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청구 시 적용하지 않았던 업무상 배임
합병비율 조작 의혹 입증 실패해 '안전장치' 추가
최근 법원은 배임에 엄격 판단… '자충수' 될 수도
검찰이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한 배경과 노림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시했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거래ㆍ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 외에 공소장에 새롭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음으로써 삼성물산(물산) 및 물산 주주들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과 그룹 임원들이 합병의 사업적 타당성 및 합병시점ㆍ합병비율의 적정성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등의 충실ㆍ선관 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거래나 시세 조종, 분식회계나 허위 공시 등의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본 셈이다.
검찰은 특히 이 과정에 이 부회장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판단했다. 합병 계획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무마하기 위해 작성된 2015년 6월 작성된 골드만삭스의 ‘Workplan’ 문건이나 삼성증권의 ‘EA(Elliott Associateㆍ엘리엇) 대응방안’ 보고서, ‘엘리엇(Elliott) 대응계획’ 등이 미전실 김종중 전 전략팀장, 최지성 전 실장을 거쳐 이 부회장에게 보고됐다는 구체적 진술과 이메일 등이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다수의 시민단체들이 이 부회장을 고발할 때 포함됐던 배임 혐의를 앞서 올해 6월 청구한 이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에는 적시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한 내용과 관련 있는 일부분에 대해서만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검찰이 물산-모직 간 합병비율 조작 의혹을 입증하지 못하자 이 부회장 등의 범죄사실을 구성하면서 일종의 ‘안전장치’로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이 확보한 물증으로는 직접적으로 이 부회장의 범행을 입증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일련의 범행을 이어갔다는 큰 그림으로 배임을 집어 넣었다는 의미다.
다만, 최근 법원은 배임 혐의에 대해 ‘경영상 판단’으로 볼 여지가 있으면 엄격히 판단하고 있어 배임 혐의 적용은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과 관련, 대법원은 2009년 경영진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주주’라기보다는 ‘회사재산’이라는 취지로 판단했고, 아직 선례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이사회의 의무가 주주(보호)에 관련된 의무도 일부 부여된다고 해석할 수 있는 판례도 많아 이 경우엔 주주들에 대한 (이 부회장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삼성 측은 검찰의 배임 혐의 추가에 즉각 반발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영장 청구와 수사심의위 심의 시 전혀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업무상 배임죄를 기소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추가했다”며 “기소 과정에 느닷없이 이를 추가한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수사심의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팀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는 일관된 대법원 판례에 반한다는 법리적 이유와 합병으로 인하여 구 삼성물산이 오히려 시가 총액 53조원에 이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소유하게 되는 이익을 보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지금껏 의율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날 133쪽 분량의 공소장에 이 부회장 등 피의자 11명의 3가지 혐의, 16개 범죄사실을 담아 법원에 제출했다. 2018년 12월 삼성 바이오로직스 등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시작해 약 1년 8개월 넘게 진행한 이 사건 수사는 437권 21만4,000여쪽 분량의 수사기록과 함께 법원으로 넘겨져 판단을 받게 됐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