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군사 목적 활용 우려” 이유
자국 반도체 공급능력 극대화 속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숨통을 바짝 조이고 있다.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규제에 이어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회사 중신궈지(SMIC)에 대해서도 수출제한 조치에 나선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자체 공급망을 고사시켜 자국 업체들의 공급 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26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상무부는 전날 미 컴퓨터칩 제조회사들에 서한을 보내 “앞으로 SMIC와 자회사들에 특정 기술을 수출하려면 사전에 건별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통지했다. 이들 기업은 SMIC의 주요 부품 공급처여서 칩 제조에 사용되는 부품ㆍ장비에 대한 접근을 사실상 차단하겠다는 위협인 셈이다. 폴 트리올로 유라시아그룹 기술정책 분석가는 “최악의 경우 미 행정부가 SMIC 수출을 전면 중단시킬 수 있다”며 “이는 중국 반도체 생산 능력의 급격한 후퇴로 이어지고 미중관계의 ‘티핑포인트(급변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표면적으로 미국은 SMIC로 수출하는 반도체 기술과 장비가 군사목적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상무부는 “SMIC로의 수출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전용할 수 있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을 제기한다”고 서한에 적시했다. 이에 SMIC 대변인은 “우리는 오직 상업적 최종 소비자들을 위해서만 반도체를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미국의 강공 드라이브에는 자국 관련 산업의 경쟁 우위를 지키려는 속내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제재로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첨단 반도체 육성 전략은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SMIC는 화웨이와 더불어 중국 반도체 자급화 구상의 양대 축이자, 세계 5위 점유율을 가진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다. 미국의 거듭된 제재로 화웨이의 반도체 생산을 맡던 대만 TSMC와의 관계가 끊긴 이후 중국 당국은 SMIC를 대안으로 삼아 집중 육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SMIC의 공정 장비와 부품 수급마저 막히면 화웨이에 미치는 충격파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대중 제재와 더불어 미 행정부 및 의회는 국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250억달러(29조원) 규모의 보조금 투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를 보면 미 의회는 반도체 공장과 연구시설 건설에 건당 최대 3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안보상 중요한 반도체 개발에 국방부 등이 50억달러의 자금을 공급하는 내용의 초당적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SMIC를 옥죄어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자국 업계에는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을 미국으로 되돌려놓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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