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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끔찍했던 성추행, 친오빠를 용서해도 될까요

입력
2020.08.31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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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제겐 세 살 터울인 오빠가 있습니다. 저흰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보수적이지만 외향적이셨고, 어머니는 다정하면서도 똑 부러지시는 분이었어요. 넉넉하진 않았지만 오냐오냐 하면서 저희가 원하는 걸 대부분 다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빠와는 가깝지 않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 혼자 자다가 깨어보니 옆방에 있어야 할 오빠가 제 속옷 안에 손을 넣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왠지 일어나면 안 될 것 같아 가만히 숨만 쉬었습니다. 다음 날 오빠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굴었습니다. 제 기억으론 3,4번 정도 반복됐어요. 전 그저 자다 깬 척 피할 뿐 따져 물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 외엔 별 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오빠는 기숙사에 들어갔고, 저도 타지도 대학을 다니며 떨어져 살았습니다.

잊고 살았는데, 3년 전 같은 일을 생겼습니다. 취직한 오빠는 제 졸업식에 못왔다며 주말에 따로 저를 찾아 자취방으로 왔습니다. 차로 두 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해야 하니 자고 가겠다 했고, 전 꺼림직했지만 매몰차게 굴기가 어려워 허락했습니다. 그날 밤, 오빠는 제 몸을 더듬었습니다.

다음날 오빠를 주차장으로 내려보낸 뒤 방문을 잠근 뒤 전화했습니다. 어제 한 짓도, 어릴 적 한 짓도 다 알고 있다고 했더니 처음엔 발뺌을 하더니 나중엔 현관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했습니다. 부모님께도 알렸고, 부모님은 오빠를 따로 불러 크게 혼내셨어요.

하지만 오빠다보니 아예 모를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가족 사진을 바라는 눈치시고, 어머니는 오빠 소식을 은근히 제게 전합니다. 저도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영영 오빠를 안보고 싶다가도, 본인도 사과했는데 가족간 불화를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아름(가명ㆍ27ㆍ회사원)


아름씨, 당신이 겪었던 불행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어요. 오빠의 입장이나 해명은 들을 필요도 없이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이었어요. 저는 가해자인 오빠를 두둔할 생각도, 편을 들어줄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다만 오빠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파악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어렸을 적 잘못은 고려할 점이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성인이 돼서도 그렇게 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잘 아는, 충동을 조절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 이유가 뭘까요.

사람은 태어나 성장을 합니다. 일정 시기가 되면 기능을 획득하지요. 이걸 발달이라고 합니다. 신체발달, 언어발달과 인지발달과 함께 도덕발달의 과정도 거칩니다. 도덕발달은 윗사람에게 존대를 하고, 인사를 깍듯하게 하는 예의범절과 다릅니다. 살면서 여러 상황이 충돌할 때 이를 조화롭게 아우르면서 자신의 기준으로 나름의 판단을 내리는 상위개념을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아픈데 마침 치료할 수 있는 약이 개발됐고 약이 너무 비싼 나머지 남편이 그 약을 훔쳤다면, 이 남자의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도덕발달에서 가장 초보적인 단계는 ‘걸려서 처벌을 받으면 나쁜 짓이고 안 걸리면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처벌 강도가 높을수록 그 행동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행동의 결과가 중요한 거지요. 아름씨 오빠는 이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었는데 아무도 보지 않았다면 뺑소니를 하거나, 물건을 훔쳤는데 안 걸렸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도덕발달이 잘 된 사람은 누가 보든 안 보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나 지켜야 하는 것 등에 대한 기준이 자기 내면에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사회적 규준과 규범의 내재화라고 합니다.

이 규범의 내재화가 잘 되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 누가 보든 안보든 벌을 받든 상을 받든 상관없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사회적 규범에 맞게 일관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아름씨 오빠는 사회적 규준과 규범의 내재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돌봐야 할 어린 동생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거나, 어렸을 때 들키지 않았으니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지 않았을까요. 죄책감이 전혀 없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누가 묻거나 시험문제에 나온다면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대답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실제 생활에서는 누가 보지 않으면, 들켜서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그 행동을 반복했을 겁니다.


오은영의 화해

오은영의 화해


오빠는 왜 도덕발달이 잘 이뤄지지 않았을까요. 짧은 사연으로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지만 ‘오냐 오냐 키웠다’는 아름씨 얘기로 미뤄봤을 때, 부모님이 지나치게 허용적으로 키운 게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일반적으로 규범의 내재화가 잘 일어나려면 만 3세 이후부터 옳고 그름, 생활의 질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엄하게 키우라는 게 아니라 아이가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건 네가 싫어도 해야 하는 거야’라고 분명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너 이거 하면 아이스크림 사줄게’, ‘니가 이거 하면 나도 이거 들어줄게’, ‘너 이거 안하면 좋아하는 장난감 다 갖다 버릴거야’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네가 따라야 하는 거지, 네가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일러줘야 합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혹자는 아름씨에게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왜 부모에게 더 일찍 말하지 못했나’, ‘왜 어렸을 때 하지 말라고 하지 못했나’라고요. 아름씨는 아마 굉장히 당황했을 겁니다. 아름씨 일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특히 가족으로부터 그런 일이라니요. 그 뒤 아름씨 심정은 복잡했을 겁니다. 어린 아름씨가 몸을 뒤척이거나, 자다 깨는 척 한 건, 아마 그런 우회적인 방법이었을 겁니다.

어린 당신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었을까요.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문득문득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오빠 얼굴을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부모님께 오빠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얼마나 외치고 싶었을까요.

아름씨, 잘 버텨냈어요. 그런 당신에게 잘했다고 크게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 누구보다 당신 스스로 당신을 지켜냈어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상처내지 않았어요. 불행을 겪었지만 굳건하게 당신의 삶을 지켜온 당신은 내면의 힘이 있는 분이에요.

성인이 돼서 같은 일을 당했을 때도 잘 처신했습니다. 오빠를 재워준 건 성인이 됐으니 그러지 않을 거라는 실낱 같은 기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였을 거에요. 하지만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어요. 어릴 적보다 훨씬 더 공포스러웠겠지요. 어릴 적 일을 어른이 돼서 겪어도 머리가 하얘지고 얼어붙습니다. 오빠를 조용히 보내고 당신의 안전을 확보한 뒤 오빠에게 사과를 받아낸 것은 어릴 때와는 전혀 다른 대응이었어요. 건강한 면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당신이 절대로 겪어선 안 되는 일을 가족관계의 틀에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건을 바라보면 책임감이 당신을 짓누를 겁니다. 오빠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웠는데, 가족이란 굴레 때문에 견뎌내야 한다면, 그건 당신의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예요. 가족을 벗어나 당신 마음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따라 가길 권합니다.

저나, 이 글을 읽는 독자, 당신의 가족, 그 누구도 당신에게 오빠와 의절해라 마라, 가족과 연을 끊어라 마라고 간섭할 수 없습니다. 당신 마음이 원하는 데로 따르세요. 만나고 싶지 않으면 만나지 말고, 가족 행사에 참석하고 싶으면 가고, 당신의 마음을 최우선에 두고 그대로 해보세요. 가족관계를 앞세우지 마세요.

오빠에 대한 용서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저 가족간 화목을 깨는 파괴자가 되기 싫어 오빠를 용서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 용서를 하려는 것인지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전자 때문에 용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용서할 준비가 됐고, 당신의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당신 마음의 주인은 당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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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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