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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입력
2020.09.24 17:30
수정
2020.09.24 17:4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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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고 결정하는 시간은 꽤 걸렸다. 거대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 핫한 주제를 선택하면 졸업 이후의 진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야망, 혹은 일을 벌리지 않고 시간도 품도 덜 드는 주제를 선택해 빨리 졸업을 할까 하는 생각 사이에서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은 내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주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이 칼럼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 지난 5회 차에 걸쳐 이야기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장애인을 마주치거나 함께 있으면 불편해 하는 마음을, 장애인을 향한 부정적 인식과 태도를 바꿀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편견을 생기게 하고 또 어떤 계기로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 인식으로 변화하게 할 수 있을까?

장애인이니깐 아플거야, 힘들겠지, 할줄 아는 것이 있겠어? 이런 생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으니, 그 사람이 가진 장애의 특성과는 아무 관련 없는 당연한 능력을 보고 놀라는 것이다. 운전을 하거나, 번듯한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 살거나,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는 장애인을 보면 신기해 하는 것이다. 게다가 장애인이 행복하게 살면 의아해하기도 한다. 수년 전에 한 기자님이 인터뷰하러 유학 중인 나를 만나러 미국까지 오셔서 한 첫 질문이 “혹시 연기하는 거 아니에요?”였다. 내가 이 얼굴을 하고 이렇게 웃고 사는게 연기라면 칸 여우주연상은 제가 받아야죠!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정말 놀랐고, 처음 뵙는 어른이라 퍼뜩 받아치지 못했다.

장애인도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여겼던 시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아 가는 중이거나, 혹은 이미 그 의미를 찾은 사람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똑같이 주어진 한 번의 인생을 살며,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화나기도 하는 일들로 채워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난 칼럼에 비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부정적 인식을 바꿀 계기로 ‘접촉가설’을 들어 이야기했었다. 사실 그저 단순한 만남으로는 부정적 인식이 좋게 변화하지는 않는다.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경험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편견은 더욱 강화될 뿐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집단 간 접촉이론이다.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친밀하고 대등한 관계 속에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함께 협업하는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외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비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3일간의 캠프 동안 일 대 일로 짝을 이루어서 함께 하는 캠프 활동을 통해 비장애인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박사 논문을 썼다. 그리고 그 다음해 같은 캠프에 내가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심하지 않은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와 짝이 되었다. 언니는 물었던 일정을 계속 다시 물었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해야 해서 몸은 조금 피곤하긴 했다. 사실 나 역시 발달장애는 잘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조용한 예배시간에 갑자기 소리를 내거나, 쇼핑몰 등에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나 뛰어가는 등의 상동행동을 보이면, 보호자가 참 어렵겠구나…하며 보호자에게 공감을 했었다. 그런데 3일을 함께 지내보니 언니는 목소리가 참 이쁘고, 많이 웃는 그 입매도 사랑스럽고, 춤도 신나게 출 줄 아는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던 발달장애인은 보호자를 힘들게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옆자리에 앉아보니 보호자들이 그저 힘들지만은 않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스러움이 있는 이와 함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의 제목을 ‘장애인’이라고 바꾸어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3보면 이상해 보일수도 있는 장애인을 조금 오래 보고 그 안에 있는 매력을, 사랑스러움을 발견한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타인이 아니라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넓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행복한 공존을 위해서.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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