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가족
편집자주
2020년대 지구적 사회 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서구에서 근대사회가 열린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것의 하나는 가족이다. 동아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기성세대의 경우 적지 않은 이들은 대가족에서 태어났지만 핵가족을 이뤄 살아왔다. 최근에는 1인가구의 증가도 거침이 없다. 일상과 사회생활의 터전인 가족의 과거, 현재, 미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20세기 가족의 초상
가족은 독특한 존재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일종의 공동체다. 우리는 국가와 시장이라는 제도 속에 살아가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서도 터 잡고 있다. 오늘날 가족을 살펴볼 때 먼저 주목할 것은 그것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고전적인 시각에서 가족은 혼인과 출산으로 연결된, 정서적으로 매우 친밀한 일차집단을 뜻했다. 가족을 연구하는 이들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핵가족이 빠르게 확산됐다고 봤다. 이 핵가족은 가부장제와 사적 친밀성이라는 양 축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세기 후반에 가족은 다양해졌다. 서구의 경우, 한부모가족 또는 재결합가족, 그리고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가족 등에서 볼 수 있듯,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가족(the family)’이 아니라 ‘가족들(families)’로 존재한다. 따라서 가족을 이야기할 때 하나의 보편 모델을 상정하지 않는 게 최근에는 자연스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가족의 변화는 가족 담론의 변화에서도 관찰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향이 컸던 구조기능주의자들은 가족의 일차적 기능이 사회화와 인성 형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대 산업사회에 걸맞은 가족은 핵가족이다. 핵가족 아래서 한 사람은 생계라는 ‘도구적 역할’을 담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살림과 양육이라는 ‘정서적 역할’을 떠맡는 성별분업이 바람직한 가족 모델로 제시됐다.
이 구조기능주의 담론은 196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비판받았다. 여성학자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그 선구적 저작이었다. 프리단에게 가정이란 ‘편안한 포로수용소’에 불과했다. 여성들을 가정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가두어 생물학적 역할에 적응하도록 학습시키고 성인으로서의 주체의식을 부정하게 함으로써 여성 자신의 발전을 정체시켰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페미니즘의 기여는 무엇보다 가부장주의라는 가족의 그늘을 발견하게 했다는 점이다. 가족은 한편으로 개인을 보호하고 사적 친밀감을 제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내부에 가부장 권력, 가정 폭력, 노인 학대, 아동 학대 등과 같은 그늘이 존재했다. 이러한 가족의 그늘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심원한 삶의 불안과 절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문제를 이뤘다.
가족의 그늘에 대한 또 하나의 문제제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나왔다. 이들은 가족을 사유재산을 세습하는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 파악했다. 나아가 사회화를 통해 자본주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서의 역할을 가족이 떠맡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세기 서구 가족의 초상을 전체적으로 돌아볼 때, 가족의 역할은 크게 변화해 왔다. 과거에 가족의 역할은 성적·정서적 기능, 양육·돌봄 기능, 경제적 기능, 교육적 기능에 있었다. 이 가운데 경제적 기능과 교육적 기능은 작지 않게 사회로 이전됐고, 성적·정서적 기능과 양육·돌봄 기능이 주요 역할로 남아 있게 됐다.
2020년대와 가족의 미래
이러한 서구의 가족 변동을 어디까지 일반화할 수 있을까.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이는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이다. 테르보른은 2011년에 내놓은 ‘다른 세계를 요구한다’에서 ‘가족-섹스-젠더 체계’를 일곱 유형으로 분류한다. 동아시아 유교 가족, 남아시아 힌두 가족, 서아시아·북아프리카 이슬람 가족, 유럽(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포함) 기독교 가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가족, 동남아시아 다원적 종교 가족, 아메리카 크레올 가족이 그것들이다.
테르보른에게 가족이란 제도는 가부장제, 결혼, 출산으로 구성된다. 2004년에 내놓은 ‘성과 권력 사이’에서 테르보른은 이 세 가지 측면에서 가족의 거시적 국제 비교를 시도한다.
먼저 가부장제는 지난 20세기 동안 하향적 추세를 보였다. 여기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물결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지역에 따른 차이였다. 서구에선 가부장제 약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아시아에선 가부장제의 영향이 여전했다. 물론 서구에서도 가부장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성의 권리가 남성과 법적으로 평등하더라도 노동시장과 가사노동에서 볼 수 있듯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게 현실이다.
한편 결혼의 경우는 유형마다 상이했다. 테르보른에 따르면, 가족 변동이 서구 핵가족 모델로 수렴해 간다는 주장을 지구적 차원에서 수용하기는 어렵다. 유형에 따라 여전히 다양한 혼인과 비혼인의 관행들이 존재한다.
마지막 출산의 경우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예외로 한다면, 지구적 차원에서 출산율의 저하가 진행돼 왔다. 이는 피임법 보급, 경제적 풍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과 이로 인한 사회적 지위 양상이 결합돼 만들어낸 결과다. 이제 대다수 유형들은 전체 인구 가운데 고령층의 비중이 높아지는 고령사회의 도전과 조우하고 있다.
2020년대 가족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단기적으로 가족의 변동이 급격하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가부장제의 약화, 친밀성의 변화, 고령사회의 도전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히 두 가지 경향은 주목을 요한다.
첫째, 전통적 핵가족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전통적 핵가족 이외에 한부모 가족, 부부만 사는 가족, 1인 가족, 확대된 핵가족 등 다양한 가족 유형들이 공존한다. 이러한 경향은 비서구사회에서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고령화가 안기는 과제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100세 인생’의 개막에서 볼 수 있듯, 고령사회의 도전은 빈곤, 일자리, 복지 등 경제·사회정책 전반의 변화를 요구한다. 더하여, 고령세대의 정서적 고립감 역시 그대로 놓아둘 순 없다. 고령세대의 사회적 통합에 대해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는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와 가족
우리 사회에서도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가족은 크게 변화해 왔다. 핵가족 비중의 증대와 가족 크기의 소규모화가 이러한 가족 변동을 이끌었다. 여기에 최근 1인가구의 증가, 저출산·고령화의 강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 가족 변동이 계속되고 있다.
2020년대가 열린 현재, 우리 가족이 놓인 자리는 어디일까. 이에 대해서는 먼저 사회학자 장경섭의 ‘내일의 종언?’(2018)을 주목할 수 있다. 장경섭은 한국 가족의 특징을 ‘가족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가족자유주의는 서구 자유주의를 핵심가치로 채택하되, 그 자유와 책임의 기본 단위를 개인이 아닌 가족에 놓아두고 있다.
장경섭에 따르면, 이 독특한 가족주의는 개발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며 형성된 ‘상황적 구성물’이다. 가족 의존적 경제사회 체제는 가족자유주의와 장기간 결합해 있었고, 그 결과 만성적 가족피로 증후군이 나타났다. 더하여,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비혼 및 만혼 증가, 저출산 강화, 노인자살 증대 등 가족 재생산 위기가 구조화됐다. 이러한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장경섭은 가족자유주의 정치경제와 사회정책의 총체적 전환을 요구한다.
사회학자 김동춘이 내놓은 ‘한국인의 에너지, 가족주의’(2020)도 주목할 만하다. 김동춘은 한국의 근대가 독자적 자유와 책임을 한 몸에 지닌 서구적인 ‘개인’의 탄생사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유기적 단위 속의 개인인 ‘가족 개인’의 탄생사였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가족과 가족주의는 극히 불안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도피처이고, 국가와 시장의 폭력을 버텨내는 울타리였다.
이러한 연구들이 함의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한국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 가족의 특수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게 하나라면, 이러한 가족과 가족주의가, 최근 저출산·고령화 경향에서 볼 수 있듯, 새로운 전환의 지점에 이미 도달해 있다는 게 다른 하나다. 한국적 가족과 그 위기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이에 기반한 정책 모색 및 추진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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