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27년 통기타 친 '명동지기'는 대리운전 뛰며 임대료를 댄다

알림

27년 통기타 친 '명동지기'는 대리운전 뛰며 임대료를 댄다

입력
2020.10.06 18:00
수정
2020.10.06 22:49
12면
0 0

코로나19 장기화로 벼랑 끝에 선 상가임차인
시민단체 "임대료 유예 아닌 감면 등 특단 조치를"

6일 오후 서울 명동의 라이브카페 '무아'에서 박현수씨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승엽 기자

6일 오후 서울 명동의 라이브카페 '무아'에서 박현수씨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승엽 기자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 가사예요. 마치 지금의 제 처지를 위로해 주는 것처럼 들리네요."

6일 오후 서울 명동 라이브카페 '무아'에서 만난 박현수(58)씨는 손님도 없는 텅 빈 홀 탁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27년 전 명동성당 옆 5평 남짓한 공간에 둥지를 튼 무아는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을 통기타와 포크 음악으로 위로해 준 '7080' 청년 문화의 명소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해고된 사진 속 동료를 바라보며 눈물 글썽이던 회사원, 그저 포크송이 좋아 비좁은 가게를 단골 삼은 은행원 등. 자정이 넘도록 무아는 들썩였고, 그래서 누군가는 이 곳을 그냥 카페가 아니라 삭막한 도시를 비추는 등대라고 했다.

각자 사연을 가진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이 곳 무아도,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는 피해가지 못했다. 이곳의 임대료는 월 275만원. 올해 2월부터 손님이 90% 줄면서, 생돈으로 월세를 내느라 쌓인 빚만 수천만원이다.

8월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는 '버티면 되겠지'하던 무아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간 결정타였다. 박씨는 "보통 오후 9시에 본격적 영업이 시작되는데, 9시에 문을 닫으라니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며 "요즘엔 텅 빈 가게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일이 더 많다"고 고백했다. 카드를 돌려막으며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더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는 지난달부터 가게 문을 닫은 오전 1시 대리운전을 시작한다. "혹시 무아 사장님"하며 누가 알아나 볼까 겁도 났지만, 면구스러움은 그에게 사치였다. 박씨는 "인생 절반을 보낸 이 곳은 희노애락이 녹아있는 저의 삶 그 자체"라며 "이대로면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허무함만이 밀려온다"고 울먹였다.

강북구 수유동에서 3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A씨도 박씨처럼 절박한 처지에 몰렸다. 2월 이후 A씨 부부는 매일 오전9시부터 오후10시까지 하루 13시간을 일한다. 월세조차 내기 힘든데,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여유는 당연히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인은 5월 "보증금과 월세를 5% 올리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합의했으나, 임대인은 그 화장실 열쇠를 빼앗아 손님들이 화장실 이용을 못하게 하는 등 A씨를 내보내기 위해 온갖 '갑질'을 하고 있다. A씨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다"며 "임차인이 모든 부담을 독박 써야 하는 세상"이라며 울었다.

박씨와 A씨는 얼마 남지 않은 희망과 바닥을 보인 은행 잔고를 갉아먹으며 코로나19를 버티는 우리 시대 숱한 소상공인ㆍ자영업자 중 한 사람이다. 이들은 임대료를 감당 못 해 벼랑 끝으로 몰렸지만, 다수의 임대인과 정부는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이들의 목소리를 그저 앓는 소리로 치부하며 외면한다.

자영업 임차인 보호를 위해 지난달 국회에서 △감염병 상황 시 임차인에게 임대료 감액청구권을 부여하고 △임대료 연체 유예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내용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태는 '유예'나 '감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정부의 강제 영업제한 조치에 따라 손실을 입은 업종이나 신종 코로나로 인해 막대한 고통을 겪고있는 상가임차인들에게, 정부나 지자체가 긴급재정명령에 준하는 행정조치 등을 통해 임대인이 임대료를 감면하도록 하고 정부가 그 감면분의 일부를 분담하는 방식의 추가입법 및 행정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무국장은 “8개월 넘게 매출 감소가 지속돼 임차상인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정부가 긴급행정명령을 통해 임대료를 감면하도록 하고 감면분의 일부를 지원하거나 이자감면 조치를 취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도 "내년에도 위기 상황이 이어질 텐데 정부와 국회의 대응은 늘 두세 발 늦거나 자발성에 호소하는 '언발에 오줌누기'식 대책에 그치고 있다"며 "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되려면 반년 넘게 걸릴 텐데 지금부터 정부와 국회가 빠르게 논의해 입법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오후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가 임차인들이 코로나19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임대인과 정부는 이들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분담하기 위한 정책을 고민해 달라”고 촉구했다.

6일 오후 서울 명동의 라이브카페 무아에서 박현수씨가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승엽 기자

6일 오후 서울 명동의 라이브카페 무아에서 박현수씨가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승엽 기자


이승엽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