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사는 주부 이모(54)씨는 페트병을 분리배출할 때마다 용기 표면에 붙은 라벨을 떼어내 따로 버린다.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투명 페트병은 옷감을 직조할 수 있는 ‘고품질 재활용 원료’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하지만 쉽게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라벨지가 여러 갈래로 찢어져 페트병 표면에 늘러 붙거나, 끈적한 접착제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다수예요. 접착제를 물로 씻어내려다 단념했던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떼어내기 어려운 페트병 라벨이 ‘고품질’ 재활용을 가로막는 복병이 되고 있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판매 중인 음료 제품 30여 개를 직접 구매해 확인해본 결과, △페트병 표면에 라벨이 지저분하게 남거나 △절취선이 없어 맨 손으로 벗기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강력한 접착제가 들러붙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페트병 표면에 접착제 자국을 남기지 않고 절취선을 따라 쉽게 제거된 사례는 한 제품뿐이었다.
투명 페트병은 플라스틱 가운데 가장 부가가치가 높다. 보통 분쇄된 페트병은 ‘섬유’로 재활용되는데, 그 중 색깔이 없는 투명 페트병이 옷감 직조가 가능한 장섬유의 원료가 된다. 그에 비해 ‘중ㆍ저품질’인 유색 페트병의 경우 오직 단섬유로만 활용할 수 있다. 섬유의 길이가 짧은 단섬유는 솜과 같은 내장재로만 쓰인다. 그간 국내에서 폐기된 페트병 중에선 고품질로 재활용되는 비율이 10%에 불과했기 때문에 장섬유를 제조하기 위한 ‘고품질’ 페트병은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 왔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환경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생수 및 음료병의 라벨을 ‘제거 가능한’ 접착 형태로 변경하도록 했다. 그러나 시중에서 판매 중인 제품을 살펴보면 실상은 천차만별이다.
접착제를 이용하는 ‘비닐’ 재질의 라벨은 주로 폴리프로필렌(PP) 소재로 만들어진다. 접착제를 이용해 페트병 표면에 라벨을 고정시킬 때, 접착제를 라벨 끝과 끝이 이어지는 이음매 부분에만 바르게 돼 있다. 그런데 페트병 표면과 닿는 부분까지 접착제를 바를 경우 라벨은 여러 갈래로 찢어지면서 페트병 표면에 지저분하게 남는다. 탄산음료 제품 대다수가 이렇다.
라벨이 깔끔하게 떨어졌다고 해도 물에 씻기지 않는 접착제가 페트병 표면에 잔여물로 남아있으면 ‘중ㆍ저품질’로 밖에 활용이 안된다. 잘게 분쇄한다 하더라도 접착제 잔여물질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페트병과 같은 재질의 ‘비접착식’ 라벨의 경우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고품질 재활용에 유리하다. 다만, 점선으로 표시된 절취선을 따라 소비자가 직접 라벨을 뜯어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제품은 절취선을 만들지 않아 칼이나 가위 없이 맨손으로 벗겨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주로 대형 편의점 프랜차이즈에서 자체 출시한 PB상품의 경우가 그랬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은 “페트 소재의 라벨은 분리 공정에서 물에 뜨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직접 떼어내지 않을 경우 제거가 더 힘들다”며 “그래서 절취선 없는 페트 라벨은, 그야말로 최악의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투명 페트병의 고품질 재활용 비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유색 페트병 사용도 금지했다. 그에 따라 소주를 포함한 생수와 음료 용기는 모두 투명 페트병을 써야한다. 아울러 지난 6월 유색 페트병과 투병 페트병을 ‘별도’로 분리배출하는 시범 사업도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페트병에 붙은 라벨을 제거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보니 그 취지는 무색해지고 있다. 아예 라벨을 붙이지 않아 제활용도를 높인 제품도 출시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홍 소장은 “현재의 기술적 여건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접착제를 사용하더라도, 소비자가 손쉽게 뜯어낼 수 있는 형태의 라벨을 만들어야 한다”며 “보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라벨을 떼어내 버릴 수 있게끔 유도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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