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잖아요. 그러니 성적 지향성 문제로 고민하는 어린 성소수자가 참고할 만한 '롤모델'이 없어요."
16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성소수자 부모모임(부모모임) 운영위원 장선영(67)씨는 나이 어린 성소수자들이 기대고 의지할 '어른'을 찾기 힘들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사회 분위기상 성소수자가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 극히 드물고, 성적 지향성 때문에 남모르는 고민을 겪는 청소년들은 아무 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2014년부터 시작한 단체다. 부모 9명이 운영위원을 맡아 커밍아웃(성정체성을 타인에게 밝히는 행위)을 두고 고민하는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들이 참석하는 모임을 연다.
장씨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바꾼 트랜스젠더 자녀를 뒀다. 장씨의 '딸'은 2014년 커밍아웃을 했는데, 장씨도 처음엔 "이해한다"고 말했으면서도 1년간 이 문제로 아무 대화를 할 수 없었단다. 2015년 부모모임에서 트랜스젠더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된 후에야, 딸과 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딸은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털어놓았다. 장씨는 딸의 이 말을 계기로 '어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히고 어엿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게, 성소수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부모모임은 24일부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유튜브 채널 등으로 나이 어린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토크쇼를 진행한다. 10ㆍ20대 성소수자가 질문을 하면 30ㆍ40대 성소수자가 답을 내놓는 식이다. 어린 성소수자들은 △학교나 직장에서의 대처법 △성정체성이 드러났을 때의 해결법 △연애ㆍ동거ㆍ결혼 문제 등 고민이 줄을 잇지만 주변엔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다. 수소문 끝에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성소수자 4명이 용기를 내 이 토크쇼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부모모임이 본격적으로 퀴어축제에 뛰어든 건 2016년 프리허그 행사를 하면서부터다. 이 행사는 어린 성소수자들에게 어른들의 지지와 응원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장씨는 “모르는 아줌마ㆍ아저씨에게 누가 안기겠냐는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행사를 여니 정말 많은 아이들이 프리허그 행사에 찾아 왔다"고 회상했다.
'나는 부모에게 커밍아웃할 필요도, 생각도 없다'던 40대 남성도 포옹을 하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사람도 얼마나 오래 속을 앓았을까요?" 장씨는 그 날 이후 퀴어축제에 부모들도 꼭 있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중 47.6%가 부모나 배우자 등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람들에게조차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다. 그만큼 성소수자를 내리누르는 우리 사회의 벽은 높다. 장씨는 "아무리 부인하고 부정해도 성소수자는 여전히 주변에 존재한다"며 "그들을 낯설다고 피하기보다 좀 더 따듯한 시선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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