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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올랐는데 잠겨있는 문... 뛰어내려야 하나" 절망적 순간 나타난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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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올랐는데 잠겨있는 문... 뛰어내려야 하나" 절망적 순간 나타난 구세주

입력
2020.10.09 17:58
수정
2020.10.0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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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11시 7분께 울산시 남구 신정동의 한 33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큰 불이 발생, 9일 진화작업을 마친 소방대원이 생수로 열기를 식히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일 오후 11시 7분께 울산시 남구 신정동의 한 33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큰 불이 발생, 9일 진화작업을 마친 소방대원이 생수로 열기를 식히고 있다. 뉴시스

"옥상으로 대피를 했는데 헬기장으로 향하는 문이 잠겨 있어 '꼼짝없이 갇혔구나' 할 때 소방관 10명이 중장비를 메고 올라왔습니다.“

"아귀 힘이 빠져 뛰어내려야 한다는 절망적 순간에 나타난 소방대원은 구세주였습니다."

8일 밤 울산 남구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대형 화재를 겪은 주민들은 거대한 화마가 전체 건물을 덮치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방관들의 헌신으로 사망자 없이 사고가 마무리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18층 주민 김재현(26)씨는 "옥상으로 대피를 했는데 헬기장으로 향하는 문이 잠겨 있었다"며 절망이 엄습하던 순간 소방관들이 장비를 메고 나타난 당시를 몸서리치며 증언했다. 그는 "소방관들이 주민 약 20명을 앞뒤에서 챙기며 지상으로 데려갔다"며 "20층대에 연기가 굉장히 많았는데 각 층마다 소방관들이 서서 방화벽을 붙잡고 있는 등 혼란 상황을 잡아줘 안심이 됐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9일 낮 임시 이재민 대피소인 울산 남구 삼산동 한 호텔 로비에선 환자복을 입고 손에 붕대를 감은 입주민 이모(20)씨도 “감사하고픈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맨꼭대기 층인 33층에 산다는 이씨에 따르면 어머니, 이모 등 여자 셋은 화재 직후 복도가 매캐한 냄새와 연기로 뒤덮여 탈출할 엄두를 못낸채 안방으로 피한 뒤 방문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 구조대가 오길 하릴 없이 기다려야 했다.

1시간여가 지나 힘이 점점 빠졌고 불길은 더해 상황이 절망적으로 변할 즈음 상황은 돌변했다. 누군가 현관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난 것과 동시에 혼미한 정신을 차려보니 순식간에 1층에 내려와 있었다는 것.

이씨는 “그때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며 생환 당시 상황에 감격해했다.

이날 울산소방본부에는 “와이프가 31층에 있다”, “옥상에 할머니 10명”, “3101호 안방 화장실에 있다”는 등 구조요청이 줄을 이었다.

소방대원들은 이 같은 신고를 토대로 127가구 중 123가구를 방문하는 등 77명을 구조했다.

또 이날 발화 5분여만인 8일 밤 11시 20분부터 소방인력 96명과 소방차 27대를 현장에 투입한 소방당국은 불길이 고층으로 번지면서 헬기를 투입해 구조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헬기 투입을 유보했다.

야간 상황에 강풍이 불고 있어 옥상으로 대피한 주민들을 헬기로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고로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소방당국은 소방대원들을 불길에 휩싸인 주상복합 건물 내부로 투입, 혼비백산한 입주민들을 침착하게 대피시켰다. 고층에 있는 주민들을 33층 옥상과 28층, 15층에 마련된 대피소로 유도해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소방당국은 15층에 현장지휘소까지 설치해 상황에 맞는 대피작전을 지휘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대피 현장에 소방대원들이 함께 머물면서 주민들의 동요를 막았던 것이 큰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특히 옥상과 대피소에 입주민과 함께 있던 소방대원들은 주민들을 진정시키는 한편 비상계단의 연기가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각 가구를 돌며 인명 수색과 구조를 벌이는 일사분란함을 유지했다.

대피 주민들도 물에 적신 수건을 입에 대고 자세를 낮춘 채 이동하는 등 화재 대피 매뉴얼을 지켰다.

화재가 난 울산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불은 ‘술래잡기식’으로 재발화해 진화에 애를 먹었다.

강한 바람에 ‘굴뚝 효과’까지 일어나면서 불은 외벽을 타고 곳곳을 옮겨 다니며 반복적으로 건물을 태웠다. 때문에 초진에만 화재 발생 이후 13시간 30분 가량이 걸렸다.

소방헬기를 동원해 공중에서 물을 계속해서 뿌렸지만 강한 바람 때문에 불이 난 곳을 정확하게 공략하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불은 건물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바람에 휘날린 물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 밖 주변으로 흩어지는 등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특히 9일 오전 10시 20분쯤 재발한 불은 당시 불고 있었던 동풍의 저항을 받아 헬기가 살포한 물이 불길에 닿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화재가 난 주상복합 아파트는 1개 동이지만 동쪽을 바라보는 라인과 서쪽을 바라보는 라인 등 2개 라인에 주로 많은 세대가 배치돼 있는 구조였다. 이날 오전에 재발한 불은 대부분 서쪽 라인을 태웠다.

술래잡기식 발화와 진화 결과 결국 불은 발화 15시간여만인 이날 오후 2시 30분께 완전히 진압됐다. 구조 소방관 1명을 포함해 93명이 부상 입었으며, 그 중 90명이 대피 과정에서 생긴 찰과상, 연기흡입 등 경상을 입었다. 대형 화재에도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울산=김창배 권경훈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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