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배치 대신 해운·수산업체 선박에 3년간 승선 근무하며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승선근무 예비역'들이 여전히 폭언·폭행 등 심각한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선근무 예비역들은 한 번 배를 타고 나가면 반 년 넘게 배에서 생활하는 탓에 인권침해의 사각지대에 방치될 가능성이 높아, 이들에 대한 당국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16~2020년 8월) 승선근무 예비역 실태조사ㆍ전수조사 현황 자료를 보면,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승선근무 예비역들은 매년 잇따르고 있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1명, 2019년 6명, 올해 8월까지 3명이 당국에 인권침해 피해를 신고했다. 2018년 한 승선근무 예비역이 동료 선원 등의 괴롭힘에 못 이겨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뒤늦게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등 개선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선 관리·감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선근무 예비역 제도는 산업기능요원과 같은 대체복무 중 하나다. 군 입대를 앞둔 해양·수산계열 학교 졸업생들이나 해기사(항해사ㆍ기관사) 면허 소지자들이 국가에 필요한 물자를 수송하는 업무를 하는 민간 해운·수산업체 선박에 3년간 승선근무하면서 병역 의무를 이행한다. 올해 8월 현재 승선근무예비역으로 근무하는 사람은 750명으로 2016년(991명)보다 241명(24%) 줄었다.
문제는 이들이 한 번 배를 타고 나가면 상당 기간 육지에서 떨어져 배 위에서 생활하다 보니 폭언 등의 인권 침해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피해를 당해도 신고할 데가 마땅치 않아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실제 최근 병무청에 신고된 인권침해 사례를 보면, 폭언ㆍ폭행 및 성추행이 대다수였다. 기관장이 승선근무 예비역에게 폭언한 것도 모자라 하선 비용을 내라고 한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구제 대책은 미흡하다. 올해 4월 A씨는 기관장의 폭언과 괴롭힘에 못 이겨 결국 퇴사했지만, 정작 가해자인 기관장에겐 선원법 위반 사항이 없다며 아무런 제재가 내려지지 않았다. 관련 규정상 중간에 그만두고 복무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면 현역으로 재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승선근무 예비역 신분으로 열악한 환경을 탈출하기란 쉽지 않다. 업체에 대한 제재도 대부분 '다음 년도 인원 배정 제한' 정도에 그친다.
설 의원은 “2018년 사망사고 발생 이후에도 승선근무 예비역에 대한 인권 침해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며 “병무청은 보다 실효성있는 대책 마련을 통해 승선근무 예비역들의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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