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사를 지닌 노래를 만났습니다. ‘하늘의 별이 죽음의 전염병을 몰아내리라.’ ‘끔찍한 죽음의 궤양이 세상을 덮칠지라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600년 전 작곡된 노래인데도 동병상련의 공감대가 금세 생겨났습니다. 흑사병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 영국의 작곡가 존 쿡(John Cooke)이 역병을 물리치기 위해 지은 찬송가 ‘천국의 별(Stella celi)’의 한 대목입니다. 고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주이상스 앙상블은 얼마 전 코로나로 뿔뿔이 격리된 단원들을 랜선으로 결집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이 연주 영상에 붙인 또 다른 부제는 이렇습니다. ‘세상을 향한 작은 음악 메시지’.
2020년 3월 이전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비현실적 일상들, 코로나는 우리의 삶과 예술에 격렬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태풍과 같이 일시적인 위기이길 바랐지만 조만간 회복되리라는 기대는 점점 무력해지는 중입니다. 오랜 시간 일상이 멈추자 질문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음악으로 팬데믹 시대를 위로할 수 있을까. 전염병이 일으킨 공포를 음악은 어떻게 극복해 왔을까?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시계를 한껏 돌려 오래된 음악사를 탐험했습니다. 중세 흑사병부터 근대 스페인 독감, 현대의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전염병에 맞서 음악으로 분투했던 여러 사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음악은 역병의 시기마다 오랜 격리나 죽음의 공포, 신체적 고통을 견디는 문화의 생명줄 역할을 도맡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전염병에 맞섰던 음악의 저항을 이 지면에 3회에 걸친 연재로 풀어보려 합니다. 음악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존 쿡이 ‘천국의 별’을 노래했던 흑사병 시대부터 출발합니다.
페스트라 불리던 흑사병은 14세기 중반 발병한 지 5년 만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는 25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온몸에 붉은 수포가 올라오면서 사나흘 만에 죽음에 이르자 사람들은 눈만 마주쳐도 옮는다며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곤 하늘이 내린 형벌, 인간의 부도덕함이 초래한 신의 분노라 여겼습니다. 단테의 신곡이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문학작품은 흑사병의 고통에 뒤엉킨 인간의 욕망과 타락을 처절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중세 프랑스의 음악가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는 흑사병의 투병을 몸소 견뎠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고용했던 귀족이 이 병으로 사망하는 광경까지 목도해야 했습니다. 그 서러운 처지를 음악으로 토로할 법한데 마쇼의 철학은 달랐습니다. “음악은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과학이다. 우울과는 상관없다.” 당대 유행했던 갈레니즘 의학이론이 마쇼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흑사병에 걸리는 까닭은 어두운 감정이나 슬픔이 일으키는 흑담즙의 과잉이라는 것이지요. 건강한 붉은 피의 순환을 촉진시키기 위해선 우울함을 물리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한다 주장합니다. 이 맥락의 연장에서 마쇼가 남긴 애가(哀歌)의 제목이 퍽 의미심장합니다. 죽음을 슬퍼하고 한탄하는 노래에 그가 붙인 제목은 ‘행운의 치료법, 저녁에는 눈물 흘려도 아침에는 웃는다.’란 긍정의 다짐이었습니다.
흑사병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 아이들이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놀이가 유행합니다. 이때 불렀던 노래는 ‘장미 주위를 둥글게 돌자(Ring around the Rosie)’란 동요였습니다. 멜로디 자체는 마쇼의 철학처럼 발랄하기 그지없지만 가사는 당대 상황을 적나라하게 반영합니다. 장미 주위(=붉은 수포)를 둥글게 돌자/ 약초 가득한 주머니 / 에취, 에취 / 모두 쓰러지고 말았네(=죽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노래가 전염병의 공포와 서글픈 이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염병, 음악의 저항’은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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