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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밤하늘 파격 연출 ‘심야 열병식’… 김여정·현송월 말고 누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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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밤하늘 파격 연출 ‘심야 열병식’… 김여정·현송월 말고 누군가 있다

입력
2020.10.11 17:10
수정
2020.10.11 21:5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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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전 0시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중 전투기들의 비행쇼 모습을 11일 오전 녹화 중계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전 0시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중 전투기들의 비행쇼 모습을 11일 오전 녹화 중계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북한은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연 열병식에서 군 전력 못지 않게 화려한 연출력을 과시했다. 초유의 ‘심야 열병식’에는 각종 조명과 불꽃놀이용 폭죽, 발광다이오드(LED)를 단 전투기, 드론 등 형형색색 장식물과 최신 기술이 총동원됐다. 미국의 독립기념일 행사 등 해외 주요 선진국의 각종 전야제와 경축 행사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화려한 야경, 조명 속 등장한 김정은

북한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 열병식은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오전 0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됐다. 북한의 열병식은 통상 오전 9, 10시쯤 이뤄졌다. 새벽 열병식은 전례 없는 일이다. 야간 행사 특유의 화려한 조명 효과를 겨냥한 듯 열병식에선 내내 각종 불꽃과 조명이 눈길을 끌었다. 과거 북한의 각종 기념식 행사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연출 방식이다. 군인 행진과 군악대의 연주로 시작된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회색 양복 차림으로 행사장에 나타났다. 조명 속에 강조된 평양 야경과 군 행진이 줄줄이 화면에 흐른 뒤 나온 '극적 등장'이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전 0시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녹화 중계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0일 오전 0시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녹화 중계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10월 밤하늘에 황홀한 불보라가"...조명 달린 드론도 등장

열병식이 절정으로 치닫는 대목에선 야간 에어쇼도 진행했다. LED로 추정되는 조명을 장착한 전투기들이 평양 하늘을 갈랐고, 플레어(Flareㆍ적외선 유도 미사일 교란용 불꽃)를 쏘며 각종 기교를 선보였다.

‘파격 연출’은 불꽃놀이로도 이어졌다. 열병식 막바지에는 옥류교와 대동강 다리 사이에서 갖가지 화려한 색의 불꽃놀이용 폭죽이 터졌다. 당 창건 75주년을 상징하는 숫자 ‘75’, 노동당 마크, ‘노동당 만세’ 문구, 전투기 모양 등이 하늘에 등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0월 밤하늘에 황홀한 불보라가 펼쳐졌다”고 보도했다.

이를 놓칠세라 카메라 연출도 예년과 확실히 달랐다. 드론을 활용해 평양야경을 원경으로 담아내는가 하면, 이륙하는 전투기에 카메라를 부착하는 등 선전에 공을 들였다. 조명을 장착한 드론이 김일성광장의 상공을 날아다니며 북한의 전략 무기들을 자세히 비춰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소식을 1~11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열병식에서 여러 가지 신형 무기들을 대거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신형 ICBM은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려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소식을 1~11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열병식에서 여러 가지 신형 무기들을 대거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신형 ICBM은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려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야간행사는 최악의 경제난 속 예산절감?

예년의 열병식이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 군 전력과 전시 태세를 과시하는데 집중했다면, 화려한 볼거리,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며 행사 성격을 탈바꿈한 셈이다. ‘사회주의 강성대국’ 과시의 상징 공간인 김일성 광장을 ‘퍼포먼스 무대’로 재해석한 듯한 연출이었다.

예산 절감, 대내 반전효과, 대외 선전 등을 염두에 둔 변화로 보인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11일 '당 창건 75주년 평가' 자료에 이 같은 열병식의 변화 배경에 '주간 열병식, 경축야회를 별도로 진행하던 관행을 탈피해 야간 행사로 통합하면서 (얻는) 예산 절감 (효과) 등에 대한 종합 고려'가 있다고 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수해, 대북제재 등이 겹친 최악의 경제난 속에 외양은 화려하나 예산이 덜 드는 잔치로 내부 분위기 반전을 도모했다는 평가다.

북한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남한 평창 동계올림픽 등 주요 국가 정치ㆍ스포츠 축제를 연상시키는 연출로 변화한 시대에 적응 중인 ‘정상 국가’ 면모를 추구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월 정치국회의에서 이번 열병식을 “특색 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한 점도 변화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앞서 북한은 6일 밤 영상쇼 ‘빛의 조화 2020’ 공연에서도 3D프로젝터를 이용한 조명 공연을 통해 예년 진행한 참여인원 10만명 규모의 매스게임 ‘아리랑’을 대신했다. 이 쇼는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측의 환송공연 ‘봄이 온다’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北에도 탁현민이 존재?

이번 열병식의 기획자로는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과 현송월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꼽힌다. 선전선동부 일을 맡았던 김 제1부부장은 지난해 말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겼지만 대미 대남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소식을 1~11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열병식에서 여러 가지 신형 무기들을 대거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신형 ICBM은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려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소식을 1~11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열병식에서 여러 가지 신형 무기들을 대거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신형 ICBM은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려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 제1부부장의 ‘미국 독립기념일 DVD’ 발언도 다시 회자된다. 그는 지난 7월 10일 미국에 보낸 담화에서 “앞으로 (미국) 독립절 기념 행사를 수록한 디브이디(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하는데 대하여 (김정은)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고 언급해 그 배경에 관심을 모았다. 미국도 지난 7월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야간 대규모 폭죽, 전투기 편대를 동원한 에어쇼를 펼쳤다.

이와 관련 북한 전문가인 김근식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북한에도) 나름 다양하되고 현대화된 야간 행사 기획을 하는 것을 보니 북에도 신세대 연출자가 새로 영입된 것 같다”며 “김여정과 현송월이 큰 틀의 당적과 사상적 지도를 하겠지만 구체적 행사기획 관련해서는 북에도 탁현민이 존재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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