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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중고시장에 냉장고ㆍ싱크대가 산을 이룬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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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중고시장에 냉장고ㆍ싱크대가 산을 이룬 까닭은?

입력
2020.09.20 15:21
수정
2020.09.20 15:5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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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ㆍ카페 폐업 속출해 중고 주방기구 대거 매물
창업 위해 중고 사는 사람도 없어... 주방거리 위기

17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 곳곳에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폐업 중고 주방 기기들이 쌓여있다.

17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 곳곳에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폐업 중고 주방 기기들이 쌓여있다.

“이 냉장고는 홍대 파스타집에서 왔고, 저 냉장고는 수원 고깃집에서 쓰던 거예요."

15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만난 주경영(55) 강동종합주방 대표는 "요즘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많은가요"라는 질문에, 보여 줄 게 있다며 가게 뒷편 창고로 기자를 데려갔다. 창고 안은 냉장고와 싱크대 등 중고 주방기구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다들 쓸 만해 보였고, 때깔도 여전히 새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1995년부터 이 곳에서 식당의 폐업ㆍ창업 컨설팅을 해 온 주 대표는 “작년까지는 식당 폐업 철거 문의가 일주일에 1건 정도였는데, 요즘은 하루 두세 건이나 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임대 계약도 못 채우고 폐업하는 가게, 눈물을 머금고 문 닫는 수십년 된 노포(老鋪)가 즐비하단다.

폐업하는 가게가 많으면 중고 주방기구 가게 사장은 호황을 맞을까? 주 대표는 “나도 요즘 죽겠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주방거리 업체들은 저렴하게 철거를 해준 뒤, 가져온 중고 물품을 되파는 게 주 수입원이다. 그런데 폐업하는 가게는 많은 반면, 새로 식당을 창업하겠다는 사람은 뚝 끊겼다. 얼마 전엔 창고에 빈 공간이 모자라 멀쩡한 2015년식 냉장고를 고물상에 1만원을 주고 넘겨야 했다. 주 대표는 “창업하겠다는 손님이 하루 한 명 올까 말까하는 수준”이라며 “이제는 이 곳 주방거리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혀를 찼다.

15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 위치한 강동종합주방 창고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폐업 중고 가전들이 가득 쌓여있다. 기간 내 팔리지 못한 중고 냉장고 등이 늘면서 멀쩡한 제품들도 고물상에 넘겨진다.

15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 위치한 강동종합주방 창고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폐업 중고 가전들이 가득 쌓여있다. 기간 내 팔리지 못한 중고 냉장고 등이 늘면서 멀쩡한 제품들도 고물상에 넘겨진다.

새로 요식업에 뛰어든 '신참 사장님'들의 든든한 보급창고 역할을 해 왔던 황학동 주방거리. 요즘 이 곳 사정을 보면, 지금 대한민국 자영업의 흐름이 '창업'보다는 '폐업'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식당과 카페의 손님은 줄고 경쟁은 치열해져 문을 닫는 곳이 줄을 잇는다. 요즘 같은 때 창업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간 큰 신참들은 찾기 어렵다. 자영업자뿐 아니라 이 곳 주방거리 상인들 역시 요식업 불황의 충격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있는 중이다.

주방거리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자영업의 폐업 러시는 실제 통계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동산114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2분기 서울의 상가 수는 37만321개로 1분기(39만1,499)보다 2만 1,178개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문을 닫은 상가 중 절반 가량이 음식점(1만40개)이었다.

17일 낮 12시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가 썰렁하다. 상인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물건을 실으려는 트럭과 창업 물건을 보러나온 손님들로 거리가 북적였다고 입을 모았다.

17일 낮 12시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가 썰렁하다. 상인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물건을 실으려는 트럭과 창업 물건을 보러나온 손님들로 거리가 북적였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 사태로 배달음식의 인기가 높아지며 이 곳 중고 식기 판매상들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18년 동안 중고 그릇 장사를 해온 이연숙(56) 성원주방 대표는 올해 2월부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코로나가 잠시 소강상태던 6월 매출이 회복세로 돌아섰으나, 재확산이 시작된 7월부터 다시 반토막이 났다. 이 대표는 “가게들이 이제는 배달만 하기 때문에 일회용 용기만 쓰고 있다"며 "홀장사(업장 판매)는 안 하기 때문에 중고 그릇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중고 가구 쪽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고 의자를 전문 판매하는 늘푸른가구에서 일하는 서준원(26)씨는 “창업이 줄면서 부피가 큰 가구들이 계속 쌓이는 게 문제”라며 “창고비 등 유지 비용이 늘어 요새는 쓸만한 폐업 가구가 나와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하루 평균 의자 100개를 들여와 100개를 그대로 판매했는데, 올해는 20~30개 밖에 팔지 못하고 있다. 현재 20평 짜리 건물 4개층, 200평 규모의 남양주 창고, 컨테이너 6개가 재고 의자로 가득 찼다. 이종철(58) 황학동주방가구거리상인회 회장은 “음식점이 문을 닫으면서 주방거리 상인들 모두 적자를 보고 있는 상태”라고 한숨을 쉬었다.

17일 서울 중구 황학동 거리에 위치한 늘푸른가구 매장 안쪽이 발 디딜 틈 없이 중고 의자들로 가득차있다.

17일 서울 중구 황학동 거리에 위치한 늘푸른가구 매장 안쪽이 발 디딜 틈 없이 중고 의자들로 가득차있다.

전문가들은 요식업 부진의 여파를 제대로 받은 황학동 주방거리가 이전의 모습을 찾기까지 상당 기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코로나19가 이번 겨울까지 지속되는 형국이라 최소 6개월은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지속될 것”이라며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소비 위축이 심각한 상태라 회복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글ㆍ사진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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