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 에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집은 누군가에게 ‘붉은 2층 벽돌집’처럼 구체적 형태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나만의 사치를 즐기는 특별한 곳’이라는 가치의 문제다. 건축가에게 이 특별한 집은 난감한 숙제인 동시에 창의적 도전이다. 지난해 3월 완공된 경기 광명 소하동 주택(연면적 190.28㎡ㆍ57.5평)은 건축주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건축가가 구체적인 형태로 펼쳐낸 집이다.
작지만 사치스러운 집
열한 살 난 아들을 키우며 아파트에서 생활해온 부부는 ‘아이와 뛰놀 수 있는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며 6년 전 아파트 인근 정부에서 분양하는 주택단지에 땅을 샀다. 아이가 크면서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부부는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함께 했던 박진희(니즈건축 소장ㆍ호서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와 그가 소개한 임윤택(원더아키텍츠 소장)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부부의 요구는 간명했다. 작지만 사치스러운 집을 지어달라는 것. “세 식구가 살 집이니 대저택처럼 크지 않아도 되지만 수영장이 있고 카페 느낌도 나는 좀 사치스럽다고 할만한 집이면 좋겠다고 했어요.”(건축주) 건축가는 건축주가 말한 사치를 새로운 경험으로 해석했다. “집에서 수영하고, 아이와 마당에 텐트 치고 놀고, 풍경을 감상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그런 경험은 아파트에서 쉽게 할 수 없잖아요. 이 집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게 ‘일상의 사치’가 아닐까라는 대화를 나누었죠.”(건축가)
사치를 구현하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었다. “저희가 마음에 드는 주택이나 구체적인 형태를 얘기하면 결국 다른 집들처럼 비슷해지지 않았을까요.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얘기하면 요리사가 그걸 반영해서 새로운 요리를 해주듯 건축가가 우리의 생각을 반영해 창의적으로 집을 지어주길 원했어요.” (건축주)
정사각형의 반듯한 대지에 집은 ‘ㄱ’자로 배치됐다. 주택가와 면한 북측 정면은 마당과 연결된 주차장을 제외하고는 뚫린 곳 없이 막혀 있다. 창 없이 콘크리트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외벽 위 안으로 들인 처마 아래 전체를 가로지르는 좁고 긴 창만이 나 있다. 북측에 창을 최소화한 것은 세 식구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불필요한 주택가 풍경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반대편(남측)은 시원하게 전면 창을 냈다. 2층짜리 본채와 1층짜리 별채가 ‘ㄱ’자로 연결돼 있다. 마당을 감싸는 본채의 1층과 별채의 1층 두 면에 창을 내 소통한다. 외부에서 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마당 앞에는 회전 목재문을 설치했다. 전면 창을 낸 본채 2층은 처마 깊이만큼 창을 들이고, 창 사이사이 기둥을 세워 창을 분절했다. 직사광선과 외부시선을 적절하게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집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학산과 마주한다. “아름다운 산의 풍경과 빛을 집 안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면서도 외부의 불편한 시선을 막기 위해 북측은 막고, 남측은 활짝 열되 담장 대신 목재문을 달았습니다.” (건축가)
1층 본채와 별채를 연결하는 위치에는 10.35㎡(약 3평)규모의 실내 수영장이 있다. 수영을 즐기는 건축주가 가장 원했던 공간이다. 천창과 마당을 조망하는 창이 있어 야외 수영장 같은 느낌이 든다. 냉ㆍ온수 기능은 물론이고, 배수 및 정화 시설 등을 갖춰 활용도가 높다.
처마, 마루, 기둥…장식 많은 집
외부가 채광과 환기, 방범 등 집의 기능에 맞춰졌다면 내부는 집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마루와 기둥, 문 등 집의 구성 요소를 활용해 시각적 즐거움을 더하고 새로운 경험을 유도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현관이다. 한옥의 툇마루를 닮았다. 툇마루가 안방과 건너방, 부엌 등의 동선을 연결하듯 단을 높인 현관은 거실과 주방으로 연결되는 긴 통로로 구성됐다. 각 실로 이어지는 미닫이문은 한옥의 창호문을 차용했다.
현관에서 거실로 연결되는 통로 바닥과 그 바로 위의 2층 난간은 삼각형으로 돌출시켰다. 집의 구심점인 거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건축가는 “구조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없어도 그만인 부가적인 형태를 만들어 넣어 공간에 새로운 분위기를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7m가 넘는 높은 천장 아래 배치된 거실 전면의 검은 구로철판 책장도 집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사선형으로 가로와 세로가 교차되는 책장은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했다. “집에서 가장 화려한 책장을 식탁에 앉아 바라볼 때가 가장 흐뭇해요. 책장은 제가 그간 노력해서 일군 삶에 대한 보상이자, 제 삶을 보여주는 상징 같이 느껴집니다.”(건축주)
1층 본채는 별도의 방이 없지만 수영장으로 이어지는 별채에 방을 뒀다. 현재는 운동을 좋아하는 건축주의 운동 공간으로 쓰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손님방과 자녀방으로 활용 가능하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계단을 오르면 1층 현관 복도의 질서가 2층에서도 재현된다. 긴 복도의 양 끝에는 자녀방과 부부의 방이 있다. 자녀방에는 경사지붕 아래 빈 공간을 이용해 다락방을 만들고 거실이 내려다보이는 창도 마련해 동적인 공간감을 줬다. 부부의 방은 미닫이문을 통해 욕실과, 침실, 작은 거실로 다시 구획했다. 1층 별채 위 테라스도 부부의 방과 연결된다.
2층의 내ㆍ외부 기둥들은 유달리 시선을 끈다. 2층의 남측 창을 분절하는 8개의 기둥은 노출 콘크리트와 콘크리트 벽돌 기둥이 서로 교차된다. 노출 콘크리트 기둥은 구조적 역할을, 벽돌 기둥은 장식적 역할을 한다. 2층 복도 중앙에 서 있는 원형 콘크리트 기둥 역시 장식용이다. 종이비행기처럼 얹어진 지붕도 통일성을 위해 경사지붕을 요구하는 지구단위지침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뒤집어 형태를 바꾸려는 시도였다.
“요즘에는 처마나 기둥 등 구조적인 역할을 하는 건축적 요소들을 최대한 가려서 미니멀한 건축이 유행이죠. 그러다 보니 건축적 미감을 느끼기도 어렵고, 공간적 재미가 덜합니다. 옛 집들에서 익숙하게 봐온 건축 형태를 의도적으로 살짝 비틀어 건축적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새로운 분위기를 내보고 싶었습니다.” (건축가)
집에 사는 이들에게는 특별함을 선사한다. “뭔가 평범하지 않고, 집이 아니라 갤러리나 카페 같은 예술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게 그런 장식적인 요인들 때문인 것 같아요. 저희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특별함이 그런 거였던 게 아닐까 싶어요.”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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