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순부터 서울 양천구 임대차 시장이 들끓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전셋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빌라 등 다세대주택에 살던 이들로, 임대인에게 떼인 돈은 가구당 평균 2억원이었다. 주로 큰 돈 없는 서민이 피해자였다.
문제의 집주인은 양천구에 사는 60대 A씨였다. 그는 양천구를 비롯해 서울과 지방에 다세대주택 수백 가구를 소유하고 있었다. 모두 전세를 낀 '갭투자' 방식으로 매매한 주택이었다. A씨가 올해 6월까지 전셋돈을 돌려주지 못한 사례만 202가구에 달했으며, 세입자가 떼인 돈은 총 413억1,100만원이었다.
7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를 낸 임대인 상위 30명이 떼먹은 전셋돈은 총 1,096억4,100만원이었다. 보증 사고란 전세 계약 해지 또는 종료 후 1개월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전셋돈을 돌려주지 못한 경우를 뜻한다.
무리한 갭투자가 사고 원인이다. 집값이 전셋값을 추월하는 '깡통 전세' 현상이 여기저기서 발생하자, 임대인이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통상 갭투자를 통해서 주택을 여러 채 가진 집주인은 새 세입자의 전셋돈으로 기존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고 있다. 결국 A씨가 전세 돌려막기에 실패하면서 수백 가구가 연쇄적으로 피해를 본 것이다.
피해는 온전히 세입자 몫이다. HUG는 현재까지 A씨를 대신해 186가구에 전셋돈 총 382억1,000만원을 갚아줬다. 16가구는 아직 돈을 돌려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A씨에게 HUG가 회수한 돈은 전무하다. HUG 관계자는 "현재 해당 주택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며 "낙찰금으로 변제금을 회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백명의 돈을 떼먹은 임대인은 A씨뿐이 아니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B씨는 50가구에 전셋돈 101억5,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강서구에 사는 한 임대인은 48가구에서 94억8,000만원을 떼먹었다. 서울을 제외하면 12가구에 전셋돈 28억6,100만원을 갚지 않은 충남 예산군민이 최다 사고자였다.
그러나 떼인 전셋돈 회수율은 저조했다. HUG가 보증 사고를 낸 임대인 30명을 대신해서 세입자에게 돌려준 돈은 현재까지 총 966억6,000만원이다. 그러나 회수금은 117억3,000만원(12.1%)에 그쳤다. 더욱이 상위 10인 중 6명에게는 단 한 푼도 받아내지 못한 상황이다.
김 의원은 "전세금 사고 한 건은 한 가정의 현재와 미래를 파괴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문제"라며 "수십, 수백 건의 전세금을 떼먹는 임대인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다루어야 하며, 주무부처 또한 미연에 사고 발생을 막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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