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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격전지 떠오른 동지중해…터키ㆍ그리스 '앙숙의 100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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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격전지 떠오른 동지중해…터키ㆍ그리스 '앙숙의 1000년 역사'

입력
2020.08.30 07:30
수정
2020.08.3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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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해 가스자원 개발로 긴장 고조
1000년을 이어 온 반목ㆍ대립의 세월
지역패권 얽혀 더 복잡해진 갈등 구조

그리스 국방부가 25일 동부 지중해에서 자국 해군의 함정이 프랑스, 이탈리아, 키프로스와 함께 군사훈련에 참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AFP 연합뉴스

그리스 국방부가 25일 동부 지중해에서 자국 해군의 함정이 프랑스, 이탈리아, 키프로스와 함께 군사훈련에 참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AFP 연합뉴스

"어떤 양보도 없다."

남유럽의 오랜 앙숙 터키와 그리스가 동지중해에서 또 맞붙었다. 양국이 각각 해상훈련에 돌입해 군사적 긴장이 연일 높아지는 가운데 프랑스, 이탈리아, 키프로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까지 개입해 기름을 부었다. 28일(현지시간)에는 유럽연합(EU)이 아예 그리스 편을 들고 나섰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동지중해 긴장 완화에 진정이 없으면 터키에 새로운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갈등의 발단은 에너지 자원이다. 터키가 이달 11일 안탈리아 남부 해역과 키프로스 서쪽 해역에 지질 조사선 '오루츠 레이스'를 배치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탐사하겠다고 밝혀 그리스를 자극했다. 해당 해역은 터키와 그리스간 오랜 영토분쟁 지역이다. 마이클 탠첨 오스트리아 유럽안보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최근 미 CNN방송에서 천연가스 발견 이후로 동지중해가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을 포함하는 '지정학적 화약고'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터키 조사선이 나간 해역 일대에는 17억배럴의 석유와 천연가스 3조4546억㎥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된다.

1000년 된 동지중해 영토 분쟁

동지중해를 둘러싼 양국의 힘겨루기 시작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로잔조약에 따라 터키와 그리스 사이 바다인 에게해의 섬 대부분은 그리스 영토가 됐으나 터키는 이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동지중해 지역 섬나라 키프로스가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심화했다. 그리스의 군사정권이 키프로스를 합병하려 하면서 그리스를 지지하는 키프로스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키프로스를 빼앗길 수 없던 터키도 개입했다. 결국 섬 북부를 터키군이 점령하면서 북키프로스가 탄생했다. 국제법상 그리스계 주민이 대다수인 키프로스만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만 터키는 여전히 북키프로스를 인정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분쟁이 발생한 해역은 그리스와 터키는 물론 키프로스, 북키프로스, 이집트, 리비아까지 얽혀 있는 곳이다. 유엔 국제해양법상 배타적 경제수역(EEZ)는 자국 연안에서 200해리(370.4㎞)까지를 말하지만 인접국이 워낙 많아 상호 협의로 결정해야 하는데 사공이 많아 대화가 잘 될 리 없다.


23일 터키 이스탄불 항구에 정박해 있는 터키 광물연구개발총국(MTA) 오루츠 레이스 지진연구선 모습.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23일 터키 이스탄불 항구에 정박해 있는 터키 광물연구개발총국(MTA) 오루츠 레이스 지진연구선 모습.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앙금 점철된 그리스-터키 대립

그리스와 터키는 1,000년 넘은 구원(舊怨)의 역사를 갖고 있다. 터키 전신인 셀주크투르크가 1071년 그리스 전신인 비잔틴제국을 물리친 만지케르트 전투를 계기로 제국은 급격히 쇠퇴했다. 이후 이 지역에 터키인이 정착하면서 오스만제국에서 현대 터키 공화국으로 이어지는 나라가 세워진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는 독립 투쟁을 벌이기도 하는 등 양국간 앙금은 오랜 세월 쌓여 왔다.

지난달 이스탄불에 관광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아야소피아(성소피아)를 두고 벌어진 양국간 신경전도 이런 역사에서 비롯됐다. 성소피아는 6세기 그리스정교회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15세기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뀐 역사가 있다. 두 종교가 공존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던 성소피아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86년 만에 재개장해버리면서 서방국가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 강화를 기치로 내건 에르도안 대통령이 "성소피아가 원래대로 돌아간 것은 제2의 정복"이라고 선언하자 그리스 정부는 "문명화된 세계에 대한 공개적 도발"이라고 공격했다.

국제사회는 '패권 확대' 터키 경계

이번 동지중해 분쟁은 양국 갈등 차원을 넘어선 분위기다. 그리스의 동맹이란 이유를 들어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참견하기 시작했고, 아랍에미리트(UAE)까지 터키와 각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는 그리스와 크레타섬 앞바다에서 진행한 공동 해상 기동훈련에 전투기 2대와 해군 호위함 1척을 임시 배치했다. 영국 BBC방송은 "여러 나라가 동지중해 에너지 자원 탐사 관련 지분을 갖고 있고, 리비아 내전과 관련 해서도 터키와 대립하는 국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자원은 물론 지역 패권을 둘러싸고 터키의 부상을 경계하는 곳이 한 둘이 아니다.

이처럼 분란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공세 일변도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목표는 무엇일까. 이스탄불 싱크탱크 에담의 시난 울겐 회장은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에르도안의 궁극적 목표는 그리스와의 협상에 있다"고 해석했다. 그리스가 일방적으로 터키에 자국 지도를 강요할 수 없고 군사적 대응 의지를 보인 후 '동지중해의 공평한 분할 계획' 협상 테이블에 그리스를 앉히겠단 것이다.

에르도안은 쉽게 물러설 기미가 없다. 28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사무총장과 전화통화에서도 이 같은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대로가면 EU는 다음달 24,25일 예정된 정상회의에서 터키 제재를 논의하게 되고 갈등 양상은 더 복잡해질 전망이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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