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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꾼 이유

입력
2020.10.11 14: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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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종종 "왜 콩쿠르 경력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렸을 적부터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아이들은 보통 유치원생 때부터 대회에 나가기 시작하니 당연한 질문인지 모른다. 사실 나도 일곱살 때부터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다. 틴에이저콩쿠르 특상을 시작으로 소년한국일보, 삼익, 음연, 중앙, 국민일보 한세대콩쿠르 등에서 1등을 했다. 2년 동안 무려 25개 대회에 나가서 우승했으니 참 바쁜 시간들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2개 콩쿠르에 참가한 적도 있다.


임주희가 그린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임주희가 그린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2012년 2월 27일 마에스트로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서울공연. 나는 열두 살의 나이로 '깜짝 게스트'가 됐다.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인데 이왕이면 어린 한국인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도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게르기예프의 배려로 마련된 무대였다. 물론 그냥 선정된 건 아니다. 지휘자가 먼저 골랐고, 내 연주영상을 담은 DVD를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에다 보내 단원들의 동의까지 구했다.

콩쿠르 경력이 그 때 문제가 될 지는 미처 몰랐다. 내가 무대에 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어린 나이에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같은 악단과 협주한다는 건 대단하다, 최선을 다해라' 같은 응원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한편에선 '콩쿠르 경력이 전혀 없는 아이가 왜 선택됐느냐'는 말도 나왔다. '부모님 빽이 대단하다더라' 같은 얘기도 나돌았다. 열심히 콩쿠르에 참가하면서 실력을 연마한 아이들도 많은데 그 아이들의 기회를 내가 가로챘다는 말까지 들었다.

왜 나는 콩쿠르 경력이 전혀 없는 아이로 알려졌을까. 비밀은 내 이름에 있다. 사실 내 어릴 적 이름은 '임서현'이었다. 난 여섯 살 때부터 외국인 교수님들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 지도를 받으면서 외국인인 그 분들이 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어차피 커서 세계 무대에 도전하려면 외국 청중들도 쉽게 부르고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아홉 살 러시아 무대부터는 '임서현' 대신 '임주희'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식으로 중간 이름을 넣을 수도 있고, 좀 더 외국어 같은 이름을 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온전한 한국식 이름으로 세계 무대에 서고 싶었기에 '주희'를 골랐다.

그래서 어릴 적 내가 공연한 프로그램들에는 모두 임주희(Juhee Lim)라 씌여있지만, 주민등록상 이름은 임서현이었기에 어릴 적 받은 콩쿠르 상장에는 모두 임서현이라 적혀 있다. 콩쿠르 입상 기록만 보면, 임주희란 아이는 없다. 물론 지금은 정식으로 개명 절차를 다 밟아서 주민등록증과 여권 모두에 '임주희'란 이름이 적혀 있다. 다행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개명 절차가 끝났다. 마치 유학을 위해 개명을 한 것처럼.

어린 나이에, 앞으로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은 내가 커서 해외 무대에 설 연주자가 되리라는, 부모님과 지도교수님의 확고한 믿음 덕분이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콩쿠르 경력이 없어 문제라 했던 분들께, 내 마음의 준비와 각오는 이미 여섯 살 때 확고했다는 말씀만큼은 드리고 싶다.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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