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 골라 집중 공격하는 일명 까판들?
본인은 물론 가족·업체·심지어 태아까지 공격?
"신고하나 마나... 인스타그램이 방조자" 지적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코로나보다 더 한 고통이에요. 가족들까지 협박을 받아 무서워서 집밖에도 못나가요.”
피해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빗댈 만큼 고통을 호소한 것은 인스타그램에 횡행하는 ‘까판’ 계정이다. ‘까계정’이라고도 부르는 까판은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사람들(인플루언서)을 골라서 집중 공격한다. 허위 사실은 물론이고 가족에 대한 위협, 금전요구까지 공격 내용이 다양하다.
까판 계정을 개설한 이들은 익명의 그늘에 숨어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자를 공격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까판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엉뚱한 사람까지 피해를 입힌 ‘제2의 디지털 교도소’라는 지적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피해자들은 까판을 방임하는 인스타그램도 동조자로 본다.
24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인스타그램에 까판 계정이 늘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까판이 7월 말부터 증가했다”며 “유튜브에서 광고협찬을 받고도 알리지 않은 유튜버들의 ‘뒷광고’ 사태를 빌미로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비난하고 위협하는 마구잡이식 까판이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일보는 까판 때문에 피해를 본 다수의 인플루언서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까판에 대한 공포 때문에 실명과 계정명 공개, 사진 촬영 등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너를 망하게 할거야!”
피해자 A씨는 널리 알려진 의류전문업체를 운영하는 유명인이다. 전지현, 고소영, 김혜수 등 유명 스타들이 고객이어서 패션전문지에도 소개되는 등 유명세를 탔다. 덕분에 입점하기 어렵다는 서울 강남의 유명 백화점에도 매장을 냈다.
그런 A씨가 영문도 모른채 까판의 표적이 됐다. 그는 “7월말부터 까판 계정에 나와 가족, 제품, 회사를 공격하는 글들이 올라왔다”며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각종 욕설이 섞인 공격 내용은 성매매와 불량품 유통 등 글로는 옮기기 힘들만큼 험악한 거짓이었다. 그는 “임산부인 동생 사진을 올리고 태아까지 모욕하며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위협했다”며 “동생은 조산기까지 있다”고 울먹였다.
까판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거래처까지 압박했다. 입점 매장이 있는 백화점에 계속 전화를 걸어 퇴출시키라고 종용한 것이다. A씨는 “급기야 백화점에서 이런 일이 지속되면 고객 보호를 위해 퇴점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해왔다”고 전했다.
여성 의류전문 쇼핑몰을 운영해 중국 일본 등에서도 찾을 정도로 유명한 B씨도 지난달부터 까판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까판들이 남편 직장에 전화해 아내가 불륜녀라는 등의 거짓을 말하며 남편을 자르라고 요구해 남편도 피해를 보고 있다”며 “가족 사진과 등기부등본 등 개인정보까지 마구 공개하며 공격해서 무섭다”고 말했다.
B씨는 금전요구까지 받았다. 그는 “공격을 멈추는 대가로 1억원을 내놓으라는 쪽지를 받았다”며 “이 정도면 단순 비방이 아니라 범죄”라고 분노했다.
까판들의 공격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한 인플루언서도 있다. 허위 비방에 시달린 C씨는 “악성 댓글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가수 설리와 구하라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며 “정신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수면제를 한꺼번에 네 알씩 먹어도 잠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친구와 식당에서 밥 먹는 사진까지 몰래 찍어 올리고 슈퍼마켓에서 나눈 대화 내용까지 까판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는 느낌”이라고 두려움을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까판들의 공격 목적이 유명인에 대한 시기심, 경쟁자 배제를 위한 사업적 악용 등이 섞였다고 본다. C씨는 “특정인을 노리개 삼아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며 “여기에 재미를 붙여 공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공격이 불매운동으로 확대되며 사업 피해까지 발생했다. 모 의류업체 대표 D씨는 A, B씨에게 제품을 공급한다는 이유로 까판들의 공격을 받았다. D씨는 “A, B씨는 패션업계에서 선망의 대상”이라며 “이들이 무너지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예 이들을 망하게 하겠다며 대놓고 불매운동을 해서 제품을 공급하는 우리까지 피해를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 A씨가 입은 타격은 심각하다. 그는 “까판 공격을 받은 지난달에 영업을 하지 못해 1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최악의 사례는 까판이 허위사실 유포를 위해 인플루언서 업체에 위장취업까지 한 뒤 컴퓨터를 해킹한 사건이다. 인플루언서 업체에 취업한 까판이 홈페이지의 관리자 비밀번호를 알아내 판매 정보 등을 조작하고 까판 계정에 해당 인플루언서가 탈세 목적으로 현금만 받았다는 거짓 글을 올렸다. 법무법인 현진의 윤장석 변호사는 “조사 끝에 용의자를 밝혀냈고 범죄 사실이 명확해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망 침입 혐의로 최근 고소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도 방조자”
피해자들은 인스타그램 신고센터에 까판 계정을 신고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B씨는 “지난달 인스타그램에 신고했는데 아직까지 답이 없다”며 “있으나 마나한 신고센터”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참다못한 인플루언서들은 까판 계정 다수를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달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돌아온 답변은 이들을 허탈하게 했다. 윤 변호사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 의뢰를 해서 수사가 시작됐다”며 “경찰에서는 영장을 제시해도 인스타그램이 협조하지 않아 까판 계정에 대한 수사를 힘들어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인스타그램이 까판의 방조자라고 주장했다. 윤 변호사는 “인스타그램이 경찰에서 영장을 제시해도 각종 핑계를 대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인스타그램이 이용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까판 계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스타그램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
인스타그램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인스타그램과 모회사인 페이스북은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인스타그램 관계자는 “경찰청 등 정부 기관과 협력 채널을 갖고 있다”며 “경찰서에서 인스타그램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은 신고센터의 일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코로나19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스타그램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모니터링 요원을 늘리지 않아 신고센터 업무가 늦어지고 있다”며 “테러와 자살방지, 건강 관련 거짓 정보, 성 착취물 등을 막는 일에 우선하다보니 명예훼손 등은 밀릴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테러나 자살 피해 우려 등은 신고가 없어도 인스타그램에서 발견 즉시 관계 기관에 먼저 알린다”며 “명예훼손 게시물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삭제 요청을 하거나 실정법 위반이 명백한 경우 법적 검토를 거쳐 조치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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