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국 공동성명... 中 체면 살리며 실리 얻고
남중국해 분쟁 문구 절묘한 배치... 美도 챙겨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이 미국과 중국 간 갈등 상황을 절묘하게 활용하며 실리를 챙겼다. 10개 회원국 전체의 동의가 필요한 공동성명을 적절히 활용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관련한 미국의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동시에 중국의 '백신 외교' 체면도 십분 살려준 것이다.
11일 아세안에 따르면 이틀 전 화상으로 진행된 53차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이 전날 밤 발표됐다. 6월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의 남중국해 부분이 어떻게 반영되는지가 관건이었다. 의장성명은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이자 올해 의장국인 베트남의 의중을 그대로 담아 미국의 환영을 받았다. 회원국 10개국의 동의가 필요한 공동성명은 의장성명과 달리 아세안의 전체 입장을 반영한다.
28쪽 50여개 분야 99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번 공동성명의 '남중국해' 분야는 6월 의장성명에서 하나가 빠진 두 개 문구로 정리됐다. △'남중국해 분쟁당사국 행동준칙(COC)'을 국제법에 따라야 한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등 국제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 7월 남중국해 분쟁에서 필리핀 손을 들어준 국제상설중재재판 결과를 에둘러 표현하면서 중국이 가장 껄끄러워한 3번 문구는 뺐다. 남중국해 상황에 대한 전체의 우려 표명도 '몇몇 장관의 입장'으로 수정됐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아세안 우군 만들기 전략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간 아세안 국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원과 메콩강 상류 댐 정보 제공 등을 약속했다. 회의를 앞두고 웨이펑허(魏鳳和) 국방부장(장관)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를 잇따라 방문하며 마지막까지 공을 들였다. 인도네시아에선 "남중국해 문제는 대화로 풀자"는 답도 받아냈다.
그러나 '남중국해' 분야에서 빠진 3번 문구는 '해양협력' 분야에 삽입됐다. '해양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가 국제법 토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부분이다.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되 베트남을 위시한 아세안의 실리도 챙긴 것이다. 남중국해에서 아세안의 행동을 촉구한 미국 입장에서도 실망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아세안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갈등하는 상황에서 아세안이 절묘한 문구 배치로 양측 모두를 배려하는 한편 자신들의 목소리는 살리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공동성명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논평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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