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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핑은 배꼽티, 지코는 정장 ...  '개량' 넘어 '현대 한복'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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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핑은 배꼽티, 지코는 정장 ...  '개량' 넘어 '현대 한복' 바람

입력
2020.09.01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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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미국에서 신곡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을 발표한 블랙핑크는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옷을 입고 나왔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6월 말 미국에서 신곡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을 발표한 블랙핑크는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옷을 입고 나왔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한복의 변신이 놀랍다. 명절이나 결혼 등 집안 행사 때 입거나 외국인들의 전통 체험 소재로 다뤄지더니, 이제는 가장 힙하다는 아이돌 그룹의 무대 의상을 넘어 일상 패션에 도전하고 있다. 한복이란 원래 이런 것, 이라는 식의 '전통' 개념은 엷어지고 다양한 변종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대 생활에 맞춰주겠다는 '개량' 수준을 넘어 아예 현대 의상처럼 만드는 '현대 한복'의 시대다.

가장 강렬하게 화제가 된 건 아이돌그룹 블랙핑크였다. 최근 신곡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을 발표하면서 '한복 같지 않은 한복'을 입고 찍은 뮤직비디오를 함께 공개했다. 분명히 전통문양이 새겨진 저고리인데 배꼽티처럼 입었다. 노리개인데 어깨에 달았고, 두루마기를 짧게 잘라 만든 옷을 겉옷처럼 걸쳤다.


올해 초 음료브랜드 '펩시'와 함께 프로젝트 음원을 낸 가수 지코가 전통문양이 새겨진 파란 비단 정장을 입고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 김리을 디자이너 제공

올해 초 음료브랜드 '펩시'와 함께 프로젝트 음원을 낸 가수 지코가 전통문양이 새겨진 파란 비단 정장을 입고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 김리을 디자이너 제공


블랙핑크의 인기를 반영하듯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역대 최단 시간인 32시간만에 조회 수 1억건을 돌파했다. 그런데 '저런 것도 한복이냐' '전통을 저버렸다'는 식의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예쁜 옷은 어디서 만든 것이냐는 검색만 늘었다.

이 옷을 만든 단하 ‘단하주단’ 대표는 “한복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적인 음악과 멤버들의 개성에 맞춰 디자인했다"며 “기존 무대의상이나 서양 복식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블랙핑크 만이 아니다. 올해 초 음원을 발표한 가수 강다니엘과 지코도 현대 한복을 선보였다. 이들은 한국 전통문양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파란 비단 정장을 입었는데 젊은 음악을 하는 이들의 통통 튀는 매력을 더 돋보이게 했다.


깃이 없는 배냇저고리와 철릭 모양을 닮은 린넨 원피스(맨 왼쪽부터), 조선의 궁중에서 사용된 보자기 '궁보'의 문양을 차용한 궁보치마, 한복의 속옷인 가슴가리개를 재해석한 배꼽티와 철릭에서 영감을 얻은 겉옷. 단하주단 제공

깃이 없는 배냇저고리와 철릭 모양을 닮은 린넨 원피스(맨 왼쪽부터), 조선의 궁중에서 사용된 보자기 '궁보'의 문양을 차용한 궁보치마, 한복의 속옷인 가슴가리개를 재해석한 배꼽티와 철릭에서 영감을 얻은 겉옷. 단하주단 제공


이 옷을 만든 김리을 디자이너는 “한복 원단의 패턴과 결 자체는 굉장히 아름다운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일상화되지 못했다”라며 “개인적으로 이를 서양 정장과 잘 접목해 21세기에도 입을 수 있는 한복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에 등장한 배우 유재명(장대희 역)이나 최근 광복절 경축식에서 배구선수 김연경이 선보인 한복 정장은 지코의 정장에서 조금 더 나아갔다. 문양이나 소재 뿐 아니라 한복의 디자인 요소를 전면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것. 정장 칼라는 한복 깃을 닮아 있고, 어깨선은 패드 없이 느긋한 선으로 마무리됐다. 뭔가 독특하다 싶어 유심히 뜯어보면 한복 냄새가 물씬 풍긴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에서 배우 유재명은 한복의 여밈 깃과 원단, 패턴 등을 활용해 만든 '한복 정장'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됐다. JTBC 제공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에서 배우 유재명은 한복의 여밈 깃과 원단, 패턴 등을 활용해 만든 '한복 정장'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됐다. JTBC 제공


배우 유재명의 옷을 디자인한 박선옥 ‘기로에’ 대표는 “서양 복식과 달리 한복은 평면 패턴으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기존 개량 한복이 서양 옷의 입체 패턴에 맞춘 것이라면 "한복 정장은 한복 고유의 평면 패턴 그 자체를 적용해 맵시를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장을 넘어선 한복 정장'이라는 얘기다. 평면 패턴이 기본인 한복이기에 "입었을 때 편안하고, 자투리 천도 남지 않아 환경적으로 우수"한 건 덤이다.

그래서 현대 한복에서 중요한 건 상상력의 한계를 지우는 것이다. '여자면 치마저고리, 남자면 바지저고리'라는 식의 틀을 벗고 한복의 선, 구성, 문양, 원단 같은 요소만 부분적으로 따와서 랩 스커트, 배꼽티, 원피스, 정장 등으로 자유롭게 변형해 한복 같지는 않은데 한복스럽게 만든다. 조선시대 무관의 옷인 '철릭'에서 힌트를 얻어 여성용 린넨 원피스를 만드는 식이다.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연경은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 검은색 한복 정장을 참석,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연경은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 검은색 한복 정장을 참석,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단하 대표는 “한복 뿐 아니라 도자기나 보자기 같은 유물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예전에 있던 한복을 '계승'한다기보다는 우리 전통 문화가 지닌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래 디자인, 용도, 소재 등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단하주단이 최근 선보인 ‘궁보치마’가 한 예다. 궁보치마는 일종의 랩 스커트인데, 그 문양은 조선 시대 궁중에서 쓰던 보자기 ‘궁보’에서 따왔다. 문양 자체의 아름다움, 랩 스커트의 실용성을 함께 갖춰 최근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액의 80배가 넘는 돈이 모이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 취향에 맞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복 정장. 기로에 제공

요즘 젊은이들 취향에 맞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복 정장. 기로에 제공


올 초 한 행사장에서 가수 전효성이 선보인 푸른 한복 정장. 한복의 원단과 문양을 활용, 김리을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김리을 디자이너 제공

올 초 한 행사장에서 가수 전효성이 선보인 푸른 한복 정장. 한복의 원단과 문양을 활용, 김리을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김리을 디자이너 제공


그 덕에 현대 한복은 젊은 층의 수요가 제법 있다. 개량 한복의 주 소비층이 좀 편안하게 옷을 입으려는 중ㆍ장년층이었던데 반해 훨씬 젊어진 것이다. 박선옥 대표는 “한복 정장은 30대 중반이 가장 많이 구매한다”라며 “한복이어서 입는 게 아니라 입어보니 멋있고 편안하니깐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하 대표 역시 “현대 한복은 디자인이 독특한데다 옷에 특별한 의미까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개성이 강하고 가치 소비를 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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