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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사돈까지…리본처럼 묶인 집

입력
2020.10.07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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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 에 연재합니다.


지난해 11월 완공된 경기 김포신도시의 리아네 집은 회색 박스의 두 채가 한 집처럼 붙어 있다. 20도 가량 벌어진 틈새로 집의 진입로가 숨겨져 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지난해 11월 완공된 경기 김포신도시의 리아네 집은 회색 박스의 두 채가 한 집처럼 붙어 있다. 20도 가량 벌어진 틈새로 집의 진입로가 숨겨져 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현대사회에서 다 큰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 혹은 황혼육아 등의 부양관계로 귀결된다. ‘가족이라서 함께 산다’는 단순한 명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승정택(43)ㆍ조은정(39)씨 부부는 이 같은 사회적 편견을 깨고 3대에다 사돈까지 함께 모여 사는 집(연면적 224.30㎡ㆍ68평)을 경기 김포신도시에 지었다. 부부에 딸 리아(5)와 양가 어머니까지 총 5명이 함께 산다.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마치 숲 속 오솔길을 거니는 느낌이 들도록 설계됐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마치 숲 속 오솔길을 거니는 느낌이 들도록 설계됐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두 개의 박스가 모서리를 맞댄 집

이들 부부도 원래는 부모와 따로 살았다. 남편은 회사원이고 아내는 주부다. 이사오기 전 부부는 김포의 한 아파트에, 남편의 어머니는 인근 아파트에, 아내의 어머니는 인근 주택에 각각 거주했다. 가족간 왕래가 잦았다. 차로 몇 분 안에 가는 거리를 하루에도 수 차례 들락날락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아이가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잠깐 들르거나 반찬을 나눌 때도 집에 계신지 매번 확인해야 하고, 누군가 데려다 줘야 하고 그런 번거로움이 컸어요. ‘이럴 바엔 같이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같이 한집에서 살아보자는 부부의 제안에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양가 어머니도 우려했다. 한집에 살면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게 되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라는 해묵은 진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았다.


외부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감싼 중정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있는 중간 영역이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외부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감싼 중정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있는 중간 영역이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포기하긴 일렀다. 부부는 ‘가족에 맞춘 공간이라면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파트나 타운하우스도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여러 채를 사야 하는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서로의 동선이 쉽게 읽히는 평면의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건 힘들 것 같았어요. 그러면 우리한테 맞는 집을 지어서 각자 독립된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한데 모여 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어머니를 설득했어요.”

어렸을 때 양옥집에 살았던 즐거운 추억도 끄집어냈다. “어렸을 때 마당 한 구석에서 강아지와 함께 놀았던 기억, 계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 기억 등 집에 관한 소소한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해요. 저희 아이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고, 어머니도 그런 얘기들에 공감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김포신도시의 평평하고 길쭉한 땅(대지면적 406.4㎡ㆍ123평)을 샀다. 남쪽에는 공원이, 북쪽에는 도로와 맞닿은 땅이었다. 살짝 휘어진 대지를 따라 두 개의 회색 박스가 살짝 비틀어진 형태로 건물을 지었다. 마치 리본으로 묶은 것처럼 단층집과 2층집을 맞닿은 하나의 모서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펼쳐뒀다. 두 집 모두 남향인데다 크기도 비슷하다. 단층집에는 아내의 어머니가, 2층집에는 남편의 어머니와 부부, 그리고 딸이 산다.

설계를 맡은 오승현ㆍ박혜선 건축가(서가건축 공동소장)는 “사돈끼리 친하다 해도 하나의 공간에 모여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만큼 각자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두 채로 분리했다”라며 “집을 한 채로 하면 각자의 영역을 나누기도 힘들지만, 각 공간의 관리 책임 등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향으로 열린 집은 공원과 마주한다. 법규상 담장을 두를 수 없어 중정으로 느슨한 경계를 만들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남향으로 열린 집은 공원과 마주한다. 법규상 담장을 두를 수 없어 중정으로 느슨한 경계를 만들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오솔길과 4개의 중정이 있는 집

내부로 진입하는 현관은 두 집이 벌어진 작은 틈새에 있다. 외부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지만 주차장에서 집에 이르는 14m의 길이 있다. 주차장에서 돌아서면 벽체를 지나 하늘이 뚫린 작은 사각형 중정이 나오고, 이를 지나 다시 방향을 틀면 삼각형 중정 안에 두 개의 현관이 엇갈리듯 마주한다. 잔디와 꽃을 심어둔 이 길은 지친 퇴근길에 안도감을 안겨주면서 때로 길고양이들의 쉼터 역할도 한다. '숲 속 오솔길'을 염두에 두고 동선을 만든 건축가는 “도로에서 집까지 가는 길도 집의 일부”라며 “공(도로)과 사(집) 사이에 중간 영역을 둬서 사적 공간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공간적 경험을 풍요롭게 한다”고 말했다.


양가 어머니들이 쓰는 방에는 중정으로 툇마루를 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양가 어머니들이 쓰는 방에는 중정으로 툇마루를 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집에는 2개의 중정이 더 있다. 공원을 향해 있는 두 집은 남쪽에 공원과 마당으로 연결되는 각자의 중정이 따로 있다. 담장을 두를 수 없는 법규상 바로 외부와 만나지 않으면서도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건축가의 묘책이다. 각 집의 구성원이 오롯이 쓰는 개인 마당이기도 하다. 각각의 중정에서 나오면 공원과 연결되는 공용 마당이 있다. 건축가는 “공원과 바로 이어지다 보니 마당이지만 공원처럼 느껴질 수 있는 문제가 있다”라며 “외부에서 봤을 때 중정의 벽안부터는 사적 공간이라는, 최소한의 경계를 뒀다”고 말했다.

두 집의 내부는 연결되지 않는다. 각 집의 내부 구성도 다르다. 내부는 살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했다. 연세가 있는 어머니들의 주생활 공간은 이동의 편리성을 고려해 1층에 뒀고, 각각의 침실에는 외부와 조우하는 툇마루를 냈다. 조망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부와 아이의 방은 2층에 두고 그 안쪽에다 바닥 높이를 올린 가족실을 마련했다. 아이가 3층이라 부르는 이 공간은 옥상을 대신해 접이식 문을 달아 발코니를 마련했다. 부부가 운동을 하는 등 부부의 취미생활 공간이다.


2층집의 거실은 단차를 두어 다실 같은 거실을 만들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2층집의 거실은 단차를 두어 다실 같은 거실을 만들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2층집 주방은 싱크대 겸 조리대를 벽이 아닌 거실을 향해 배치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2층집 주방은 싱크대 겸 조리대를 벽이 아닌 거실을 향해 배치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2층의 가족실은 접이식 문을 설치해 외부 같은 내부 공간을 만들어 개방감을 준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2층의 가족실은 접이식 문을 설치해 외부 같은 내부 공간을 만들어 개방감을 준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거실과 주방도 가족에 맞췄다. 아내의 어머니가 사용하는 단층집은 주방과 거실을 일자로 이었다. 거실 크기도 2층집보다 작다. 반면 2층집은 단을 올려 거실과 주방을 분리했다. 주방 조리대는 벽이 아니라 거실을 향하게 만들었다. TV와 소파가 놓인 전형적인 거실 구조에서 벗어나 다실(茶室) 같은 형태로 완성했다.

부부의 요청으로 욕실과 화장실도 분리했다. 아이 방에는 천창을 마련해 공간의 재미를 더했다. 집에 살아보니 부부는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했다. “막상 지을 때는 잘 몰랐는데 어느 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보이는 풍경이 숨멎을 정도로 좋은 거예요. 집에서 하늘과 나무, 공원, 한강 같은 자연을 느낄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죠.”


아이에게 집에 대한 재미를 주고 싶다는 부부의 요청에 건축가는 천창을 내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아이에게 집에 대한 재미를 주고 싶다는 부부의 요청에 건축가는 천창을 내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건축주 부부는 집을 짓고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집에 대한 만족감을 느낀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건축주 부부는 집을 짓고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집에 대한 만족감을 느낀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따로 또 같이'는 코로나19 시대 빛을 발했다. "코로나19로 다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사실 우리 집에선 서로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아요. 아파트였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이 집에선 서로 상황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지요. 아이도 집 밖에서 벌레 보고, 나뭇가지 줍고, 그림자 쫓으며 노느라 어른을 찾지 않아요. 양가 어머니들도 날 좋으면 툇마루에 앉아 자신만의 중정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으시고요.” ‘같이 살면 결국엔 싸우지 않을까' 싶었던 걱정은, 그저 기우로 끝났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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