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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재인산성" 부름에... 12년만에 '명박산성' 소환

입력
2020.10.0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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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2008년 광우병 시위 때 컨테이너 벽 설치
2005년 APEC 당시 어청수 부산경찰청장이 고안


보수단체의 개천절 집회가 열린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가 펜스와 차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뉴스1

보수단체의 개천절 집회가 열린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가 펜스와 차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뉴스1


개천절인 3일 광화문 일대에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보수단체의 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이 수송버스 300대로 차벽을 만들어 광장을 원천 봉쇄하고 나선 건데요. 세종대로 일대 도로와 인도에 하얀 버스가 일렬로 차벽을 만들어낸 장면은 실시간 교통 폐쇄회로(CC)TV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눈길을 끌었죠.

이 차벽을 두고 여야의 공방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여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국민을 위한 '방역의 벽'이라고 평가했지만, 야권에서는 '재인산성'이라며 정부의 과잉진압을 문제삼고 있죠.

재인산성은 경찰이 수송버스로 광화문 도로를 차단한 모습이 마치 과거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석축 등으로 산에 쌓은 성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때 집회를 막기 위해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두고도 '명박산성'이라는 비판이 나왔죠. 다만 당시 집회 통제를 위한 바리케이드는 오늘날 차벽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광우병 집회 때 등장한 '명박산성', 불통의 상징으로

2008년 6월 10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 세종로사거리 광화문 방면 차로가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을 막기위해 경찰이 설치한 대형 컨테이너박스로 차단돼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다. 류효진기자

2008년 6월 10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 세종로사거리 광화문 방면 차로가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을 막기위해 경찰이 설치한 대형 컨테이너박스로 차단돼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다. 류효진기자


2008년 6월 11일 새벽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밤샘 집회를 하며 경찰이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장애물에 올라가 깃발과 현수막을 흔들고 있다. 오대근기자

2008년 6월 11일 새벽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밤샘 집회를 하며 경찰이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장애물에 올라가 깃발과 현수막을 흔들고 있다. 오대근기자


명박산성은 2008년 6월 10일 6·10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진행된 '100만 촛불 대행진' 때 등장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재협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였는데요.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은 시위를 막기 위해 세종대로 한복판에 컨테이너 구조물 60여개를 벽돌쌓듯 설치했습니다. 세종대로 충무공 동상 앞과 안국로 등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이 컨테이너로 차단됐습니다.

이 컨테이너는 모래 주머니를 가득 채워넣어 용접했고, 2층 구조로 쌓아올렸죠. 컨테이너 1개당 높이는 2.7m, 무게는 4톤이 넘었다고 해요. 2층으로 쌓았으니 전체 높이는 5.4m에 달했죠. 시민들이 컨테이너를 기어서 오를 가능성을 아예 막기 위해 표면에는 미끌미끌한 윤활유까지 칠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경찰버스로 차벽을 설치해 왔지만 시위대가 차벽을 무너뜨리거나 버스를 훼손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이 컨테이너는 이른 아침부터 설치돼 하루 종일 교통을 마비시켰는데요. 시민들이 출근길 큰 불편함을 호소하면서 교통 체증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일었죠. 경찰은 컨테이너는 하루 만인 11일 철거했습니다.

사실 컨테이너를 활용한 집회 방어 작전은 2005년 처음 등장했어요. 부산에서 벡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장에 시위대가 진입하려하자 경찰이 컨테이너 90개를 동원해 2층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이를 막았죠. 당시 바리케이드 활용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다름아닌 어청수 당시 부산경찰청장이었습니다. 어 청장은 나중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위대를 막을 방법을 고민하다 부산항에 쌓여있는 컨테이너가 떠올랐다"고 말했는데요.

당시 컨테이너 방어벽이 시위대 차단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한 어 청장은 3년 후 경찰청장으로 승진한 뒤 광화문에서 열리는 대규모 촛불 집회 때 같은 방법을 쓴 겁니다.

집회 봉쇄에 효과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당시 정부는 이 컨테이너 벽 때문에 민심을 크게 잃었죠. 집회의 자유 침범, 독단적 행정 논란이 일면서 명박산성은 불통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어요. 어 청장은 3년 뒤인 2011년 MB정부의 마지막 청와대 경호처장에 발탁됩니다.

같은 해 6월 2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명박산성에 대응하며 트럭 두 대 분량의 모래를 준비해 '국민토성 쌓기'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죠. 2015년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 때나,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 때 등 광화문 광장에 경찰의 차벽이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명박산성이 회자됐습니다.


"명박산성보다 더 길어" VS "시민방역의 벽"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가 펜스와 차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경찰은 보수단체가 신고한 차량을 이용한 차량시위(드라이브 스루)를 대부분 금지 통고하고 행정법원이 허가한 강동구 일대 9대 이하 차량시위만 허용했다. 뉴스1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가 펜스와 차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경찰은 보수단체가 신고한 차량을 이용한 차량시위(드라이브 스루)를 대부분 금지 통고하고 행정법원이 허가한 강동구 일대 9대 이하 차량시위만 허용했다. 뉴스1


3일 경찰이 세운 긴 차벽을 본 보수단체는 "재인산성은 그 규모부터 달랐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어요. 집회 봉쇄를 위해 투입된 수송버스만 300대 이상이고, 도심에 90개소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찰 병력 800명을 투입해 길목마다 꼼꼼하게 통제했으니까요.

이날 오후 2시 광화문역 7번 출구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지금 광화문을 버스로 막았는데 이른바 명박산성보다 이번에 차벽이 훨씬 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정부의 불통이 화두가 됐던 광우병 촛불 집회 때와는 달리, 이번엔 방역을 위한 특단의 조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요.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민불통의 벽'인 컨테이너벽과 '시민방역의 벽'인 경찰차벽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이제 좀 누그러드는 추세를 보이나 싶었는데 개천절 집회로 전 국민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자 방역당국과 경찰은 고심 끝에 방역을 위한 광장 봉쇄를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죠.

철저한 방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을까요. 방역을 명분으로 한 지나친 단속이었을까요. 다가오는 한글날 보수단체들은 또 다시 집회를 열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만약 집회가 열린다면 경찰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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