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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유리는 포탄도 막을 수 있을까

입력
2020.09.26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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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의 첫 탄착 이후 방탄유리 제기능 못해
충격 흡수하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사용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방탄 차량을 북한 경호원들이 호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방탄 차량을 북한 경호원들이 호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방한한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찾아 방탄 유리 뒤에서 쌍안경으로 북한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사진공동취재단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방한한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찾아 방탄 유리 뒤에서 쌍안경으로 북한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사진공동취재단


자동차에 설치된 방탄유리에 총알이 탄착된 모습. AFP

자동차에 설치된 방탄유리에 총알이 탄착된 모습. AFP


지난해 11월 일론 머스크 미국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로스앤젤레스의 테슬라 디자인센터에서 사이버트럭 시연 도중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자동차의 견고함을 자랑하려고 방탄유리로 설계한 트럭 창문에 야구공만 한 쇠공을 던졌는데, 예상과 달리 “쩍” 소리를 내며 깨진 거다. 당황한 머스크는 쇠공을 트럭 뒤쪽 창문에 던져 상황을 만회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깨졌다. 머스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맙소사”였다. 방탄유리라고 하면 대개 수십 발의 총탄이 박혀도 꿈쩍 않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어림도 없다. 방탄유리의 목적은 첫 탄환이 피격된 이후 도피할 시간을 버는데 있다. 첫 총알 한 발만 제대로 막는다면 방탄유리의 역할은 충분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탄환 충격 감소시키는 원리는

방탄유리는 크게 △탄성력 △충격시간 △인장력 등의 원리로 작동된다. 탄성에 의한 충격 감소는 총알이 날아와 부딪히는 방탄유리 표면에서 벌어진다. 탄환이 목표물에 명중하면 탄성이 없는 물체는 관통당하지만 탄성이 있는 물체에서는 비행하는 운동에너지가 급격히 감소, 관통 에너지를 상실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야구 글러브가 공을 잡는 원리다. 글러브에 탄성이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으로 날아오는 공도 움켜잡을 수 있다. 머스크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서 사이버트럭의 방탄유리가 깨진 걸 해명하며 “(방탄유리 시연 전) 대형 망치로 문을 친 충격으로 방탄유리의 아래쪽이 깨졌다. 그래서 쇠공이 (유리에서) 튕겨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방탄유리의 제일 바깥 부분(베어링층)은 일반적으로 두꺼운 두께의 고강도 유리를 사용한다.

방탄유리의 가운데 부분인 전이층은 충격 시간 증가에 의한 충격량 감소를 유도한다. 총알의 충격력은 충격 시에 가해지는 힘이고, 충격량은 충격력에 시간만큼 누적된 양이다. 권총에서 발사되는 총알의 충격량이 상수로 고정됐다고 할 때, 충격시간이 길어지면 충격력은 반비례로 감소한다. 때문에 방탄유리는 여러 겹의 유리와 합성수지필름을 겹쳐 만들어 충격 시간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둔다. 전이층에 들어가는 게 합성수지필름이다. 방탄유리에 접합되는 서로 다른 소재는 총알에 연속적인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방탄유리의 가장 안쪽 부분은 총알을 막을 최후의 안전판이기에 강력한 인장력이 발휘되도록 설계된다. 총알이 방탄유리를 피격하면 유리를 앞으로 밀어 깨려는 압축력이 발생하는데, 유리를 단단히 잡는 힘인 인장력이 강하면 총알의 압축력을 상쇄할 수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 암살을 위해 날아온 총알이 방탄유리를 뚫지 못하고 반쯤 꽂히는 장면들은 이런 원리에서 기인한다.


주요 재질은 '폴리카보네이트'

물론 이를 모래와 규사, 탄산칼슘 등으로 구성된 약한 강도의 유리만으로 구현할 수는 없다. 방탄유리에는 특수아크릴, 방범필름, 폴리카보네이트(PC) 등이 겹겹이 들어간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이 강철보다 단단하면서도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플라스틱인 폴리카보네이트다. 폴리카보네이트는 동일 두께의 유리보다 약 250배나 강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산업용 소재인 고기능성 플라스틱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100도 이상의 열도 견뎌 금속의 역할을 대체하는 공업 재료로 산업계에선 널리 사용된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중에서도 유일하게 투명하다는 장점을 갖춰 방탄유리에 적용됐다. 폴리카보네이트는 탄환을 튕겨내지 않고, 거미줄처럼 계속 늘어나 탄환과 함께 회전하면서 마지막에 움켜잡는다. 폴리카보네이트는 탁월한 유연성으로 여러 형태의 곡면 시공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방탄유리는 평면이 아닌 곡면 형태를 띠는데, 날아오는 탄환을 효과적으로 비껴내기 위해서다. 화학소재 업계 관계자는 “폴리카보네이트는 영하 30도 이하에서는 강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며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요즘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에 실리콘을 혼합한 복합 소재가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방탄유리가 탑재된 자동차의 방탄등급은 독일 연방범죄수사청(BKA) 기준을 바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BKA에 따르면 방탄등급은 B1~B7의 7등급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B4는 권총을, B6 이상은 자동소총이나 수류탄까지 막아 낼 수 있는 정도다. 지난 2010년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 원빈이 극 중 악당이 탄 자동차 방탄유리에 권총 여러 발을 쏴 구멍을 뚫는데, 이 정도 수준의 방탄차가 B4 등급이다. 전 세계적으로 방탄유리 개발에 관심이 쏠린 계기로는 제1차 세계대전의 기폭제가 된 ‘사라예보 사건’이 꼽힌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됐는데, 당시 황태자 부부는 자동차로 이동 중 총격을 받고 숨졌다.

현재 방탄유리가 탑재된 고급 자동차는 주요 인사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위험에 많이 노출된 요인일수록 자동차의 방탄 성능은 높다. 지난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판문점에 도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눈길을 끈 건 그가 타고 온 차인 ‘메르세데스-벤츠 S600 가드’였다.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177㎞ 거리를 이 차로 이동했다. S600 가드의 방탄유리는 자동소총과 수류탄 공격을 막고 화염방사기, 화염병 등에도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해 6월 12일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전용차인 ‘캐딜락 원’을 보여 주자, 김 위원장이 부러운 표정으로 방탄유리를 손으로 두들기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히기도 했다. 캐딜락 원의 방탄유리 두께는 무려 13㎝에 달한다.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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