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발언의 대명사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화법이 달라졌다. '고민해보겠다'고 시간을 끄는 대신 '답은 A다'라고 명쾌하고 강렬하게 답하는 게 이 지사의 화법이다. 누군가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그 화법이 이 지사를 대선주자급으로 키웠다.
이 지사가 특유의 스타일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요즘 들어 발언 뒷수습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작심 발언을 터뜨리고 몇 시간 지나서 '내 진심은 그게 아닌데, 제대로 알아달라'고 첨언하는 식이다. 일종의 '치고빠지는' 전략이다. 여전한 사이다 발언으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되,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마음도 잡겠다는 게 이 지사의 목표인 듯하다.
'사이다 발언 → 수습'... 치고빠지기 화법
이 지사는 보편 복지론을 추종한다. 당정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하기로 일찌감치 방향을 잡았다. 선별 지급 방안 확정을 위한 당정 협의가 예정됐던 이달 6일 새벽,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선별 지급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
이 지사가 청와대와 민주당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해석으로 여의도가 종일 시끌시끌했다. 이 지사는 같은 날 저녁 다시 글을 올려 "정부의 일원이자 당원으로서 정부 여당의 최종 결정에 성실히 따를 것"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이 지사는 당정청의 '13세 이상 전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 방침'에도 반대했다가 스스로 물러섰다. 이 지사는 10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통신비 지원은) 동네 골목의 매출을 늘려주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반대론을 폈다. 이번에도 같은 날 "현 시국에서 통신비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이 왜 효과가 없겠냐"는 글을 다시 올려 수습했다.
이 지사는 지난 7월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성추문으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ㆍ부산시장 보궐 선거 공천 여부에 대해 "무공천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했다가 이틀 후에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
'국민과 당원, 이상과 현실 모두 잡는다'
이 지사는 본인의 사이다 발언에 환호하는 일반 유권자에겐 점수를 따되, 민주당 핵심 지지층에겐 매를 덜 맞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으로서의 '이상'과 여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로서의 '현실' 모두에 발을 걸치겠다는 속내로 볼 수 있다. 이 지사가 7월 보궐선거 무공천 발언을 수습하며 "저의 이상(무공천) 현실(공천)에 대한 전체 답변 중 이상에 대한 발언만 떼어내 제 의사와 다르게 보도되는 점이 안타깝다"고 한 점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 지사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은 13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이 지사는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새로운 정책 제안을 꾸준히 하는 동시에 당원이자 당 소속 도지사로서 민주당 정책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며 "최근 모습도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이 지사의 달라진 모습에 대한 평가는 것갈린다. 정치권엔 '사이다에 김이 빠졌다'며 실망스러워하는 시각이 일부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당 의원은 최근 "아무리 친문의 위세가 무섭다해도 대권주자의 발언이 새털처럼 가벼워서야 되겠나"라고 비판했다.
'김 빠진 사이다' vs '현실에 발 딛은 정치인'
그러나 여전히 굳건한 대선주자 지지율을 보면, 이 지사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갤럽의 9월 2주차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지사(22%)는 이낙연 대표(21%)와 오차 범위 내 초박빙의 접전을 벌였다. 한국갤럽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물은 결과, 이 지사의 선호도는 7월 3주 17%에서 9월 2주 28%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 지사가 '치고 빠지기' 전략으로 계속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되면, 경선의 '키'를 쥔 친문재인계 지지자들은 이 지사의 성향을 두고 혹독한 검증을 벌일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 지사가 민주당 주류와 차별화를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멀어지는 위협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 상세한 내용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c.g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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