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무게 700t, 300㎞/h 속도로? 하루 2,000㎞?운행
16주씩 중정비, 경정비는 매일 밤... 연중 점검?
완벽한 정비에 코로나19 완벽 방역까지
지난 8일 경기 고양시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소화물 적하장. 'KTX산천'이 레일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정해진 위치에 멈춰섰다. 곧이어 소형 지게차들이 열차 승강문과 좌석, 차륜, 모터 냉각 송풍기, 완충 역할을 하는 댐퍼 등 크고 작은 장비와 부품을 분주히 실어 날랐다. 수만 개가 넘는 고속열차 부품 중 일부에 불과한데도, 무게가 상당한 장비가 많아 바닥에 모두 펼치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 사진 속 물품은 모두 정비단에서 보유 중인 예비용 부품들이다.
이날 날씬한 자태를 드러낸 KTX산천은 우리 자체기술로 양산한 고속열차로 국민 공모를 통해 한국 토종어 ‘산천어’의 이름을 따왔다. 국내에서 운행 중인 고속열차의 차종은 크게 KTX산천과 프랑스에서 수입한 KTX,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국철도(KORAIL)의 고속열차편 총 85 편성 중 KTX가 46편성, KTX산천이 24, KTX원강이 15편성으로 경부선과 호남ㆍ전라선, 동해선 등을 운행한다. KTX원강은 KTX 또는 KTX산천 차종으로 편성한다.
철도차량정비단은 수도권을 비롯해 부산, 호남(광주), 대전 4곳에 있는데, KTX 고속열차 정비는 대전을 제외한 3군데 정비단에서 맡고 있다. 950여 명의 인력을 보유한 수도권정비단의 경우 350여명이 중정비를, 500여명은 경정비를 담당한다. 차량의 상부와 하부 전체를 점검하고 중요 부품을 교체하는 중정비의 경우 열차를 2대씩 16주 단위로 입고시킨 후 진행하는데 1년 내내 작업이 이어진다. 경정비는 하루 운행을 마치고 밤 10시~다음날 새벽 1시 사이에 정비고로 들어온 차량 20~24대에 대해 밤새 진행된다. 주로 전자제어시스템과 바퀴 상태 등을 점검하고, 마지막 단계인 청소 작업이 끝나는 새벽 4시30분경 열차는 곧바로 운행에 투입된다.
고속열차 정비 환경은 계절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간다. 한여름의 경우 그렇지 않아도 무더운 날씨에 KTX 동력차 내부 온도가 섭씨 40~50도까지 오르는 통에 정비를 마치고나면 속옷까지 흠뻑 젖고 만다. 반대로 한겨울엔 한파 속 고속주행으로 차체 외부와 바퀴 등에 얼음이 꽁꽁 얼어 있어 해머로도 제거가 쉽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한다.
박무운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장은 “수도권 정비단은 국내 전체 정비작업의 40% 정도를 담당하는 '큰집'”이라며 “밤낮으로 작업이 몰려 힘은 들지만, 자체 기술력으로 전반적인 정비를 모두 해결한다는 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고 전했다.
고속으로 운행하는 만큼 열차의 안전운행을 확보하기 위해선 철저하고 정밀한 정비가 필수다. 고속열차 선진국인 프랑스나 독일에서도 탈선ㆍ전복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아직 이 같은 사고가 없었지만, 산악지형 탓에 교량과 터널이 많은 우리나라는 화재, 탈선, 전복 등의 사고가 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차량 정비 분야 중 컴퓨터와 연계된 전자제어시스템이나 2만5,000V의 고압 전기장치, 고속열차의 속도를 결정하는 동력장치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과 가장 직결된 부품은 바퀴다. 최고 주행속도가 시속 300㎞에 달하는 데다, 무게 700t이 넘는 객차 20량을 끌고 하루 2,000㎞, 1년에 60만㎞를 운행하다 보면 바퀴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차량 바퀴 정비의 핵심은 열차 운행 시 바퀴가 완벽하게 둥글게 회전하는 '진원' 확보다. 진원 궤도에서 0.3㎜만 벗어나도 진동과 소음이 발생하고, 바퀴 내 마찰을 줄여주는 베어링이 과열되는 열화현상을 일으켜 탈선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작은 오차는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세한 단위까지 측정이 가능한 다이얼게이지를 동원하는 등 검사는 철저하다. 검사 후에는 정밀하게 바퀴를 깎아내는 '삭정' 작업을 통해 진원을 확보한다. 삭정 작업이 반복되다 보면 지름 924㎜의 바퀴가 점점 작아지는데, 지름 850㎜에 이르면 교체한다. 고속열차 바퀴의 평균 교체 주기는 6~7개월 정도로, 주행거리 35만km가 기준이다.
김문석 기획팀장은 “곰을 싣고 달리는 것보다 코끼리를 싣고 달리면 차량에 더 무리가 가는 법”이라며 “고속열차는 몸집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가혹할 정도로 철저한 정비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재확산 사태로 인해 현재 KTX 하루 수송인원은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승객 수가 크게 줄었지만 객차 청소 작업량이 소폭 줄어든 것 외에 정비단의 업무는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열차의 기지 입고 시에도 추가 방역을 실시하느라 업무량은 늘어난 편이다. 코로나19 시대 '안전 운행'을 확보하는 데 완벽한 정비와 더불어 완벽한 방역 또한 필수가 됐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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