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연구소' 소장 강제윤 시인과 섬을 얘기하다②
섬의 숙원 '여객선 공영제'…"외지인 더 많이 이용"
"관광섬 만들었더니 내몰릴 판"…지심도 토지불하
사단법인 '섬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시인 강제윤 소장의 태생은 전남 완도 보길도다. 잠시 바다를 건너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겪다 돌아온 시인을 섬이 품었고, 이제 시인은 그의 연구소와 함께 역으로 섬을 품고 있다. 차별·천대 받는 것이 눈에 밟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는 그에게 섬은 항상 애틋한 존재고 삶 그 자체다.
보길도의 자연하천을 시멘트로 덮으려는 직강화 사업을 중단시킨 것이 시작이었다. 원시림을 파괴하고 문화재인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훼손하는 보길도 댐 증축을 저지하는 과정에서는 33일간의 단식도 불사했다.
종종 '그 좋은 개발을 왜 막느냐'는 오해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섬 사람들이 그를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인터뷰하는 2시간 남짓의 시간에도 강 소장에게는 여러 차례 섬사람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절박했다.
한국의 유인도는 행정안전부 기준으로 470개가 넘는다. 모든 유인도를 걷겠다는 생각으로 강 소장이 답사하고 기록한 지는 15년이 넘었다. 2012년 '섬 학교'를 만들어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섬을 알려왔고, 이들을 주축으로 섬 연구소는 2015년 공식 설립돼 섬을 지키고 돕는 활동에 앞장서 왔다.
"섬에도 사람이 삽니다."
지난달 21일 강 소장을 만나 우리가 너무도 몰랐던, 지금 알아야 할 섬의 현실을 물었다. (관련기사 ☞ "우리 섬 몇 개인지 정부도 몰라" 울릉도마저 서러운 육지 공화국)
"가장 급한 건 여객선"…文 대선 공약이었던 '여객선 공영제' 무산
태풍 '마이삭', '하이선'에 울릉도가 역대급 피해를 잇따라 입었음에도 수도권 중심주의에 의해 소외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린 섬 연구소. 이로 인해 울릉도 사건이 전국적 이슈가 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지만, 강 소장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또 다시 편지를 띄웠다. 대형 여객선 운항 중단 후 태풍에도 대체 여객선 투입이 감감무소식인 터, '사실상 유배지에서 감옥살이 하는' 울릉도 주민의 고통을 덜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섬 사람들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무엇일까요
"섬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여객선입니다. 동시에 가장 염원하는 것은 '여객선 공영제' 일테고요. 태풍 마이삭으로 울릉도에 엄청난 피해가 난 후 행안부에서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문의를 했더니 '조사단이 울릉도에 들어가기 위해 포항까지 갔었지만 파도가 높아 결국 들어가지 못 했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때 약속대로 대체 여객선으로 대형 여객선이 도입됐다면 들어갈 수 있었겠죠. 이 문제 또한 여객선 공영제와 맞닿아 있는 겁니다."
-섬에서는 여객선이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일텐데요. 현실이 어떤가요
"울릉도는 연간 100일 남짓 배가 뜨지 않아요. 1년 중 3분의 1 정도죠. 백령도는 80~100일, 흑산도도 70~80일 정도 배가 뜨지 않고요. 육지에선 파업으로 3일 정도만 열차나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도 난리가 나는데, 섬 사람들은 1년 중 100일을 배가 못 다녀도 여태 참고 살아온 겁니다. 5월 백령도에서 한 아이 어머니가 교통 사고로 응급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날씨가 안 좋아 헬기는 안 뜨지, 배타고 육지에 들어가는 것도 10시간이 걸렸는데요. 열악한 환경에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죠. 그런 일이 허다해요."
-여객선 공영제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기도 했는데요
"여객선을 육지의 지하철이나 철도 등 대중교통처럼 공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쭉 있어 왔고, 세월호 참사 이후 2014년 9월 2일 해양수산부가 여객선 공영제 실시 계획을 발표했는데 결국 무산됐죠. 지난 대선 때 공약으로 채택되기도 했지만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예산 문제로 또 결렬됐습니다. 이것도 '섬에는 사람이 얼마 안 산다', '여객선은 섬의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데 사실 지난해 여객선 이용객 1,600만명 중 섬 사람들이 이용한 것은 300만 명 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관광하는 육지 사람들이 주 이용객이죠. 여객선 문제는 섬 주민 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문제인데 그걸 못 보고 있는 거예요."
섬의 외로움·모순 담긴 '거제 지심도 토지불하'…강제이주 위기 놓인 주민들
최근 강 소장이 가장 마음을 쓰는 섬은 지심도다. 거제시가 '자연학습장 조성사업' 개발을 추진하면서 지금의 지심도를 만들어 온 15가구 21세대, 40여명의 주민들이 강제 이주를 해야 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군은 당시 주민들을 쫓아내고 지심도를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이 땅은 해방 후 1971년 대한민국 국방부로 소유권이 이전되기 전까지도 서류상으로는 일본 육군성 소유였고, 주민들은 건물에 관한 권리만 소유한 채 3년마다 땅 임대료를 지불했다.
지심도가 거제시 관할이라는 점에서 2005년부터 반환 운동이 벌어지면서 2017년에는 결국 소유권이 국방부에서 거제시로 이전됐다. 문제는 거제시가 지심도를 해금강, 외도 등과 연계해 명품섬으로 조성하겠다는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지심도는 1968년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지정됐다. 그동안 혼란 속에서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주민들이 임대한 땅에서 증축 등을 거쳐 무허가 식당 등을 운영해 온 것을 두고 이제서야 거제시가 국립공원 내 건축법 위반 등을 들어 '불법'이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지심도 토지불하,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걸까요
"근본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잘못한 겁니다. 광복 후 주민들이 다시 들어왔으면 원래대로 소유권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죠. 대한민국 국군이 일본군을 계승한 것도 아닌데, 육군성 소유로 돼 있으니 국방부가 그것을 인수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고요. 주민들은 원래 자기 땅이었던 곳인데 50년 넘게 국방부에 임대료를 주고 세를 산 거예요. 이것이 발단이에요. 거제시가 2017년 국방부로부터 땅 소유권을 매입하더니 이제 주민들에게 나가라고 하는 거고요."
-거제시가 추진하는 '자연학습장 조성사업'이 섬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요
"환경부로부터 자연학습장 지정을 받고 관광지 만들려고 개발한다는데 지심도에 1년에 15만명이 가요. 연간 15만명이 찾는 섬이 이미 관광지가 아니면 무엇인가요. 지심도는 섬 전체가 원시림이고 탐방로도 완벽하게 나 있어요. 이미 자연학습장입니다. 그러니 개발 명분이 없는 거예요. 접근성 개선 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누가 지심도 못 가는 사람이 있나요? 15분이면 갈 수 있는 섬이에요. 몇명 안 사니까 밀어붙이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섬을 아직도 우습게 보는 거죠. 토지 불하도, 임대 계약도 갑자기 안 해준다고 하는데 거제시가 그럴 자격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동백이 필 무렵 지심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무척 아름답더군요
"연간 관광객 몇천 명 수준이었던 지심도를 지금처럼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만든 것은 주민들이에요. 1999년 태풍으로 원래 생계수단이었던 유자, 밀감 나무 등이 피해를 입자 관광업으로 섬의 활로를 개척하려 20년간 피땀 흘려 가꿨죠. 주민들 사비로 최초의 지심도 조감도를 만들고, 신문과 관광버스에 광고판을 부착해 알렸어요. 고속버스 휴게소를 찾아다니며 해마다 20만장의 홍보물을 뿌렸고요. 거제시가 안 도와주니 돈을 모아 마을길을 포장하고, 오디오가이드도 설치했어요. 화재와 발전소 건설업자들로부터 원시림과 해상 경관을 지킨 것도 주민들이고요. 거제시가 개발하지 않더라도 지심도는 이미 명품섬입니다."
-거제시는 주민들의 불법적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그 동안 지심도 주민들이 일부 건물을 증축한 것은 사실 자연공원법에 규정된 권리에 따르면 불법도 아닙니다. 법에는 1968년 지심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에 건축된 건물은 증축은 물론 개축, 이축까지 가능하다고 나와있죠. 그런데 그 동안 국방부가 주민들이 이 권리를 행사하는 걸 동의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불법 증축한 거고요. 주민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게다가 애초에 1960년대 초반 정부에서 일본 육군성 소유로 되어있던 땅을 국유화하게 되면 주민들에게 불하해준다고 약속했었는데 결국 지키지 않고 국방부가 가져가버린 거였어요. 지심도 주민들은 불법을 저지른 죄인이 아니라 정부에게 버림받은 희생양들입니다. 그러니 거제시의 불법 운운은 주민들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거제시와 지심도 주민들을 아우를 수 있는 해결방법은 없을까요
"주민들 절반 이상이 지쳐서 삶의 터전을 두고 나가겠다고 하는데, 결국 경상남도에서 섬 연구소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국민권익위원회 주재로 거제시와 지심도 주민, 섬 연구소가 함께 상생 방안을 만들었고, 권익위가 이를 거제시장에게 통보했고요. 첫 번째는 '지심도 주민 소유의 건물이 자리한 토지를 주민들에게 불하한다', 두 번째는 '지심도 마을을 국립공원 내 마을지구로 지정하도록 돕는다'인데요. 주민들의 삶을 합법화, 양성화할 수 있는 방안입니다. 거제시는 권익위 조정안에 아직도 답하지 않고 있고요."
환경부는 '제3차 국립공원계획 변경안'에서 지심도 주민들이 신청한 국립공원 마을지구 지정 안건을 제척했다. 거제시의 반대 때문이다. 안건 상정 전 주민 공청회 의견수렴, 경남도지사 의견 청취 절차도 없었다.
강 소장은 이번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향해 편지를 띄웠다. 결국 지난달 28일 환경부 자연공원과 과장 등 담당자와 국립공원추진단장 등이 지심도를 방문,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 불법 사항을 해소해 안건으로 상정된다 해도 심의와 허가 과정을 또 통과해야 한다. 지심도 주민들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지난하다.
소외받던 섬, 본보기 되다? 장고도에서 배운다
"섬마을 장고도만의 기본소득, 기사를 읽으며 신이 날 정도"
충남 보령 장고도의 경제공동체 사례가 화제가 되면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 말이다. 장고도는 전체 75가구의 작은 섬이지만 공동체 스스로 '주민연금'의 기능을 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해삼과 전복, 바지락 등 채취 전 과정을 주민들이 철저하게 공동 작업, 공동 분배하는 식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캐든 모두 모아 공동 분배한다.
섬 주민들은 배당금으로 지난해 가구당 1,300만원을 수령했다. 전체 75가구 중 70가구가 배당금을 받았다. 뒤늦게 입도한 가구도 거주한지 20년 이상이 되면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는 팔순, 구순의 노인도 경제적 불안을 겪지 않는다. 초기에는 잡음도 물론 있었지만 실험을 통해 공동분배할 때 공동체 소속감으로 산출량이 오히려 더 많아진다는 결과가 나왔고, 노동을 더 많이 하는 젊은이들도 이제는 불만이 없다. 그들 또한 언젠가 나이가 들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섬 마을 장고도의 사례가 기본소득 관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장고도의 경우 엄청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해삼은 사료를 줄 필요도 없고 알아서 잘 자라는데, 주민들이 할 일이 없어요. 매년 1억원 가량을 투자해 해삼 종묘만 뿌리면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바다가 돈을 벌어다 줍니다. 그야말로 바다가 저금통인데, 장고도에서는 노후 불안이나 돈 걱정 없이 살아가죠.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정부가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탄생시켰다는 점은 더 놀라운 점입니다. 모든 섬이 주변 해양 환경이 다 다르니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외연도, 호도, 녹도, 삽시도 등도 따라 배우고 있죠."
-정부의 섬 정책에도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섬이나 관광지 개발로 국비를 몇백 억원씩 쓰고 난 후 막상 결과를 보면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집은 한두 가구, 많아야 열 가구 정도 됩니다. 왜 개인을 위해서 개발을 합니까. 정책을 만들 때부터 장고도와 같이 공동체가 운영할 수 있도록 해 공동으로 수혜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바다와 섬을 잘 지켜낸 건데요. 조그만 섬에 사는 주민들도 해내는 것을 정부에서 수십 조원을 써가면서도 못 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장고도는 단순히 섬 하나의 사례로만 볼 게 아닙니다."
육지로부터 소외됐던 섬이 오히려 가르침을 주는 역설적 상황. 강 소장은 '그래서 지금이 바로 섬을 논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그에게 섬의 의미를 묻자 '삶'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섬은 더 이상 섬 사람들에게만 삶이 아니다. 육지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가 섬에 귀 기울이고 들여다 봐야 하는 이유, 나아가 배워야 하는 이유는 이미 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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