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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기

입력
2020.08.30 14:00
수정
2020.08.30 14:4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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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다니게 될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 지휘자 정명훈,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비롯, 세계적 거장들이 다녀간 명문 학교다. 줄리아드 음악원 제공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다니게 될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 지휘자 정명훈,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비롯, 세계적 거장들이 다녀간 명문 학교다. 줄리아드 음악원 제공


지난 3월 2일 나는 미국 뉴욕에 있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입학 실기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출국 이틀 전, 학교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한국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이니 한국 응시생들은 2주의 격리기간을 거쳐야만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정상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출국 하루 전 학교 측이 알려준 실기시험 범위를 현장오디션과 동일한 조건으로 녹화했다. 동영상을 학교 입학사이트에 업로드한 뒤 출국했다. 영어인터뷰가 남아 있어서다. 하지만 결국 학교에 들어갈 수 없어 인터뷰 역시 귀국한 뒤 온라인으로 치렀다. 2주 일찍 미국에 도착해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학생들이 매우 부러웠다.

뉴욕에선 그저 실기시험을 치르는 다른 학생들을 멀리서 지켜보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줄리아드 음악원을 바로 코앞에 두고서 말이다. 마스크를 쓴 채 링컨센터 앞을 서성이던 때, 줄리아드 음악원에 반드시 입학하리라 생각했다. 정말 간절했다. 그 덕일까. 합격 소식이 왔다. 그것도 장학생으로 붙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밖에 안 다녀본 내가, 세계적인 명문 음악학교 장학생이라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그린 자화상.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그린 자화상.


아홉 살 때 마에스트로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오디션을 보러 영국 런던에 갔을 때, 그 때도 런던 브리지,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같은 명소는 가보지 못했다.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 초대 받았을 때도 휴양지로 유명한 안시를 둘러보지 못했다. 그저, 늘 피아노 연습을 했을 뿐이다. 장소만 서울에서 런던, 안시로 바뀌었을 뿐 나의 하루는 똑같았다.

열 살 때 중국 상하이에서 ‘상하이 신포니에타 시즌 오프닝’ 협연을 피아니스트 존 오코너 선생님과 함께 했던 적이 있다. 연주가 끝나고 누군가가 내게 "상하이 어디가 제일 인상적이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자신 있게 "호텔"이라고 대답했다. 다들 웃었지만, 실제 나는 상하이에서도 호텔, 연습실 그리고 상하이 오리엔탈 아트센터밖에 못 가봤다.

코로나19로 지난 26일로 예정된 광주시향 협연이 취소됐다. 그 직전까지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지만, 연락을 받자마자 담담히 악보를 덮었다. 그리곤 다시 다음 연주회의 악보를 주섬주섬 펼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탓에 이 연주회도 취소될지 모르지만, 연주자인 나는 계속 준비해야만 한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 비가 많이 와서 소풍이 취소되면, 학교에서 점심시간 때 부모님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연주회가 취소될 때면 그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청중과 함께 소풍을 떠나려 했던 그 들뜬 마음. 다행인 것은 연주 소풍은, 나와 청중이 언제든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올해 못 갔다고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소풍과는 다르다.

그래서 연주회가 취소된 지금도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연주를 방해할 수 있어도, 나의 연습은 방해할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줄리아드 음악원 코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결국 장학금까지 받고 입학했듯. 그렇게 다시 다짐해본다.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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