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한 멸종위기종의 골격ㆍ박제 표본 제작
서울대공원 동물표본제작자 윤지나, 임동섭씨
칼ㆍ목공ㆍ바느질ㆍ용접... 다양한 기술 필요
무엇보다 생물보전 중요성 알리는? 자부심 커
두 개의 매끈한 상아를 가진. '거대 골격'의 주인공은 아시아코끼리 '가자바'다. 서울대공원 대동물관에 머물다 자연사한 지 2년 만에 ‘골격표본’으로 재탄생을 앞두고 있다.
2018년 자연사 직후 매장된 가자바는 지난 5월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 총 350여 개의 뼈 중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300여 개, 척추나 견갑, 발 등 나머지 뼈는 아직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아 땅 속에 묻혀 있다. 골격표본으로 살아난 가자바는 박물관 또는 연구실로 보내질 예정이다.
가자바 골격표본 제작은 서울대공원 소속 동물표본제작자 윤지나(32), 임동섭(33)씨가 맡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내 동물위령비 앞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박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동물 사체를 다룬다는 점에서 동물표본제작자를 혐오와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손을 거쳐 탄생한 동물 표본이 교육 및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그로 인해 생물 보존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느끼는 자부심은 남다르다.
동물표본제작자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박제표본을 통해 해당 동물이 산 시대의 환경까지 후손들이 유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제작한다. 이를 위해 연구와 고민 또한 멈추지 않는다. 윤씨는 “동물표본제작자는 무지개를 쫓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아무리 쫓아도 절대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동물표본 역시 자연 그대로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려고 해도 '완벽한' 표본은 만들진 못하니까요.”
일반적으로 표본은 생물의 몸 전체나 일부에 적당한 처리를 가해 보존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종류는 골격표본과 박제표본, 식물표본, 곤충표본, 액침표본 등으로 다양하다. 그 중 서울대공원 동물표본실은 골격표본과 박제표본을 주로 제작하고 있다. 골격 표본은 가자바의 경우처럼 동물의 뼈만 발골한 뒤 조립해서 보존하고, 박제 표본은 동물의 가죽을 동물 모형 마네킹에 씌운 뒤 봉합해 건조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동물표본의 제작 과정은 다양한 기술이 복합된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칼을 다루는 기술은 물론, 가죽 가공과 목공, 용접, 바느질, 색칠, 조각 등 다양한 기술을 숙련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포유류 박제표본의 경우 동물이 자연사하면 냉동 보관 후 해동시켜 '견도(가죽에 붙은 살점과 지방을 제거해 최대한 얇게 만드는 작업)'를 거친 가죽에 적절한 약품을 처리한 뒤 해당 동물의 모양을 한 마네킹에 씌운다. 그 위에 눈, 코, 입 등을 봉합하고 몇 주간 건조하면 자연스러운 색과 형태를 갖추게 된다. 보통 너구리 만한 크기의 표본은 2-3주, 호랑이는 2-3개월의 건조기간이 필요하다.
윤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표본으로 ‘말승냥이(북한산 늑대)’를 꼽았다. 지난 2005년 4월 멸종위기에 처한 한국 늑대의 복원을 위해 평양 중앙동물원으로부터 들여 온 말승냥이 한 쌍 중 한 마리로, 서울대공원에서 10년가량 살다 노령으로 자연사한 개체였다. 윤씨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오기까지의 과정, 이곳에서 사육사와 함께 한 시간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지금도 박제된 말승냥이를 볼 때면 아련해진다"고 말했다.
동료 임동섭씨는 두루미 표본을 만들던 기억을 소개했다. “두루미 박제할 때 다리가 유독 길다 보니 다리에 긴 철사를 집어넣었는데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며 "조립까지 겨우 성공해 완성해 놓고 보니 이번엔 균형이 맞질 않아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추가 작업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동물의 습관과 자세, 얼굴 표정 등 디테일을 표본에 그대로 담기 위해 이들이 쏟는 정성과 노력을 감안하면, 관람에도 정성이 필요해 보인다. 실제 살아있는 야생동물은 근접해서 살펴보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표본으로 제작된 이상 최대한 가까이서 차분하게 관찰해 보기를 두 동물표본제작자는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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