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마지막 학기에 들어선 아이에게 드디어 휴대폰이 생겼다. 자신만의 휴대폰을 처음 갖게 된 날, 아이는 “드디어 나도 내 폰을 쓴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한껏 들떠 있는 아이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휴대폰을 사 준 지금 시점이 너무 늦은 걸까 괜찮은 걸까, 저 녀석이 갑자기 휴대폰에 너무 빠져버리면 어쩌나.’ 답 없다는 걸 아는데도 걱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5년여 동안 아이는 휴대폰 없이도 잘 지냈다. 밖에서 전화해야 할 때는 학교에 설치돼 있는 공용 유선전화를 사용했고, 동네 문방구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허락 받고 가게 전화를 빌려 쓰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처럼 친구와 약속은 집 전화로 잡고, 미리 정해놓은 일정에 따라 시간 지키며 움직이는 게 습관이 들면서 아이의 동선은 휴대폰 없이도 예측 가능해졌다. 휴대폰은 초등학교 졸업선물이라는 엄마의 고집이 아이를 힘들게 하나 싶어 흔들릴 때, 아이는 고맙게도 “휴대폰 있는 친구들 보니까 잘 받지도 않고 툭 하면 잃어버리더라”며 기다려줬다.
아이에게 휴대폰을 계획보다 앞서 사주게 된 계기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때문이다. 앞선 단계 때는 그래도 방역수칙을 지키며 조심스럽게 문을 연 학원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밖에서 마스크 끼고 만나 운동이라도 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한층 강화하면서 학교는 물론 대다수 학원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고, 운동장도 체육시설도 잠겨 버렸다. 휴대폰이 없는 아이는 메신저로 학원 숙제를 제출하기도, 만날 수 없는 친구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워졌다. 학습에도 교우관계에도 이제는 휴대폰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어른들 휴대폰과 노트북, 탭 등을 돌려쓰면서 이미 전자기기에 익숙해 있던 아이는 자기 휴대폰을 손에 쥐자마자 각종 앱 설치와 기기 설정 등을 척척 해결해 나갔다. 아직도 전자책이 불편한 나 같은 아날로그 세대와 요즘 디지털 세대는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태어날 때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세상이 모두 존재한 디지털 세대는 어떻게 느낄 지 모르지만, 내 눈엔 여전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확연히 다른 공간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관계를 맺고, 정보와 소통을 제한 없이 나누는 온라인 세상은 물론 매력적이다. 특히 올해처럼 신종 감염병 유행으로 오프라인 세상이 위험할 땐 접촉 없는 온라인 공간의 강점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온라인 속 대인관계와 소통에는 아동과 청소년이 피하기 쉽지 않은 함정이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원하는 대로, 필요한 대로 ‘편집’해 보여줄 수 있다.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자신이 가진 다양한 모습 중에서 남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길 바라는 모습만 선별해 올린다. 반대로 자신이 올린 사진이나 글을 남들이 의도와 전혀 다르게 오해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면 온라인에서 만난 상대의 모습과 오프라인에서 본 그 사람의 모습이 서로 달라지는 모순이 나타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불일치’라고 부른다. 이처럼 쉽게 왜곡될 수 있는 온라인 대인관계에 성장기 아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얼굴을 마주보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선 남을 비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 여기에 익명성까지 더해지면 이름 공개하곤 차마 못 할 얘기도 거리낌이 없어진다. 거침 없이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다수의 누리꾼 사이에선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침묵하게 된다. 많은 타인에게 공격 당하거나 고립되기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 판치는 온라인 세상을 잠시 안 보는 게 속 편하니 말이다. 소수 의견은 이렇게 쉽게 묻힌다.
한 심리학 연구진이 가상의 정치인들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댓글을 보여주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지지 여부를 물었다. 그 결과 부정적 댓글이 달린 정치인은 다수 참가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댓글이 정치인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참가자들은 사실인지, 누가 어떤 의도로 올렸는지 모른 채 자신도 모르게 온라인 속 편향된 평가에 기대 사람을 판단한 것이다. 사고력과 판단력이 한창 발달하고 있는 청소년이 온라인 세상과의 만남에 신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휴대폰을 늦게 사주기로 한 까닭이 단지 게임에 빠질까 못 미더워서가 아니었다는 걸 아이가 알게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마음껏 드나들어도 걱정할 필요 없는 온라인 세상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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