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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 독살 시도' 트럼프만 어부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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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 독살 시도' 트럼프만 어부지리?

입력
2020.09.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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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ㆍ러 가스관 연결사업 중단 위기
차질 생기면 줄곧 반대한 미국 이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일 베를린에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일 베를린에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독일이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살시도 의혹을 입증하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러시아 제재를 주장하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양국간 천연 가스관을 연결하는 ‘노드 스트림2’ 사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분위기다. 인권 갈등이 경제적 마찰로 비화한 셈인데, 이럴 경우 에너지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경쟁해온 미국만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일(현지시간)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나발니 독살 시도에 대한 독일과 유럽의 제재 여부는 러시아의 진상 규명 협조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발니는 지난달 20일 러시아 국내선 항공기에서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고, 독일 시민단체 지원으로 베를린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독일 정부는 전날 연방군 연구시설의 검사 결과 “나발니가 구 소련에서 사용된 신경작용제 노비촉에 노출됐다는 명확한 증거를 확인했다”고 공표했다.

독살 의혹의 실체가 무엇이느냐를 떠나 이번 발표로 메르켈 총리는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가 미국의 반발에도 꿋꿋이 추진해온 노드 스트림2 사업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인 탓이다. 정치권부터 메르켈을 압박하고 나섰다. 노베르트 로에트겐 독일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나발니 중독 사건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체제에 맞서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라며 “외교적 대응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이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로 반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드 스트림2 사업을 러시아 압박 카드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노드 스트림2는 길이 1,225㎞의 해저 천연가스관을 건설해 러시아에서 독일로 가스를 직접 공급하는 사업으로 내년 초 완공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메르켈의 역점 프로젝트이지만 미국은 줄곧 강하게 반대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앞서 6월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을 공식화하면서 “독일은 왜 에너지 비용으로 러시아에 수십억달러를 주느냐”고 비판했고, 7월에는 국무부가 “노드 스트림2 투자자들은 미국 적대세력”이라며 제재 엄포를 놨다. 겉으론 서유럽이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면 에너지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란 이유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미국산 천연가스의 유럽 수출길이 막힐까 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때문에 이유가 어찌됐든 가스관 연결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수록 미국이 덕을 볼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되는 셈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와의 정치적 견해차와 경제적 유대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베를린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러시아가 나발니 사건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계속 책임을 부인하면 메르켈 총리의 결단을 요구하는 여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이날도 “러시아 정부에 혐의를 두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면서 “어떤 문제 제기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러시아 정부나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유보한 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나발니 독살 시도는 비난 받을 만하다”며 “우리는 러시아의 책임 있는 자들을 포착하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 중”이라고 원론적 수준의 논평을 내놨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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