견하기도 했다.
반면 GNA 뒤에는 유엔과 카타르, 터키가 있다. GNA를 이끄는 파예즈 세라즈 총리는 리비아에서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퇴출하기 위해 애쓴 인사지만, 기본적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세라즈 총리는 반 IS연구소를 설립하고, 하프타르 세력과 협력해 이들을 퇴치하는 전투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카타르는 꾸준히 이슬람주의 세력을 지지해 온 경험에 근거해 GNA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터키는 리비아 내전에 누구보다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국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가 이슬람주의를 지향하고, 리비아가 오스만제국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인연으로 GNA와 손을 잡았다. 지난해 11월엔 GNA와 군사ㆍ안보 협정을 체결했고, 올 1월 리비아에 소형 구축함, 전투기, 군병력을 파견했다.
이런 터키의 공세는 터키와 관계가 냉랭한 이집트와 사우디가 LNA를 택한 주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집트 대통령 알 시시의 정적인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판 파라오’를 꿈꾸는 알 시시의 이집트와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에르도안의 터키는 친미로 분류되는 동시에 이슬람수니파이기도 하다. 오스만제국이 1517년부터 1914년까지 약 400년간 이집트를 식민통치 악연도 있다.
사우디와 터키는 이슬람수니파 국가의 맹주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다. 오스만제국이 해체되고 1922년 터키공화국이 건립되면서 아라비아반도에 터키군이 잠시 주둔했었고, 2017년 카타르 단교사태 때에도 터키 병력이 카타르에 머물렀다. 사우디는 이 같은 앙금이 쌓여 터키를 잔뜩 경계하고 있다. 리비아 내전이 이웃 국가들의 ‘대리전’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다양하고 복잡한 정세에 기인한다.
또 사라져버린 '휴전' 기대감
휴전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달에도 파예즈 알사라즈 GNA 총리는 군사 작전 중단 명령과 함께 내년 3월 대선ㆍ총선을 LNA 측에 제안했다. LNA와 협력 관계인 아길라 살레 리비아 동부의회 의장도 휴전을 지지했지만 성사되진 못했다. 이달 24일 LNA는 휴전 발표를 ‘마케팅의 묘수’라고 일축했다. 이들은 오히려 “서부지역의 경쟁군(GNA)이 (휴전을 말하고선) 오히려 중부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부에 주둔하는 우리군은 언제든 그들의 공격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항전 의지를 다졌다.
현재로선 리비아 휴전을 이끌어 낼 국제사회의 중재자가 없다. 중재의 구심점이 돼야 할 유엔부터 문제투성이다. 단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프랑스가 유엔이 승인한 통합정부 GNA를 지지하지 않는 것부터 비정상적인 상황임을 보여준다. 통합이란 대의보다는 각자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자국 우선주의’로 급선회하는 국제적 기류가 리비아 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거꾸로 유엔 체제의 실용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말을 빗대면 21세기 국제사회는 ‘무정부적인 만인의 투쟁 상태’라 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각국의 정책 변화를 추동한 핵심 요인이 됐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로 잠시 주춤했던 중동지역의 여러 분쟁들이 최근 다시 활화산으로 폭발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우리의 대(對) 중동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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