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럽', 그리고 '비남성'. 지난 수년 간 각종 논란을 빚었던 노벨문학상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2020 노벨문학상의 선택은 ‘쇄신’이었다. 8일 수상자로 발표된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77)은 미국 여성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대부분 '유럽권 남성 작가 위주'라는 비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대부분 소설가에게 주던 것을, 오랜만에 시인에게 수상키로 한 것도 눈에 띈다.
글릭의 수상은 의외였다. 우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점치는 영국의 베팅 사이트 ‘나이서오즈’가 꼽은 유력 후보군에 그의 이름이 거론되긴 했다. 하지만 랭킹은 19위에 그쳤다.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고 평가받은 작가였다.
미투 파문, 2019년 수상자 페터 한트케의 세르비아 전범 비호 논란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노벨문학상이었기에 그간 ‘비유럽’, ‘흑인’, ‘여성’ 3개의 조합을 한꺼번에 충족시키는 사람이 상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는 문화에디터 비욘 위만의 말을 인용해 “유럽 출신이 아니고, 지난해 수상자 한트케와 정반대인 여성 작가에게 상을 줄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여기에다 2018년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 2019년 한트케 각각 폴란드와 오스트리아로 유럽 출신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미국 언론들도 미국 출신의 작가를 띄우는 여론전에 매진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글릭은 '비유럽 여성' 작가라는 점에서 유력했던 셈이다.
미국 문학계는 환영 일색이다. 1990년대 들어 글릭 이전에 미국의 순수문학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건 1993년 흑인 여성 최초 수상자, 토니 모리슨 이후 27년만이다. 2016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작가라기 보다는 음악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미국으로선 노벨문학상이 야박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글릭의 수상은 노벨문학상이 여성 작가에게도 문호를 넓히고 있다는 걸 재차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 2000년대 들어 노벨문학상을 받는 여성 작가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09년 헤르타 뮐러(독일), 2013년 엘리스 먼로(캐나다),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벨라루스), 2018년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에 이어 2020년 글릭까지 받았다. 여성 수상자의 수상 텀도 짧아지고 있다. 어쩌다 한번이 아니라, 드물지 않게 자주 받게 된 셈이다. 이로써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7명 중 여성은 16명이 됐다.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다양성을 도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여성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1996년 비슬라바 쉼보르스카(폴란드) 이후 24년 만이다. 21세기 들어서는 2011년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스웨덴) 시인이 유일했다.
그럼에도 완전한 파격이라 보긴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벨문학상의 파격적 변신을 기대한 이들이 유력 수상 후보로 꼽았던 아프리카계 작가, 아시아 작가들은 이번에도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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